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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본 단통법 1년] 판매상은 ‘아우성’ 소비자는 ‘갸우뚱’ 

판매점 “하루에 한 건 개통도 어려워”... 일부 편법 지원 관행은 여전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1년째인 올 9월 29일 서울 용산전자상가의 휴대전화 판매점 밀집 지역. 단통법 시행 이후 이곳을 찾는 소비자 수가 급격히 줄어 최근에는 한산하다. / 사진:뉴시스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23일 오후 서울 용산전자상가. 예년 같으면 대목으로 불리는 때지만 상가는 한산했다. 이른바 ‘파리 날린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소규모 휴대전화 판매점이 밀집한 곳일수록 사정은 더 안 좋았다. 제품을 둘러보느라 판매점을 기웃거리는 소비자들이 간혹 눈에 띄었지만 그마저 극소수였다. 아예 가게 문을 닫은 매장도 많았다. 7년 넘게 용산 나진전자상가 12동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해온 한 판매점장은 “아침에 문 열고 오후 4시까지 딱 한 분 개통했다”며 “판매량이 줄어든 것뿐만이 아니라 손님들이 단순히 매장을 방문하는 빈도도 훨씬 줄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하루에 한 명의 고객도 못 끈 날이 허다해서 장사를 접을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며 “모두 단통법이 시행된 이후에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나진전자상가 12동은 휴대전화 판매점이 밀집해 한때 ‘휴대폰 개통의 메카’로 불리던 곳이다. 그만큼 값싸게 휴대전화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몰렸다. 그러나 단통법 시행 이후 시장은 거짓말처럼 한산해졌다는 것이 판매점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설상가상 올 여름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등 악재까지 겹치면서 소비자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한 판매점 관계자는 “그나마 요즘 용산에서 휴대폰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 거주를 시작했거나 체류 중인 외국인들이 주요 소비자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한 때는 휴대폰 개통의 메카였는데…


같은 날, 서울 가양동에 사는 40대 직장인 A씨는 명절을 앞두고 부모님의 새 휴대전화 개통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여러 곳을 돌며 가격만 알아봤을 뿐, 정작 구매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여러 판매점이 모여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격과 성능을 비교하기 편리해 방문했지만, 개통은 집 근처 대리점에서 하려고요. 혹시 개통하면서 시중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굳이 여기서 할 필요가 없죠.” A씨는 단통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도 예전에 시세보다 너무 비싸게 휴대폰을 개통한 경험이 있었다”며 “최소한 지금은 그런 호갱 취급은 덜 받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A씨 말처럼 고객에 따라 차별적으로 지급된 보조금이 어느 정도 자취를 감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9월 23~24일 본지가 서울 용산전자상가와 서울 강북·강남 10여 곳 판매점·대리점을 취재한 결과 같은 기종의 스마트폰 구매·개통 가격은 거의 ‘정찰제’에 가까울 만큼 차이가 없었다. 약정에 따른 통신비 할인을 단말기 약정 할인으로 속여 비싼 단말기를 권유하는 행태도 접할 수 없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고객 차별’은 상당히 시정된 것이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전반적으로 단통법에 호의적이지 않다. 왜일까.

“정부는 가계통신비 부담이 줄었다는 데, 전혀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단말기 구입 비용은 분명히 늘었고, 통신요금은 거의 그대로인데 어디서 통신비 부담이 줄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고요.” “단통법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 같이 떠들어댔지만, 실상은 1년 전과 큰 차이를 못 느끼겠어요.” “일부가 호갱인 시장이 전부가 호갱이 시장으로 변했다는 말이 맞는 것 아닌가요?”

추석 연휴에 만난 소비자들은 이처럼 대체로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발 빠르게 혜택을 좇아 단말기를 싸게 구입했던 이른바 ‘폰테크족’인 20대 대학원생 B씨는 “단통법의 취지는 좋았지만, 소비자의 선택권은 상당히 제한됐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40대 주부인 C씨는 “6학년 딸의 핸드폰이 고장 나서 바꿔주려고 했는데 신형폰 가격이 너무 비싸 친정 엄마가 쓰시던 제품을 쓰게 했다”며 “어차피 최저 요금제를 쓰는데 폰 구입 가격이 오르니 확실히 부담이 되더라”고 했다.

여전히 불법과 편법이 남아 있다는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용산 전자상가 매장에서 일하는 판매점장 D씨는 ‘페이백(payback)’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유인한다고 털어놨다. 대리점이나 판매점이 휴대전화를 판매하면, 이동통신사는 이들에게 일종의 판매 수당을 지급한다. 이 수당 개념으로 지급하는 돈이 과도하게 많아지면 대리·판매점은 휴대폰 가입자 유치를 목적으로 이 돈 중 일부를 소비자에게 뿌린다. 이렇게 소비자에게 흘러들어가는 불법 보조금 중 최근 유행하는 방식이 페이백이라는 것이다. 일단 공시된 보조금만 고려해 휴대폰을 판매한 이후, 불법 보조금을 계좌로 이체해주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페이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단통법 시행 이전에도 일부 있었던 방식이다.

‘페이백’으로 고객 유인하기도

D씨는 “단말기 할부원금에다 보조금을 반영해 약정 계약을 하고 1주일 안에 일정 금액을 손님 계좌에 이체해준다”며 “망설이는 손님들에 한해 이 같은 제안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직접 만나 페이백을 제시할 경우 단속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구매 의사가 있는 소비자에게 ‘카카오톡’ 채팅을 통해 페이백을 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소재 대학원생인 E씨는 “휴대폰을 구입하자마자 친구가 페이백 방식으로 불법 보조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들었다”며 “단통법만 믿고 아무데서나 휴대폰을 구매했던 사람들만 또다시 호갱이 된 것 아니냐”고 했다. 또 다른 판매점장 F씨도 페이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솔직히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암암리에 페이백 조건을 내걸 때도 있다. 모든 손님들은 휴대전화를 더 싸게 사고 싶어 하는데 (정부가) 억지로 그걸 막았으니 판매점들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몰래 하는 페이백 없이는 아예 장사가 망한다. 그래도 반응은 미미하다.”

그렇다고 모든 판매상이 울상인 것은 아니다. 이동통신 대리점이나 판매점과 달리 대형마트와 전자양판점은 단통법의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일부 전자양판점은 휴대전화 매장을 1층 전면에 배치하면서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휴대폰 판매점 사업이 위축되자 소비자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롯데 하이마트는 지난 7월 휴대폰 판매 매출 520억원을 기록했다.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 실적이다. 서울 강남의 휴대전화 판매 점장 G씨는 “대형마트나 전자양판점은 유통 구조가 간결해서 우리 같은 대리점과 경쟁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며 “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 같은 영세업자를 죽이고 소비자 주머니도 어렵게 만드는 원흉은 바로 단통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통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단통법 시행 전에는 신형 단말기를 얼마나 할인 받느냐가 구매의 1차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보조금 영향력이 줄면서 어디에서 구매하건 큰 차이가 없다”며 “이미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바뀌고 있어 앞으로 다양한 유통채널이 등장하고 경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형마트·전자양판점 반사이익

이동통신사와 휴대전화 제조 업계도 할 말은 많다. 단통법 시행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이동통신사들은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고객을 서로 뺏고 뺏기는 악순환을 끊어 보조금 부담이 확 줄었고, 줄어든 마케팅 비용은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어서다. 한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는 “단통법 시행 이전엔 아무리 많은 보조금을 풀어도 서로의 고객을 맞바꾸는 것에 불과해 시장점유율은 1%포인트도 바뀌지 않았다”며 “정부가 보조금 규제를 법으로 강화하면서 보조금 피로감을 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통법으로 이통사만 득을 봤다는 지적에 대해선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에는 시장 상황에 따라 마케팅 비용을 큰 폭으로 조절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스마트폰에 법정 제한선 내에서 골고루 지원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향후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제조사들도 온도차가 크다. 단통법 시행 이후 중저가 스마트폰이 인기를 얻으면서 중저가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수혜를 입은 반면, 출고가가 비싼 고가폰 시장은 축소됐다. 실제 단통법 시행 직전인 지난해 9월과 올해 상반기 휴대폰 가격대별 판매율을 비교한 결과, 70만원 이상의 고가의 경우 60%에서 47%로 떨어졌지만 중저가는 40%에서 53%까지 증가했다. SK텔레콤이 출시한 ‘루나’, LG전자의 ‘마그나’, 삼성전자의 ‘갤럭시 A시리즈’, 화웨이 ‘X3’ 등은 수요가 증가세다. 이런 단말기는 최대 지원금을 받고 불법 페이백 혜택까지 받으면 공짜에도 기기 구입이 가능해 소비자들에게 인기다. 스마트폰 시장이 중저가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제조사들의 실적도 부진하다. LG전자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사업본부는 지난 2분기 전략 스마트폰 G4 판매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영업이익이 2억원에 그쳤다. LG전자는 지난 7월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에 지원금 상한제를 폐지해 달라고 건의했다.

단통법 시행 1년이 지났지만, 시장은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다. 정부는 이동통신 시장이 점차 안정화되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유통가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불법 보조금으로 호시절을 보내던 이들이 ‘불법’을 없애 단기적으로 어려워지니 우는 소리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단통법 시행 이후 시장이 침체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단통법 개선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면서 이동통신사와 휴대전화 제조사들 역시 기본요금제 폐지와 분리 공시제(제조사 지원금과 이동통신사 장려금을 따로 공시하는 것) 도입 등의 압박을 받고 있다. 더욱이 단통법의 궁극적인 수혜자여야 할 소비자들이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시장이 안정되기까지 좀 더 많은 시간과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 문희철·이창균 기자 moon.heechul@joins.com

1306호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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