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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묘수 보여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건 하수의 태도 ... 국정교과서 논란에 우리의 약점 투영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국정교과서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여론이 좌우로 분열돼 연일 상대방을 공격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 문제는 우리의 고질적인 약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 일은 옛날 우리 조상들이 당파싸움을 벌이며 소모전을 벌인 것을 연상시킨다. 다른 파 사람을 배제하고 많은 사화를 일으켜 인재들을 제거해 버리는 악수를 낳았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국난이 초래됐다. 국가 정책이나 비즈니스 등에서 지금과 같은 행태를 보인다면 우리의 경쟁력은 뒤떨어지 게 될 것이다. 바둑을 통해 국정교과서 사태에 나타난 우리의 문제점을 조명해 보기로 하자.

◇가치판단은 어렵다= 세상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기본적인 방식이 있다. 가능한 대안을 찾아 몇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작성한 후 그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좋은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면 이것을 극복할 방안을 생각해 내고 그 방안들을 비교하여 최적의 것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런 의사결정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각 대안의 선악을 평가하는 ‘가치판단’이다. 예상되는 몇 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것이 좋은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국정교과서 문제도 이와 같은 가치판단의 어려움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다. 보수적인 역사교과서는 일본의 우익 교과서처럼 체제 미화적인 경향을 띠게 될 것이다. 반면 진보적인 역사교과서는 체제 비판적인 입장이 반영될 것이다. 냉정하게 보면 선악판단이 그리 간단치 않다.

[1도]와 같은 모양에서 흑1에 어깨 짚어 흑17까지 되는 모양이 있다. 정석사전에는 이 수순이 하나의 정석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정석에 대한 평가는 기사에 따라 다르다. [2도]에서 백1에 뛰고 보면 귀 쪽에서 얻은 백의 실리가 30집에 달한다. 그동안 흑은 중앙의 두터운 세력을 얻었다. 이 모양을 놓고서 실리 형인 사람은 백이 좋다고 주장한다. 백은 적지 않은 현금을 확보한 데 비하여 흑은 뚜렷한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력 형인 사람은 흑의 세력이 앞으로 상당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보아 흑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을까? 이런 경우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흑의 세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현 시점에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기사들은 자기 입장을 주장하되 그걸 고집하거나 강요하지는 않는다. 상대편의 주장을 묵살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쪽을 좋아하지만 상대편의 입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기사들은 이런 문제를 놓고 싸우지 않는다. [3도]에서 백에게 실리를 많이 주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보는 사람은 흑 1과 같이 다가서는 수를 택한다. 백2에 받아주면 흑3에 벌리는 것이 정석이다. 흑은 앞의 정석에 비하여 실리상의 부담이 적은 대신 막강한 세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바둑의 사고방식 = 찬반이 엇갈리는 문제에서는 바둑고수들의 사고방식이 현명한 처리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세상살이에도 응용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선악 평가가 어려운 사안에 자신의 성향이나 철학 등이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자신의 입장을 얘기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이 절대 옳다는 논리는 금물이다. 선악 판단이 어려운 문제에서 어느 한 쪽이 옳다고 보는 것은 이치상 타당하지 않다. 이 경우 상대편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보는 편이 바람직하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자신과 다른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자세로 바라보면 자기 생각만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사실 언성을 높이며 싸울 이유가 없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존중하며 대화로 풀어가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미덕이 아닐까 싶다. 좌편향 우편향을 염려하기보다 학생들에게 이런 습관을 가르쳐주는 것이 더 중요한 교육이 아닐까. 왜냐하면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관행이야말로 우리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중대한 악습이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일부러 전혀 다른 분야 사람들과 대화를 했다고 한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만 상대하면 ‘그 나물에 그 밥’ 식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본 때문일 것이다. 잡스처럼 다른 의견을 찾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는 다른 의견을 극구 배제하려 한다면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나 국가기관 등에서 이런 행태를 보일 경우 조직의 발전에 중대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특히 최고경영자가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부하직원들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제안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의견을 내면 핀잔을 받거나 불경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문제해결적 사고 = 문제해결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주장만 옳다고 맹신하는 태도는 하수의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목표에 도달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자신이 생각한 수가 최선이라고 단정짓는다면 다른 수를 검토할 길을 스스로 차단하는 셈이 된다. 예를 들어 외교관계에서 우방인 미국과 일본을 중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방과 친분을 두텁게 하는 것이 최선의 수가 될 것이다. 이렇게 단정지으면 중국이나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맺는 것은 배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직면한 상황 등 여러 문제를 고려하면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어느 한 쪽 입장에서만 바라봐서는 묘수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둑에서도 전투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대부분 문제를 싸움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을 한다. 적과 타협하는 것은 하책으로 보이며 투쟁하여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신념을 갖게 된다. 이런 타입의 기사들은 많은 실패를 겪은 다음에야 자신의 기풍을 바꾸는 수가 많다. 전투적인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바둑판의 운영을 경직되게 만든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것이다. 물론 집짓기의 입장에서 본 사람도 나중에 전투력을 가미한 바둑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수의 태도이며, 조직의 발전과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바둑에서처럼 다른 입장도 인정하며 다양한 수를 생각하는 지혜를 갖도록 하자.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310호 (20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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