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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이 달라지는 농촌] ‘생산+가공+체험’으로 고수익 창출 

원주민+귀농·귀촌인 손 잡고 생활 여건 개선 … 30대 이하 귀농·귀촌 가구 급증 


▎서산 회포마을은 호박을 공동재배해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다. 9월 9일 방문객들이 호박저장고를 둘러보고 있다. / 사진:오상민 기자
충남 서산시 운산리 회포마을은 85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농촌 마을이다. 조용하던 시골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15년 전 최근명(62)씨가 맷돌호박 저장법을 개발하면서부터다. 예로부터 호박은 농작물을 심고 남은 땅에 식구가 먹을 만큼만 심는 작물이었다. 쉽게 썩어 보관이 어려운 탓에 호박만 재배해 파는 이는 드물었다. 그러나 최씨는 5000평 농지 전체에 호박씨를 뿌렸다.

“어느 여름날 시장에 갔더니 가을 수확철에는 2000원이던 호박 가격이 10배 이상으로 뛰었더군요. 산모의 부기를 빼거나 다이어트 식품으로 좋은 호박농사를 지으면 되겠다 싶었어요.”

이웃은 물론 농업 전문가마저 “당장 그만두라”고 최씨를 말렸다. 그러나 최씨는 저장만 제대로 하면 부가가치가 큰 작물이 될 거라 내다봤다. 첫 해 호박 2000통을 수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썩기 시작했고, 가을에 팔고 남은 호박은 결국 쓰레기가 됐다. 그러나 그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3년간 저장법 개발에 매달린 끝에 저장에 적합한 온도와 습도를 찾았고, 버섯농사를 짓던 창고를 호박저장실로 만들었다. 그의 예상대로 수확철이 지나자 호박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고, 값이 뛰었다.

호박농사로 큰 이득을 본 최씨는 이웃 농가를 설득해 이듬해부터 마을 공동사업에 나섰다. 농사를 짓는 20여 가구가 참여해 호박을 주작물로 재배했다. 이른바 계약재배 방식이었다. 이웃이 수확한 호박을 최씨가 전부 사들여 일부는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팔았다. 호박이 아니더라도 각 농가가 수확한 작물을 마을 공동 인터넷쇼핑몰에 올려 소비자와 바로 연결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발생한 공동 수익은 한해 1억원이 넘는다.

‘생산창업’ 기회 찾으러 농촌 찾는 젊은층


“농사 짓는 사람은 판로를 찾는 게 가장 큰 일이거든요. 특히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제 값에 팔지 못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저 역시 어려움을 알기에 할머니가 호박 한 덩이만 들고 오셔도 값을 쳐드립니다. 주민은 판로를 확보해 좋고, 저는 품질 좋은 지역농산물로 가공식품을 만들 수 있어 1석2조의 효과를 얻은 셈이죠.”

최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마을에 이야기를 입혀 ‘체험마을’로 변신시켰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어촌체험마을로 선정돼 2억원의 사업비를 받아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은 후 호박을 테마로 잡았다. 체험관을 지어 방문객들이 호박 재배와 요리를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마을 자연환경을 활용해 1일 관광코스를 만들었다. 이른바 ‘생산+가공+체험’이 어우러진 6차 산업을 실현한 것이다. 지난해 5100명의 방문객이 마을을 다녀갔고, 이덕에 60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현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씨는 “6차 산업의 목적은 나 혼자가 아닌 모두가 잘 사는 마을을 만들자는 것 아니냐”며 “마을의 대표로서 주민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공동사업으로 전체 주민의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 자연스레 삶의 질도 높아진다. 농식품부는 회포마을과 같이 농촌의 6차 산업 활성화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국 9개 농촌융복합산업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전국 농촌마을이 각자의 경쟁력을 갖춰 6차 산업으로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를 실시해 전국 9개 시 군 27개 우수 마을을 선정하기도 했다. 농식품부는 “신청한 1891개 마을 중 도별 지역예선을 거쳐 경관·환경, 소득·체험, 복지·문화 세 분야로 나눠 우수한 사례 27건을 꼽았다”며 “분야별 최고의 마을을 발굴·선정해 우리 농촌의 롤모델을 정립하고 경쟁력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소득 수준의 향상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농식품부는 누구나 살고 싶은 행복한 농어촌 마을을 구현하기 위해 보건·복지·교육 등 7대 분야에 2019년까지 46조5000억원을 투자한다. 그 일환으로 전국 15개 지역에 중심지 활성화 선도지구를 지정, 농촌마을의 활력을 더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이밖에 주거 취약지역 1200가구에 개선 작업을 벌이고, 고령자 공동이용시설(71개소)과 공동 아이돌봄센터(34개소)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인프라를 조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농촌형 교통모델을 개발해 행복버스를 운영하는 등 교통편이 부족한 농촌 주민의 편의를 돕고 있다.

‘삶의 질 향상 특별법’ 제정해 생활 여건 개선

도시 못지 않게 살기 좋은 농촌 마을이 늘어나자 귀농·귀촌 인구도 자연스레 늘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3만3442가구(6만1991명)가 귀촌했다. 전년 2만2501가구 대비 55.5% 늘어났다. 귀농 가구도 1만1144가구(1만8864명)에 달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젊은층에서 두드러지는데, 전체 4만5000여 귀농·귀촌 가구 중 1만4000여 가구가 40대 이하 가구주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40대 이하 젊은층의 귀농·귀촌 증가율은 43.0%로 전체 평균인 37.5%를 넘어섰다. 특히 40대는 2013년 7258가구에서 2014년 9893가구로 늘어 36.0%라는 높은 증가율을 보였고, 30대 이하는 5060가구에서 7743가구로 1년 새 무려 53.0%나 늘었다.

농식품부는 이처럼 40대 이하 귀농·귀촌인의 빠른 증가 추세에 대해 번잡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즐기고자 하는 갈망과 더불어 6차 산업화 흐름에 따른 고부가가치 농업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커진 게 주된 요인으로 분석했다. 농식품부 측은 “취업난 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청장년층이 농촌에서 생산과 창업 등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고 있다”며 “40대 이하 귀농·귀촌인이 늘면서 농촌 인구 계층이 다양해지고 있고, 사회 서비스 분야 일자리와 소규모 창업 기회도 증가 추세”라고 설명했다.

충북 옥천군 안터마을은 귀농·귀촌 인구가 늘면서 활기를 찾은 사례다. 80여 가구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지만 최근에도 젊은 부부가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이사를 오는 등 젊은 귀농·귀촌인의 발길이 이어지는 ‘뜨는 마을’이다. 안터마을은 35년 전 대청호가 생기며 농토가 모두 수몰된 아픈 역사를 지녔다. 지금 남아있는 농지는 작은 다랭이 논과 밭이 전부다. 농사를 지을 곳이 사라진 원주민들의 삶은 곤궁해졌다. 대청호가 생기며 늘어난 각종 환경 규제도 주민들에게는 부담이었다.

몇몇 주민은 “차라리 대청호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푸념할 정도였다. 그런데 논밭이 줄어든 대신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환경규제로 주변 자연생태계가 변하면서 반딧불이 개체수가 증가한 것이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반딧불이를 소재로 생태마을로 가꾸자는 계획에 주민의 뜻이 모아졌다. 텃밭을 일구는 젊은 귀농부부부터 나이 지긋한 동네 어른들까지 제초제를 쓰지 않고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데 협조했다. 그러자 반딧불이는 물론 멸종위기종인 맹꽁이와 가재가 개울가에 돌아왔다.

이 마을의 환경이 깨끗하고, 도시와의 접근성이 좋은 것으로 알려지자 귀농·귀촌을 꿈꾼 젊은층이 앞다퉈 마을을 찾았다. 귀농·귀촌인 사이에서 ‘살기 좋은 마을’로 입소문이 나며 노인만 남아있던 쓸쓸한 시골마을이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 마을은 이주민을 위해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마을 어르신이 아이들을 불러모아 전통놀이나 요리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안터마을 박효서 이장은 이 마을의 자랑거리로 비포장도로로 이뤄진 ‘숲속 체험길’을 꼽았다. 숲길을 정비해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한 이 길은 주민이 손수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만들었다. 밤이면 반딧불이가 빛의 향연을 펼치는 이 길은 방문객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박 이장은 “원주민과 귀농주민이 각자 장점을 발휘해 마을의 발전을 돕고 있다”며 “마을 사람이 힘을 모아 자연을 지키고, 이런 덕에 사업 기회도 생기니 농사만 짓던 때보다 삶이 더욱 풍성해졌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지난 2004년 농어촌 생활여건 개선을 위해 ‘삶의 질 향상 특별법’을 제정하고, 삶의질향상위원회를 중심으로 범 정부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실시한 제2차 대책을 마무리하고, 그 성과를 평가·반영해 올해 제3차 기본계획을 짜고 있다. 크게 보건·복지, 교육, 정주생활기반, 경제활동·일자리로 나눠 실시한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추진하는 계획이다 보니 농식품부를 비롯해 총 18개 부처·청이 힘을 합해 생활 여건을 개선해나가고 있다. 보건·복지 분야에서는 농어촌 국민연금 가입률을 높이고, 의료시설이 부족한 군 지역에 응급의료기관을 설치하는 등 농촌 주민의 건강한 삶과 직결되는 문제를 다룬다. 농어촌거점중학교를 육성하고, 지난해 기준 48%에 불과한 농어촌학교 정보통신기술(ICT) 기기 보급률을 2017년께 10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늘어나는 귀농·귀촌 인구에 대비해 정주생활 기반 역시 크게 개선되는 움직임이다. 농촌 지역에도 광대역 통합망 구축율을 높이고, 면단위 상수도 보급률도 최대 82%로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융자지원 혜택을 받아 농어촌 주택을 개량하는 세대는 2019년까지 6만동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4.5%에 불과한 농어촌 관광 비중을 9%로 끌어올리고, 관련 일자리 수를 10만개로 늘린다는 목표다. 농촌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6차 산업 사업도 적극 지원할 계획으로, 이를 통해 5년 후에는 약 1500개의 사업체가 생겨날 전망이다.

- 허정연 기자 hur.jungyeon@joins.com

[박스기사] 세계로 가는 한국 농업 - ODA사업으로 아프리카·아시아 개도국 지원


한국농어촌공사는 지난 2013년 가나 아쿠마단 관개지구에 농업관개시설을 설치했다.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 가나 기후에서 관개시설 없이는 작물이 제대로 자라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가나 국민의 주요 식량 중 하나인 토마토가 건기에 관개용수 부족으로 수확량이 적어 값이 폭등하는 등 문제가 심각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선진 기술을 바탕으로 가나 정부에 관개시설 지원 사업을 제안했다. 관개시스템이 설치된 후 해당 지역은 관개용수 부족 현상을 해소하고, 안정적인 농업용수 공급이 가능해졌다. 우리 전문가의 영농기술을 전수해 가나에서도 이제 사계절 내내 토마토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토마토 외에도 경작과 윤작 방식을 통해 농지활용이 극대화됐다. 사업 종료 1년 후 농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후평가 결과, 해당 지역의 식량 문제 해결은 물론 각 가구당 소득 역시 25~5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나에서 이뤄진 농업관개시설 설치 지원 사업은 농식품부가 추진하는 국제농업협력(ODA) 사업의 일환이다. ODA는 우리의 농업·농촌개발 지원을 이용해 국제사회의 기아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 마련됐다. 이는 빈민국 구호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의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고, 국격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협력사업을 통해 개도국과의 호혜적 협력기반을 구축해 우리 농림축산식품산업의 해외 시장 개척에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한국농어촌공사·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이 주축이 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 내용은 크게 기획협력·공동협력·컨설팅사업으로 나뉜다. 기획협력 부문에서는 개도국 농업·농촌개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인적·물적자원 수단이 결합된 패키지 방식의 중장기 지원 사업을 추진한다. 시설물을 건축하거나 농자재를 공여하는 등 물적 지원뿐 아니라 기술전수·컨설팅·교육훈련 등 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식량안보와 녹색성장 등 글로벌 이슈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협력사업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예컨대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국제농업개발기금(IFAD), 유엔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는 물론 미국 등 공여 선진국과 민간원조단체 등과 공동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공동협력사업을 발굴해 개도국을 돕는다. 컨설팅사업은 우리나라의 농정성과를 개도국이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한국형 ODA모델 농업협력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협력대상국의 실정에 맞는 사업 주제를 선정해 농업·농촌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식량안보를 위한 컨설팅을 해나가고 있다.

농식품부는 매년 약 1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ODA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국제기구분담금 명목으로, 원조 관련 국제기구 회원국으로서 1953년부터 부담하고 있다. 올해도 아시아 6개국과 아프리카 4개국에서 14개 기획협력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연말까지 몽골 축산물가공과 위생관리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베트남에서는 채소계약재배 시범단지가 조성된다. 르완다 사료생산과 수확물 처리 지원 사업과 모잠비크 농업생산성 증대 사업 등은 2017년까지 계속된다. ODA사업은 중장기적인 계획에 의해 3~5년간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농식품부는 개도국간 협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현지 실정에 맞는 한국형 ODA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1303호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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