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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 승용차 몰락하나] 2020년이면 디젤차 사라질 수도 

질소산화물 1급 발암 물질로 판명 ... 디젤차의 본고장 영국·프랑스에서 엄격한 규제 


▎폴크스바겐 디젤차량의 배출가스 조작사건의 여파가 전체 디젤 차량에 대한 불신으로 퍼지고 있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에서 디젤차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벌이고 있다. / 사진:뉴시스
summary | 이르면 2020년이면 디젤 승용 신차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디젤 승용차가 내뿜는 질소산화물(NOx)이 석면과 같은 발암 물질로 판명되면서다. 파리와 런던시는 2020년 디젤차의 시내 주행을 엄격히 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폴크스바겐의 디젤 승용차 배기가스 조작 사건이 없었어도 디젤의 몰락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이르면 2020년이면 디젤 승용 신차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무슨 얘기냐고? 폴크스바겐 디젤 승용차 배기가스 조작 사건 이전에 이미 디젤의 몰락은 시작됐다. 그것도 디젤의 고향이라는 유럽에서다. 디젤 승용차가 내뿜는 질소산화물(NOx)이 석면과 같은 발암 물질로 판명되면서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월 중순 대형 사건이 터졌다. 올해 상반기 도요타를 누르고 세계 1위에 처음 등극한 독일 폴크스바겐그룹의 디젤차 배기가스 조작 사건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폴크스바겐이 배기가스 검사를 속임수로 통과할 목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미국에 판매한 48만대의 해당 차종에 대한 벌금으로 폴크스바겐 지사에 최대 180억 달러(약 21조원)를 부과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문제가 된 소프트웨어는 검사할 때는 배기가스를 줄여주는 후처리장치(EGR)를 정상 작동시키다가 일반 주행 때는 꺼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반 주행에서는 출력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EGR을 끈 것이다. 문제는 발암 물질인 질소산화물을 허용 한도의 40배나 배출한다는 경악스런 내용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폴크스바겐은 디젤 승용차의 부흥을 이끈 주역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터보직분사디젤(TDI)이라는 친환경 신기술을 개발, 그룹 산하인 폴크스바겐·아우디·스코다·세아트의 세단과 SUV에 사용했다.

유럽연합은 1990년대 중반부터 지구 온난화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각국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했다. 그러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솔린 엔진보다 적은 디젤 엔진을 최적의 대안으로 꼽았다. 그동안 디젤 엔진은 가솔린보다 토크가 높아 상용차에 주로 사용됐다. 그러자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디젤 엔진 개발에 뛰어들었다. 친환경 디젤 엔진을 단 승용차가 속속 선보이고 디젤이 가솔린 대비 연비가 30% 이상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디젤차 인기가 폭발했다. 더구나 유럽 주요 국가에서는 디젤 가격이 가솔린보다 저렴한 것도 호조건이었다. 지난해 독일 BMW와 다임러 벤츠가 유럽에서 판매한 디젤 승용차의 비중은 각각 81%, 71%나 됐다. 독일운전자연맹(ADAC)에 따르면 1980년 독일의 디젤차 비율은 8%였다가 2012년 48%로 급증했다.

WHO, 디젤 배출가스는 폐암 유발


폴크스바겐 부정 사건 이전에 이미 디젤의 몰락은 예고됐다. 2020년 디젤 승용차 운행 금지 선포는 파리부터 시작했다. 2014년 12월 앤 히달고 프랑스 파리 시장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2020년까지 파리에서 디젤차가 사라질 것”이라는 폭탄 발언을 쏟아냈다. 프랑스는 유럽 국가 가운데 디젤차 판매 비중이 가장 크다. 2014년 판매된 승용 신차 가운데 64%가 디젤차였다. 히달고 시장의 이 발언에 예상 밖으로 파리 시민은 큰 호응을 보냈다. 시민 84%는 공해와 싸우는 것이 시장의 최우선 목표라고 지지한 것이다. 더구나 54%는 2020년까지 파리 시내에서 디젤 차의 전면 운행 금지에 찬성을 했다. 이런 움직임은 파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프랑스 매뉴얼 발리스 총리도 2014년 11월 “그동안 프랑스 정부가 지속한 디젤차 장려 정책은 실수”였다고 자인했다.

바다 건너 영국도 가세했다. 올해 4월 29일 영국 대법원 대법관 전원(5명)은 영국 정부가 유럽연합위원회를 상대로 영국의 대기질 개선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영국에서 디젤차에 대한 징벌적인 과세 조치가 내려질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런던 역시 파리와 마찬가지로 오래된 디젤차에 대한 통행료 징수 같은 디젤차 운행 규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도대체 왜 디젤차의 고향인 유럽에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난 것일까. 2012년 6월 12일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세계보건기구(WHO)는 디젤 엔진의 매연이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디젤 배출가스는 대표적인 발암 물질인 석면이나 군사용 독가스(머스터드)와 동일한 치명적인 유해 물질이라는 내용이다. 이어 프랑스에 위치한 WHO 산하 국제암연구국(IARC)은 디젤의 질소산화물을 발암 유발 가능물질군인 그룹2A에서 ‘확실하게 암을 유발’하는 그룹1로 한 단계 격상했다. 이런 발표가 잇따라 나오면서 유럽 각국 정부와 시민들은 디젤차 운행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해결책이었던 디젤 엔진이 10여년 만에 환경·보건 전문가들에 의해 ‘사람 잡는 기술’로 밝혀진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디젤차 몰락을 예언한 서막일 뿐이다. 디젤차가 사라진다면 대안은 자연스럽게 하이브리드·전기·수소연료전지차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올해 6월 1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전기차 콘퍼런스에서 안젤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 자동차 업체 경영진에게 “전기차 보급이 미진하다”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메르켈 총리는 2020년까지 독일에서 100만대의 전기차가 운행할 수 있게 전기충전소 같은 각종 인프라 지원을 약속했다. 독일의 전기차 사업에 경종을 울린 회사는 미국 테슬라다. 실리콘밸리의 이단아인 엘론 머스크는 2013년 테슬라 모델S를 통해 전기차를 잘 만들면 판매에서 성공할 뿐 아니라 소비자가 환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당시만 해도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는 ‘전기차 사업은 수익성이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전기차 개발을 등한시했다.

테슬라의 전기차 성공은 자동차산업을 자존심으로 여기는 독일에 충격 그 자체였다. 독일 정치인들은 새로운 자동차 패러다임을 개척한 테슬라를 비롯, 미국 실리콘밸리의 움직임에 경악했다. 세계 최대의 IT기업인 애플과 인터넷을 장악한 구글이 전기차 사업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상대적으로 독일 브랜드 가운데 전기차에 가장 적극적인 BMW는 i3·i8을 출시해 겨우 체면을 살릴 정도였다.

현재 지구상에서 디젤 승용차가 팔리는 지역은 유럽과 인도·한국 정도다. 세계 자동차 1, 2위 시장인 중국과 미국의 디젤 승용차 점유율은 각각 0.2%, 2%에 불과하다. 일본 역시 1%가 채 안 된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공을 들여 개발한 디젤 엔진 판매 확대가 예상보다 어려움을 겪자 경쟁사와 디젤 기술을 공유하는 전략을 택했다. BMW는 2013년 도요타에 소형 디젤 제휴를 했다. 다임러 역시 2013년부터 닛산에 2.2L 디젤 엔진을 공급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디젤차 천국인 한국에서는 독일 자동차 업체들이 디젤차에 대한 공격적인 판매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유럽에서 제품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디젤 엔진의 개발비를 뽑고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박상원 UL코리아 오토모티브 담당은 “유럽에서 시작된 디젤차 판매 규제는 전기차 상용화를 몇 단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 주행에서 유로6 기준 통과한 차 드물어

미국과 독일에 지부를 둔 국제청정교통위원회(이하 ICCT)는 지난해 유로6 기준을 통과한 10개 자동차 회사의 디젤차 15개 모델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실제 도로에서 배출가스 측정(RDE)을 실시했다. 이때 1개 모델을 제외한 14개 모델이 모두 유로6 기준치를 넘는 질소산화물을 배출했다. 최대 7배 이상 배출된 모델도 있었다. 불합격 모델 중에는 그나마 배기가스 후처리장치로 가장 신뢰할 만한 SCR 방식도 포함됐다. 이들 차량은 배기가스를 검사한 시험실에서는 모두 합격한 차량이다. 이 발표를 주의 깊게 본 미국 환경보호국은 구체적인 조사에 들어갔고, 폴크스바겐이 소프트웨어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실험에 참여한 10개 업체 가운데 공개된 곳은 볼보(15배), 르노(9배), 현대(7배), 아우디·오펠(3배), 벤츠(유로6를 조금 넘는 수준) 등이었다. 유일하게 BMW만 합격점을 받았다. 그 외에도 독일에서 실시한 주행시험에서 마쓰다6, 폴크스바겐 CC, BMW 320d 왜건 등이 과도한 질소산화물을 배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보면 현재까지는 디젤 승용차를 생산하는 어떤 자동차 업체도 시험실이 아닌 실제 주행시험에서 유로6 기준을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해 독일에서 ICCT와 ADAC가 10개 자동차 브랜드의 32개 유로 6 디젤차를 대상으로 실제 도로주행 배출가스로 측정했다. 결과는 유로6 기준에 부합한 게 10개 모델이었다. 22개는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는 일산화탄소 (CO), 이산화탄소 (CO2), 질소산화물(NOx), 탄화수소(HC), 미세먼지(PM) 등이 대표적이다.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탄화수소는 가솔린 엔진이 디젤보다 더 많이 나온다. 대신 디젤은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가 가솔린 엔진보다 더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이 가운데 PM은 흔히 분진 또는 그을음, 블랙카본, 검댕이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디젤 승용차에는 이런 질소산화물과 분진을 억제하는 ‘배기가스 저감 기술 및 장치’가 달려 있다. 디젤 차의 배기가스 저감 기술은 실린더 연소기술과 배기가스 재연소 기술(EGR)로 나뉜다. 다음으로 배기가스 후처리 장치는 매연을 여과하는 필터(DPF)와 요소수를 촉매로 사용해 질소산화물을 줄이는 저감 장치(SCR)가 대표적이다. SCR 같은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한 후처리 장치가 디젤 승용차에 달리기 시작한 건 유럽의 강화된 배기가스 기준인 유로6 때문이다. 유로6는 기존 유로5보다 질소산화물 80%, 분진 60%를 줄여야 한다. 결국 자동차 업체들은 기존 EGR만으로는 유로6를 만족시키기 어렵다고 보고 SCR 같은 저감 장치를 달았다.

강화된 규제 맞추면 디젤 차 가격 20~30% 오를 듯

폴크스바겐이나 현대·기아차는 복잡하고 원가 상승이 큰 요소수를 이용한 저감장치 대신 가격이 저렴한 LNT를 장착한다. LNT는 구조변경이 크지 않고 가격도 저렴한 대신 출력 저하가 상대적으로 크고 연비도 손해를 보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SCR은 성능 저하가 덜하고 연비 효율성이 좋아진다.

폴크스바겐 사태로 선진 각국에서 디젤 배출가스 검사를 시험실이 아닌 도로주행 검사로 강화하면 디젤차 가격은 지금보다 20∼30% 급등할 수밖에 없다. 강화된 규제에 맞춰 친환경 디젤 엔진을 개발하려면 지금의 배출가스 후처리 장치와 요소수 방식 이외에 또 다른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이럴 경우 수천억원 이상 개발비를 투자해야 하고 시장 확대가 어려운 추세에서 가격 급등은 필연이다. 결국 발암 물질과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규제 강화가 디젤차를 지구상에서 퇴출시키는 핵폭탄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 김태진 전문기자 kim.taejin@joins.com

1306호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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