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골리앗 크레인이 주는 교훈 

 

이강호 PMG 회장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눈에 띈다. 어느새 또 한 해가 지났구나 싶다. 1년을 정리하면서 내년을 생각했고, 좀 더 멀리 10년 후 변화까지 나름대로 예상해보며 주말을 보냈다. 여러 기관들의 예측이 그렇듯 내년 한국 경제는 올해만큼 어려운 시기를 보낼 것 같다. 실물 경제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CEO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지금 우리는 유례 없는 위기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 연말 송년회의 주된 대화 주제였다.

지난 여름 여러 CEO와 덴마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국제공항에선 바다 건너로 스웨덴이 보인다. 최근엔 교량이 연결돼 자동차로 쉽게 오간다. 건너 편에 보이는 도시가 바로 ‘말뫼’다. 그리고 이 도시 외곽엔 ‘토르소’라는 최첨단 나선형 빌딩이 있다. 건축 양식이 특이해 많은 건축가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토르소 빌딩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예전 대형 조선소가 있었던 광활한 평지가 보인다. 한국·일본 등과 경쟁하던 조선소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지만 남았다. 원래 이곳 조선소에 설치돼 있던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은 우리나라 조선소에 단돈 1달러에 매각돼 한국으로 건너왔다. 우리나라 조선업이 세계 경쟁에서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징표였다. 그렇게 20년 이상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켜왔지만 요즘 우리나라 조선업, 참 어렵다.

뉴욕 법인장으로 일할 때다. 미국 변호사의 소개로 당시 미국 제2의 철강회사였던 베들레햄스틸의 전직 임원을 채용하려고 했다. 그는 기세등등했다. 면접에 온 그가 제시한 근무 조건은 출장 시 비행기 1등석 제공, 숙박 시 스위트룸 제공 등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 사람을 채용하지 않았다. 그 후 신문에서 포스코와 같은 위용을 자랑하던 베들레햄스틸이 위치했던 도시가 고스트타운(유령도시)이 됐다는 기사를 봤다. 철강 공급 부족에 시달릴 때 전 세계 바이어가 사정을 해가며 제품을 사가던 회사였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앞선 지금 전 세계 철강 기업은 위기에 처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포춘지가 발표한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를 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 단 10개에 불과했던 중국 기업의 숫자는 98개로 크게 늘었다. 이와 달리 미국 기업은 179개에서 128개로 줄었다. 포춘의 편집장은 “영국은 독창성으로 증기기관, 기계식 직조기 등을 발명해 19세기를 지배했고, 미국은 탄탄한 경영학 기반을 바탕으로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춘 초대형 기업들을 탄생시키며 20세기를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 그런 시대가 끝났다고 지적한다. 그는 “광대한 웹, 어느 곳에서나 모든 시간대에,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연결되는 모델이 출현했다”며 “21세기는 이와 같은 새로운 모델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로널트 코즈가 “지난 세기의 초대형 기업들이 차츰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세계의 산업 환경은 전례 없는 속도로 변하고 있다. 대부분의 리더가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있으나 대응책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는 것 같다. 시간이 많지 않다. 골리앗 크레인과 베들레햄스틸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제3의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그 주인공이 한국이 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하고, 전력투구 해야 한다. 내년을 그 시작점으로 삼자.

- 이강호 PMG 회장

1316호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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