Column

여초시대를 살아갈 지혜 

 

이상호 참좋은레져 대표

40년 전 ‘국민학교’는 그랬다. 80명쯤 되는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수업을 들었다. 운이 없거나 키가 큰 10명가량의 남자 아이는 여자 짝꿍 없이 자기들끼리 앉아야만 했다. 어떤 선생님은 그런 말씀도 했다. “너희가 결혼할 때가 되면 남자가 훨씬 더 많아져서, 일처다부제 사회가 될지도 몰라.” 그런데 거짓말처럼 여초시대가 왔다. 지난 6월 정부가 인구통계를 관리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여성의 수가 남성의 수를 앞질렀다.

여초시대가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고령화 시대에 따른 여성 노인 인구의 증가를 들 수 있고, 둘째 언젠가부터 사라진 남아선호 사상이다. 100세를 사는 건강 사회에서 술·담배를 덜 접하는 여성이 오래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남아선호 사상이 사라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들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부모의 노후를 아들이 당연히 책임지던 시대에서 각자도생하는 시대로 바뀌어버린 것, 전세든 무엇이든 아들에겐 신혼집(딸이라면 혼수비용이겠지만)을 얻어줘야 한다는 경제적 부담감, 바늘구멍 취업난 속에 그걸 멀쩡히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움, 이런 것이 얽히고 설켜 아들보다는 딸을 원하게 된 듯싶다.

사실 내게 여초시대는 8년 전쯤 일찌감치 찾아왔다. 서비스업의 꽃이라 불리는 여행사는 여성이 전체 직원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여행사를 이용하는 고객 역시 여성이 압도적이다. ‘여초 직장’에서 일하다 보니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끄러미 여직원을 바라보는 일도 자제해야 하고, 출근시간에는 복장도 단정히 해야 한다. 회식이나 술자리에서는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할까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고, 직원 면담이라도 할 때는 미리 예상되는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말 한마디와 표현 하나를 조심해야 한다.

약간 불편하지만 괜찮다. 우리 회사 여직원들은 정말 일을 잘한다. 그냥 고맙다. 동시에 미안하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여성이 일하기 좋은 사회가 아니어서다. 얼마 전 한 살배기 아이를 둔 직원과 면담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또 한 번 느꼈다. ‘육아와 가사는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한 사회에서, 제대로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여성(육아와 가사의 몫)’의 자리를 시어머니 또는 친정어머니께 넘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자리를 거저 넘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을 쓰고 나면 본의 아닌 경력단절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뭔가 균열이 발생한다.

더구나 대부분의 여성은 아직도 유리천장을 바라보고 그 밑에서 일해야 한다. 아주 가끔, 탁월한 능력과 헌신으로 그걸 뚫고 올라선 여성들에 대한 시선 역시 곱지 않다. 남자 동기를 제치고 임원이나 경영자가 된 여성에겐 실력보단 무슨 배경이 있지는 않은지, 숨겨진 인간관계는 없는지 갖가지 억측이 뒤따른다. 겉으로 세련되고 친절한 것처럼 보이는 남성에게도 이런 남성우월주의가 기본적으로 배어 있다. 여초시대, 숫자를 따지기 전에 이런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도 예외가 아닐 지 모른다. 고백하자면 나는 부부동반 골프 모임은 절대 사양한다. 운동신경이 발달한 아내는 나보다 드라이버를 더 멀리 친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회피한다. 그 놈의 자존심 때문에.

- 이상호 참좋은레져 대표

1303호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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