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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 부른 초유의 위기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ins.com

폴크스바겐의 인기 모델 골프에 탑재된 2.0 TDI 엔진(EA189)입니다. 이번에 배출가스 조작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녀석이죠. 이 엔진, 골프에만 사용된 게 아닙니다. 파사트·티구안·CC 등 폴크스바겐 주력 차종과 아우디 시리즈 등 폴크스바겐그룹이 생산하는 거의 대부분의 차종에 탑재돼 있습니다. 탁월한 성능과 연비, 환경까지 잡은 미래형 엔진으로 각광을 받았죠. 이 엔진 덕분에 폴크스바겐이 2010년대 들어 판매량 세계 1위로 도약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폴크스바겐그룹은 이 엔진이 탑재된 차량 약 1000만대를 전 세계에 팔았습니다. 국내에도 약 12만명의 소비자가 타고 있습니다. 믿었던 이 녀석이 사기라니, 충격이 보통이 아닌 거죠.

사실 실제 범인은 엔진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입니다. 디젤차는 가솔린 차보다 연료 효율이 좋은 대신 미세먼지나 질소산화물 등 유해가스 배출량이 많습니다. 각국 정부가 환경 규제를 강화하자 자동차회사는 너나 할 것 없이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감장치를 달았으면 항상 작동하도록 해야 하는데, 폴크스바겐은 꼼수를 썼습니다. 테스트를 할 때만 클린모드로 변경해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도록 하고, 평소 주행할 때는 작동을 멈추도록 설계한 겁니다. 명백한 조작이죠. 왜 그랬을까요? 클린모드를 쓰면 아무래도 연비나 출력이 떨어지니까요. 환경을 생각하면서도 가솔린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소비자의 이목을 끄는데 이 과정에서 폴크스바겐은 기술이 아닌 반칙에 기댔습니다. 디젤 점유율이 3% 수준인 미국 시장을 공략하려다 과욕을 부렸다는 분석입니다.


어쨌든 이 잘못된 판단 하나로 폴크스바겐은 각국에서 수조원의 벌금과 수십조원의 리콜 비용을 내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돈이야 또 벌면 되는데, 바닥으로 추락한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사태로 주력인 디젤의 인기가 더욱 떨어질 것까지 감안한다면 회사가 문을 닫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입니다.

일단 수습은 해야겠죠. 폴크스바겐그룹은 내년 1월부터 배출가스 조작에 관련된 디젤 차량의 리콜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도 파문 이후 처음으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자발적 리콜 계획을 밝힐 계획이고요. 물론 경쟁사인 도요타나 GM도 대규모 리콜을 시행한 적이 있고, 경영 위기를 극복한 경험도 있습니다. 솔직히 그들과 비교해도 이번 사안은 좀 심각해 보입니다. 폴크스바겐·아우디·포르쉐·람보르기니 등 크고 작은 12개 브랜드를 거느린 독일 자동차 제국이 몰락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 사진 김현동 기자, 글 장원석 기자 kim.hd@joins.com

1306호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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