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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 기자의 ‘앵그리 2030’(17) 돈 무서운 줄 모르는 2030] 결혼할 때 아버지가 좀 도와주겠지… 

벌이 시원찮은데 재테크엔 관심 덜해 … 무분별한 소비, 계획 없는 대출에 자승자박 


▎사진:중앙포토
후배와의 술자리에서 자연스레 돈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의 월급은 250만원, 실수령액은 220만원입니다. 원룸 월세로 50만원, 부모님 용돈을 포함한 생활비로 90만원을 씁니다. 남은 80만원은 적금에 넣고 있었습니다. 적금에만 기대는 게 답답하긴 했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가 묻기 전까지,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적금 금리가 얼마인지, 현재까지 모은 돈이 얼마인지 몰랐습니다. 결혼을 안 했으니 주택청약통장 하나 정도는 있겠지 싶어 물었는데 없답니다. 없는 거야 괜찮은데 그에겐 주택청약의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CMA나 ELS(주가연계증권)는 설명조차 못했죠. ‘원룸 월세도 연말에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고 하자 반색합니다. 혹시나 싶어 물었습니다.

 “전입신고는 했지?”

 “….”

‘대충 먹고 살자’는 무기력증 확산


▎일러스트:중앙포토
극단적인 예가 아닙니다. 요즘 20~30대는 ‘돈’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합니다. 대학생이야 그렇다 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심지어 결혼까지 하고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죠. 일단 어린 시절 결핍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세대적 특성이 있습니다. 못 먹고, 못 입은 기억이 별로 없으니 ‘돈 욕심’이 덜합니다. 자연히 ‘어떻게든 이 가난을 벗어나겠다’며 허리띠를 졸라맸던 할아버지·아버지 세대의 ‘악착같음’을 지금 20~30대에게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시원찮은 벌이와 꽉 막힌 재테크 수단 또한 원인입니다. 취업은 늦고, 첫 월급은 쥐꼬리 수준입니다. 결혼이라도 하려면 그동안 모은 종잣돈을 다 털어야 하고, 아이라도 낳으면 지출이 급증합니다. 2000년까지만 해도 두 자릿수에 달하는 고금리 덕에 은행에만 돈을 넣어도 원금이 쑥쑥 불어났습니다. 이렇게 모아서 차를 사고, 집을 샀죠. 그러나 지금은 이 등식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한두푼 아껴도 둘 데가 없습니다. 은행 예·적금 금리는 바닥을 향해가고, 이미 하늘로 치솟은 부동산은 엄두도 못 냅니다. ‘어떻게 해도 큰 차이 없다’ ‘대충 먹고 살자’는 무기력증이 지금 젊은 세대를 휘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적 고단함이 무관심의 합리적 이유는 아닙니다. 형편이 어렵다고 돈을 안 모으고, 얼마 안 된다고 대충 내버려두면 정말로 평생 목돈을 손에 쥘 수 없습니다. “어려운 것과 길이 없는 것, 안 되는 것과 안 해본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인데 젊은 세대가 아예 돈을 불릴 고민조차 안 하는 게 너무 안타깝다.” 최근 자산관리 업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메리츠자산운용의 존 리 대표가 사석에서 한 얘기입니다.

돈을 모으려면 일단 종잣돈이라는 게 있어야 합니다. 재테크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좀 아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 20~30대는 대부분 쓸 계획을 세우는 데 능하지만, 저축 계획은 섬세하지 않습니다. 절약의 진정한 의미는 아끼는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지출의 적합성을 따지는 데 있습니다. 해외 여행에 목돈을 쓰고, 먹을거리와 입을거리에 씀씀이를 줄이지 않으면서 은행 잔고가 늘길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취업했다고 차부터 사겠다는 20대 남성,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수백만원짜리 가방을 할부로 긁는 20대 여성. ‘자기 만족’이라고 포장하겠다면 할 말 없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돈까지 모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절대 그렇게 될 리 없습니다.

종잣돈을 모았다면 불려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 은행만 쳐다봅니다. 최근 시중은행 예금 금리가 속속 1% 후반대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물가상승률이 1% 정도라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를 면하고 있지만, 이자소득세 15.4%를 떼고 나면 사실상 남는 게 없습니다. 수십, 수백억원대 자산가가 보관 목적으로 돈을 맡긴다면 모를까,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겠다면서 은행만 고집하는 건 앞으로도 티끌만 가지고 살겠다는 얘기입니다. 예·적금은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삼고, 다른 ‘무언가’에서 묘수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어쩔 수 없이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같은 금융회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배당을 늘리겠다’고 하면 최소한 배당주펀드라도 사보는 성의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려면 펀드 등 금융상품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고, 거시경제 흐름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도통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재테크 좀 해봐야겠어!’ 결심은 있는데 실천은 없습니다. 넘쳐나는 게 재테크 서적이고, 정보가 천지에 널렸는데 공부하지 않는 거죠. 공부를 왜 해야 할까요?

‘적금 금리 1%대’ 은행만 쳐다봐선 답 없다


금융회사는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홍보하지만, 진짜 A도 모른 채 찾아가면 엄청난 환영을 받을 겁니다. ‘호갱님(호구+고객님)’이니까요. 불행히도 금융회사는 그리 착하지 않습니다. 1990년대 말 ‘바이코리아 펀드’라는 게 있었습니다. 첫해에 무려 77%의 수익률을 기록했죠. 당연히 너도나도 몰렸습니다. 설정액이 무려 12조원에 달한 때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 펀드를 팔던 증권사 회장은 ‘2005년 코스피지수는 6000까지 오를 것’이라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이 펀드, 불과 1년 뒤 IT 버블 붕괴와 함께 원금의 55%를 까먹고, 휴지통으로 들어갔습니다.

2007년 인사이트펀드 대란이나, 2013년 브라질 국채 폭락, 지난해 ELS(종목형) 폭락 등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피해는 온전히 투자자의 몫입니다. 금융회사의 목표는 투자자의 수익률을 높이는 게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늘리는 겁니다. 펀드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도 그들은 수수료와 보수를 받습니다.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고 돌려주는 금융회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소송에서 졌다고 수임료 되돌려주는 변호사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하나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CEO의 투자 철학은 굉장히 심플합니다. 좋은 회사를 찾아서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그는 매일 일간지와 경제 주간지를 탐독하고, 거기서 여러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합니다. ‘투자의 달인’이라는 버핏도 공부하는데 아무 것도 안 하고, 수익률 타령을 하는 건 너무 배짱이 같은 소리입니다. A라는 회사가 있다고 치죠. A의 주식을 단돈 1만원어치라도 가지고 있으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A가 속한 업종의 경기는 어떤지, 회사의 실적은 어떻고, 어떤 이슈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보게 마련입니다. 관심은 A에서 B로 확장되고, 그렇게 공부가 누적되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은 종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채권도 마찬가지죠. 직접 사보지 않으면 그냥 남 얘기일 뿐입니다.

산다고 끝이 아닙니다. 펀드를 예를 들어보죠. 적금이야 제때 돈을 입금하고, 만기를 기다리면 끝입니다. 그러나 펀드는 돈만 적립하는 게 아니라 관심도 함께 적립하는 겁니다. 가입 첫 달의 투자자와 30개월째 돈을 불입한 투자자의 지식과 수준이 같아선 안 된다는 뜻이죠. 2~3년 돈을 넣었으면 그 펀드에 관한 한 운용사 직원만큼 자세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니다 싶을 때 갈아 탈 수 있고, 괜찮은 새 펀드를 발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금융회사가 내 자산을 늘려 줄 거라 기대한다?’ 이런 걸 ‘욕심’이라고 합니다.

금융회사에 대한 젊은 세대의 맹목적 신뢰는 보험과 연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보험 가입 건수는 3.6건에 달합니다. 2010년 3.08건이었는데, 불과 4년 만에 0.5건 이상 늘었고, 20~30대에서 가장 많이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보험사의 최우량 고객은 사회 초년생입니다. 보험과 연금은 꼭 필요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과잉이 문제입니다. 사실 보험·연금은 주식·펀드보다 훨씬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계약기간이 짧아도 10년, 길면 종신입니다. 한번 가입하면 중간에 액수를 줄이기 힘들고, 해지라도 하려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하죠.

보험·연금 과잉 가입에 ‘보험푸어’ 양산

한창 돈을 모아야 할 20~30대에 보험과 연금에 과하게 돈을 쓰면 나중에 큰 돈이 필요할 때 적절한 대응이 어렵습니다. 결혼이나 주택 마련 등 목돈 들 일이 많고, 아이가 자라면 교육비 부담도 커질 겁니다. 가뜩이나 원금의 중요성이 커졌는데 월급의 약 20~30%를 보장성 보험에만 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소득 수준에 비해 보험이나 연금에 너무 많이 가입해 생활고를 겪는 ‘보험푸어’도 적지 않습니다. 실손의료보험 하나쯤은 꼭 필요하지만 여러 개 들어봐야 중복 지급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변액보험·종신보험 등은 더욱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변액보험은 보험료 중 일부를 금융상품에 투자해 그 수익을 고객에게 돌려주는 개념인데, 연간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상품이 수두룩합니다. 종신보험은 보험사가 수수료를 가장 많이 챙기는 상품입니다. 왜 자꾸 추천하는지 이제 감이 오시나요?

그릇된 믿음은 저축은행, 대출회사로 번져갑니다. ‘친구가 돼 주겠다’는 말을 덜컥 믿어버립니다. 빚 무서운 줄 모르는 우리나라 20~30대는 돈을 너무 쉽게 빌리고 있습니다. 주로 등록금·기숙사비·생활비를 충당하려 빚을 내지만 본인의 소비 욕구를 채우기 위해 돈을 빌리는 이들도 꽤 많습니다. 없어서 빌리는 게 아니라 더 쓰려고 빌린다는 뜻이죠. 이들 중 상당수는 은행이 아닌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립니다. 40~50대는 약 80%가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만 20대는 61.5%만 은행을 이용합니다. 16.2%는 저축은행에서, 14.6%는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습니다. 다른 연령대와 비교할 때 현저히 높은 수치죠. 고정적인 벌이가 없고, 신용이 낮으니 은행에 가도 신용대출은 힘듭니다. 반면 ‘휴대전화만 있으면 된다’고 광고하는 대부업체는 300만~500만원 정도는 쉽게 빌려줍니다.

그러나 쉽게 빌려줄 땐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저축은행은 대학생에게 평균 27.7%, 대부업체는 평균 36.6%의 금리로 돈을 빌려줬습니다. 돈 좀 번다는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고금리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중소기업에 입사한 김이겸(30)씨는 5년 전인 대학 시절 한 대부업체에서 빌린 500만원을 취업 3년차인 올해 겨우 상환했습니다. 처음엔 월세가 부족해서, 그 다음엔 데이트 비용이 모자라서 조금씩 빌린 돈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대부업체에 갚은 돈은 이자와 원금을 포함해 1200만원이 넘습니다. 기껏 사회생활을 시작해도 종잣돈 마련은커녕, 빚 갚는데 귀한 시간을 허비하는 거죠.

손쉽게 빌리는 고금리 대출에 허리 휘청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죠. 사실 20~30대가 이렇게 ‘돈에 무지한 삶’을 택한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인지도 모릅니다. 금융정보분석원(FIU) 관계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늘어나는 주택담보대출의 상당 부분이 증여와 관련된 것으로 본다. 대출을 받아 자식의 결혼비용(주로 주택 마련)을 대거나 증여세를 줄이려 일부러 대출을 받는 일도 흔하다.” 실제로 최근 30대의 주택 구입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자산 증식이 힘든 시기에 그 많은 돈이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요? 오로지 빚일까요?

아닙니다. 결혼은 가계에서 부의 이전이 가장 확실하게 이뤄지는 시점입니다. 바로 이 때, 대부분의 20~30대는 약간의 기대를 합니다. ‘결혼할 때 아버지가 좀 도와주겠지’ ‘엄마가 나 주려고 조금 챙겨뒀을 거야’와 같은 거죠. 그러나 이 기대, 과연 정당한 걸까요? 부모 세대가 뼈 빠지게 일해 힘들게 모은 이 돈, 쉽게 받으려고 하는 것이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아무리 곱씹어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게 ‘부모에게 도움을 받아도 된다’는 걸 정당화시켜 주진 않습니다.

20~30대에게 부모가 ‘믿는 구석’이란 근거는 또 있습니다. 26세 이하 국민연금 임의가입자(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지만 본인 의사로 가입하는 사람)가 2010년 이후 급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만 3311명이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학생이나 군입대자로 소득이 없습니다. 월 20만~30만원가량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부모가 대신 낸다는 얘깁니다. 20대 건강보험 피부양자는 2007년 이후 11.7%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20대 건강보험 가입자는 4.6% 줄었습니다. 취업은 늦어지고, 소득은 없으니 부모가 보험료까지 대신 내주는 겁니다.

여유가 있어서 집도 사주고, 재산도 물려준다면 나쁠 게 없습니다만 지금 부모 세대의 형편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노후 대비’란 키워드가 세상의 화두인 것 자체가 노후 대비가 잘 안 돼 있다는 증거입니다. 겨우 집 한 채에,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운 연금에만 기대는 50대 이상 가구가 수두룩합니다. 이런 분들이 결혼을 기점으로 자식에게 집까지 덜컥 내주고 나면, 노후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건 한순간입니다. 개인적으로 정년 퇴직을 한 지 5년이 넘었는데 아들 결혼시키겠다고 5000만원 대출을 받은 분도 봤습니다. 대체 그 돈을 어떻게 갚을 건가요?

‘부모 탓, 사회 탓, 나라 탓’ 자기 탓은 왜 안 할까?

냉정하게 말해 지금 20~30대는 자립심이 없습니다. 노력은 안 하면서 돈이 안 모이는 이유를 국가나 사회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진 않은지, 애써 키워준 부모 원망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이 파란만장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내려면 돈을 모르곤 방법이 없습니다. 싫다고 안 할 수도 없고, 내 일 아니라고 모른 체 할 수도 없습니다.

다음 세대 걱정도 해야 합니다. 시대의 책무 같은 겁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취업이 잘 되고, 소득이 충분하고, 자산 증식이 가능하고, 노후 대비도 잘 된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요? 변화의 출발점은 정치일 겁니다. 그러나 지금 2030은 기성세대가 만든 정치 틀에 갇혀 있습니다. 좌우로 나뉘어 물고 뜯는 것까지 꼭 닮았습니다. 다음 번에는 ‘분열을 답습한 2030’을 주제로 지혜를 모아보겠습니다.

- 장원석 기자

1306호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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