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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 도시바] 비리보다 실적이 더 걱정 

2조2000억원대 회계 부정 … 메모리반도체 빼면 마땅한 수익원 없어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7월 21일 도시바 CEO인 다나카 히사오 사장이 회계 부정에 따른 사임을 발표하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 사진:뉴시스
올 봄 일본의 명문 기업 도시바가 오랜 기간 회계 부정을 저질러온 사실이 발각됐다. 도시바가 여러 방식으로 이익을 불리고 있다는 내부 고발을 접수한 일본 증권거래감시위원회가 움직이기 시작한 지난 2월부터 도시바는 안팎으로 크게 요동쳤다. 적발 당시엔 부정에 따른 이익 수정 규모가 500억엔 정도였지만 특별조사위원회는 4월 PC와 TV, 반도체 등에서도 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추가로 발견했다. 5월 전 검찰 간부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3자 위원회가 발족됐고, 이 위원회는 9월 도시바가 2248억엔 규모의 조직적인 부정을 숨겨왔다고 결론을 내렸다. 선진적 경영의 선두주자로 불렸던 도시바의 배신에 일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 사태로 다나카 히사오 사장 등 최고경영진 9명이 동시에 사임했다. 이 중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나카 사장뿐이다. 다나카 전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부정을 지시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특별위원회의 조사에서도 ‘감사법인으로부터 지적 받은 적도 없고, 회계 처리에 대해서는 규정에 따라 진행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보고서 내용을 살펴보면 그의 증언은 의심스럽다.

이번에 드러난 회계 부정 중 금액이 가장 큰 건 PC 부품 거래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정으로 이어지는 거래 형태는 2004년 시작된 것으로 다나카 전 사장이 이를 주도했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지만, 이 거래의 회계 처리를 악용해 PC 사업 적자를 실제보다 적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게 결론이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다나카 전 사장이나 사사키 전 사장은 부풀린 이익 누계액을 ‘부채’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나카 전 사장은 한때 이 ‘부채’를 우선 변제할 의향을 내비쳤다. 그러나 실적이 악화되자 재무담당 임원에게 극비로 몇 번이나 상담을 했고, 그가 변제 방침 철회를 언급하자, 이 임원은 ‘사장의 말이니 100% 따르겠지만 저는 반대입니다’라고 답했다는 충격적인 대화가 보고서에 나와있다. 다나카 사장도, 이 임원도 ‘부채’는 좋지 않은 것, 부정을 만드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는 얘기다.

먹구름이 드리운 도시바 원자력발전 사업


사실 이번 부정은 과거 결산을 정정한 것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계속해서 보고서 제출을 지연한 도시바는 지난 9월 7일에야 지난해 회계보고서를 제출해, 보고서 미제출에 따른 상장폐지를 면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4일엔 본 결산과 마찬가지로 지연됐던 1분기(4~6월) 실적을 발표했다. 결과는 110억엔 가량의 영업손실이었다. 전년 동기엔 477억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연결 매출액 역시 1조3498억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부관리체제 미비를 문제 삼은 도쿄증권거래소와 나고야증권거래소는 다음날인 15일, 도시바를 특별주의종목으로 지정했다. 1년 이내에 내부관리체제 개선 문서를 제출하고, 통과하지 못하면 상장폐지를 당한다.

수백억엔 정도의 과징금을 내야 하고, 전 경영진을 상대로 10억엔 배상을 요구하는 주주대표 소송도 시작됐다. 뒷처리가 만만치 않다는 의미다. 더구나 일류기업으로 인정받았던 도시바의 신용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투명경영으로 문화를 바꾸겠다며 도시바는 전체 11명의 이사 중 7명을 사외이사로 채웠다. 이사 후보자를 추천하는 ‘지명위원회’와 보수위원회, 감사위원회 위원 역시 사외이사로 바꿨다.

그러나 도시바가 안고 있는 문제는 신뢰 회복만이 아니다. 지난해 도시바의 영업이익은 1704억엔으로 히타치제작소(6004억엔)의 3분의 1도 안 된다. 전기 3사 중 매출 규모가 가장 작은 미쓰비시전기(3176억엔)보다도 영업이익이 적다. 도시바의 효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다. 삼성전자와 도시바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의 보급 속도가 빨라지고 하드디스크 교체 수요가 늘면서 연간 2000억엔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그러나 도시바의 사업 구조를 잘 뜯어보면 다른 문제가 응축돼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무너진 사업 확대 시나리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PC나 TV, 생활가전 등 만성 적자사업이다. 이들 사업으로 구성된 라이프스타일 부문은 지난해 1000억엔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정리해고가 있었음에도 올 1분기 역시 207억엔 적자였다. 또 하나는 플래시메모리 외에 든든한 수익원이 없다는 점이다. 2006년에 거액을 투자해 미국 대형 원자력 발전회사인 웨스팅하우스 인수에 나선 것도 반도체 의존적인 수익구조를 탈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원전 사업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 이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심려를 끼친 원전 사업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새로 취임한 무로마치 마사시 사장은 지난 8월 기자회견에서 2014년 실적 전망치를 설명한 후,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배포한 자료에는 지금까지 공개를 거부해왔던 원전 사업 매출이 그래프로 게재돼 있었다. 그는 원전 사업은 ‘꼭 필요한 장래성 있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장기간에 걸친 회계 부정이 적발된 부문은 주로 PC나 반도체였다. 그럼에도 일련의 소동 속에서 굳이 원전 사업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유가 있다. 원전 사업의 타당성을 둘러싸고, 투자자 사이에서 강한 불신감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초점은 원전 사업의 핵심이자 해외 사업의 중추인 미국 자회사 웨스팅하우스(WH)에 맞춰졌다. 도시바는 니시다 아쓰토시 사장 시절인 2006년 미쓰비시중공업과의 쟁탈전 끝에 세계적인 원자력 업체 중 하나인 WH를 손에 넣었다. 당시 ‘자산이나 실적으로 봤을 때, WH의 기업 가치는 높아야 3000억엔 정도’라는 게 정설이었으나 도시바가 인수한 금액은 6000억엔 이상이었다. 이 때문에 도시바의 회계 보고서에는 5000억엔에 달하는 WH의 ‘노렌(기업의 신용, 명예 등 무형의 경제적 가치)’이 계상돼 있다. 문제는 과연 지금의 WH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WH를 인수한 2006년엔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 급등과 지구온난화 문제 부각 등으로 원전이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각지에 원전을 건설할 계획을 표명했다.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신설 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미국도 2005년 규제를 완화했다. ‘2030년까지 전 세계에 150~200기의 원전이 신설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원전은 발전기 1기를 건설하는 데 비용이 대략 5000억엔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도시바는 WH를 손에 넣으면 이러한 전 세계 신설 물량을 대거 수주해 원전 사업을 글로벌 무대로 확장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사운을 걸고 인수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인수 직후인 2007년 WH는 중국에서 4기, 이듬해 미국에서 4기 신설 원전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2009년엔 원전 전문가로 WH 인수를 지휘한 사사키 노리오가 사장에 취임했다. 사사키 전 사장은 2015년 말까지 전 세계에서 39기의 원전을 수주해 부문 매출을 1조엔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장밋빛 시나리오는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으로 크게 틀어졌다.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원전에 대한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세계적으로 신설 계획을 재고하거나 철회하는 일이 잇따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통계에 따르면 2014년에 전 세계에서 새로 착공한 원전은 불과 3기 뿐이었다. 2010년의 5분의 1 수준이다.

최악의 적자에서 V자 회복 일군 히타치


WH가 있는 미국에서는 2005년 신설 규제 완화로 한 때 30기 이상의 신규 증설 계획이 있었으나, 실제 건설된 것은 3건(5기)에 불과하다. 이미 자금조달 문제 등으로 8건(12기)은 계획이 틀어졌다. 형식적으로는 9건(13기)이 남아있지만, 미국 당국의 안전 기준이 강화됐고, 셰일가스의 등장으로 원전의 비용 매력도 많이 떨어졌다. 물론 중국이나 인도처럼 여전히 원전을 계속 추진하려는 나라도 있지만 세계적인 원전붐은 사실상 식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도시바가 WH를 인수한 후 WH가 수주해 착공에 이른 원전은 중국과 미국을 합해 모두 8기다.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인 2007~2008년에 계약한 것으로 현재 건설 중이다. 이들을 제외하면 착공이 확정된 수주건은 더 이상 없다. 사사키 사장 시절 내걸었던 39기 계획에 크게 못 미친다. 상황이 이러니 WH의 자산 평가에 대해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5000억엔에 달하는 WH 관련 무형자산은 사업이 장래에 낳을 수익을 전제로 한 자산이다. 상정했던 것처럼 수익이 나오지 않는다면 자산으로서의 정당성을 잃고, 결산에서 감손처리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금액이 워낙 큰 만큼, 감손처리를 했을 때의 충격이 엄청날 것이다. 이 때문에 WH를 둘러싼 감손 문제가 ‘도시바의 최대 폭탄’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도시바는 여전히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무로마치 사장 또한 ‘현재로서는 자산 장부가액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현상이나 상황 변화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투자자는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원전 사업이 갈피를 못 잡는 상황에서 과거의 수익원마저 거의 퇴물이 됐다. 9월 10일 도시바의 시가총액은 1조4000억엔이다. 경쟁사인 히타치제작소(약 3조엔)의 절반 이하고, 도시바보다 매출 규모가 작은 미쓰비시전기(약 2조5000억엔)에도 크게 못 미친다. 사실 도시바에 대한 주식시장의 냉담한 평가는 이번 회계 부정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종합적으로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사업 구조에 있다. 히타치가 정보 시스템이나 건설기계, 자동차 부품 등 폭넓은 부문에서 수익을 올리는 데에 반해, 도시바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중심의 전자 디바이스 부문이 전체 이익의 절반을 차지한다.

다른 부문은 수익성이 너무 낮다. 특히 PC와 TV, 가전 등 라이프스타일 부문은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다. ‘돈벌이가 되는 반도체 사업이 있음에도 PC 등 적자사업 탓에 도시바의 시가총액이 깎이고 있다’는 게 와카바야시 히데키 서클크로스 코퍼레이션 사장(전 애널리스트)의 지적이다. “대기업 디스카운트(적자나 리스크가 큰 사업으로 인해 수익사업에 대한 평가가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현상)에서 프리미엄으로 바꿔 나가고 싶다.” 다나카 전 사장은 재임 중, 낮은 시가총액에 대해 물으면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그가 2013년에 사장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도시바 한 임원은 기관투자자들에게 ‘(다나카 사장이 취임했으니) PC와 TV를 떨궈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전임인 사사키노리오 사장 시절엔 니시다 아쓰토시 회장(당시)을 배려해 PC 사업을 축소하지 못한 사정이 있었다는 의미였다. 니시다 전 회장은 PC사업 영업부 출신으로 도시바의 노트형 PC를 세계에 확산시킨 주역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도시바는 1989년 세계 최초로 노트형 PC를 발매해, 1990년대 세계 최고로 군림하며 한때 PC 사업에서만 1조엔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밀려 노트북 시장이 축소됐고, 단가마저 떨어지면서 사실상 ‘짐짝’이 됐다. 이번 회계 부정도 사실 이와 관련된 적자를 작게 보이려 했던 것에서 출발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다나카 전 사장은 취임 이후 적자 사업에 대한 ‘성역 없는 개혁’을 내걸었다. 그리고 2년 동안 PC, TV 부문에서 여러 번에 걸친 정리해고를 실시했다. 2015년엔 미국 TV 시장에서 철수했고, 신흥국에서는 개인을 상대로 한 PC 판매를 접었다. 그러나 구조개혁이 다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회계 부정이 발각됐고, 그는 회사에서 쫓겨났다.

도시바와 대조적으로 이미 히타치와 미쓰비시전기는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 중이다. 히타치는 2008년 일본 제조업 사상 최악의 적자(7873억엔)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경영체제를 쇄신하면서 회생에 성공했다. 종합 전기회사에서 인프라 기업으로 전환을 추진하면서 흥망이 심한 TV 등 가전 분야는 축소했다. 그룹 내 중복되는 사업을 정리하고, HDD(하드디스크 구동장치) 등 채산성이 낮은 사업은 잇따라 매각했다. 지금은 유럽의 철도사업을 필두로 글로벌 성장을 모색 중이다. 기존 사회 인프라나 전력 시스템을 IT 서비스와 연결하는 사업 모델이다.

반도체·가전 버리고 회생한 미쓰비시전기

미쓰비시전기의 최대 난관은 반도체 사업 적자였다. 어렵다는 판단을 한 미쓰비시전기는 과감하게 정리에 나섰다. D램 사업은 2003년 엘피다에 매각했고, 시스템 LSI(대규모집적회로) 부문은 히타치와 공동 출자한 르네상스테크놀로지(현 르네상스 일렉트로닉스)로 분리한 뒤 최근엔 완전히 사업을 떼냈다. 휴대전화와 세탁기 사업도 버렸다. 그러면서 유일하게 사내 시너지 효과가 예상되는 파워반도체는 남겨뒀다. 동시에 파워모듈·승강기 등 B2B 사업에 집중했다. 그 결과 미쓰비시전기는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도시바로서는 부러울 만하다. 역대 3인의 사장 밑에서 실시된 조직적인 부정이 발각되고, 한 순간에 일류기업의 명예와 신뢰도 잃었다. 곧 주주총회의 승인을 거쳐 새로운 체제가 가동되겠지만 정상화를 위한 여정은 멀다. 사업구조 개혁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상처투성이가 된 도시바의 새 출발은 과연 성공할까?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1306호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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