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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빅4의 인터넷전문은행 대응책] 동상이몽 속 각자도생 

KB·우리은행, 인터넷은행과 손 잡아 … KEB하나·신한은행, 자체 핀테크 역량 강화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summary | 리딩뱅크 자리를 노리는 4대 시중은행 앞에 복병이 나타났다.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운영비가 적게 드는 인터넷전문은행은 금리와 서비스 면에서 기존 은행을 위협할 수 있다. 이들에 대처하는 4대 은행의 전략은 판이하다. KB·우리은행은 적과의 동침을, KEB하나·신한은행은 자력갱생의 길을 택했다. 최후엔 누가 웃을까.

지난해 하나·외환은행의 합병으로 KEB하나은행이 탄생하면서 은행권은 ‘빅 4’ 체제로 재편됐다.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로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 금융계를 주름잡았던 5강이 지고 ‘하국우신(KEB하나·KB국민·우리·신한)’의 4강 시대가 열렸다. ‘리딩 뱅크’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예고한 은행 4인방은 예상보다 일찍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은행 업계에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새로운 ‘메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영업점 없이 인터넷으로 금융 업무를 처리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운영비가 줄어 고객에게 더 많은 금융 혜택을 줄 수 있다. 이자와 수수료 수익으로 먹고 사는 은행에겐 위협이 되는 존재다. 하지만 이 ‘메기’를 상대하는 은행들의 전략과 셈법은 달랐다. 공교롭게도 두 은행은 ‘적과의 동침’을 선언했고, 나머지 두 은행은 독자 노선을 택했다. KB국민은행이 카카오가 주축이 된 카카오뱅크에, 우리은행이 KT가 주축이 된 케이뱅크에 각각 지분을 투자한 반면 KEB하나·신한은행은 인터넷전문은행에 참여하지 않았다. ‘리딩뱅크’를 둘러싼 경쟁 가도에서 판도를 뒤바꿀 만한 새로운 변수가 등장한 셈이다.

입출금 거래 때 10명 중 9명 은행 가지 않아


인터넷전문은행은 지점을 통하지 않고 모바일이나 ATM 등의 전자기기를 통해 금융 업무가 이뤄지는 은행을 말한다. 카카오 뱅크는 모바일을 통해, 케이뱅크는 GS리테일의 편의점 자동입 출금기(ATM)를 ‘메인 무대’로 금융 업무를 처리할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기존 은행의 운영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임대료나 인건비를 아끼는 대신 그걸 포인트 등의 이자로 금융 소비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계획이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택시 포인트, 카카오 이모티콘, 온라인게임 아이템 등을 예금 이자로 지급하는 카카오 유니버설 포인트를 도입할 예정이다. 케이뱅크도 통신사 데이터, 올레 TV 상품권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미 대다수의 사람이 은행 지점을 방문하지 않고 금융 업무를 보는 현실에서 온라인 금융에 특화된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은 기존 은행 입장에선 눈엣가시가 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은행의 입출금·자금이체 거래(건수 기준)의 89.3%가 인터넷뱅킹을 비롯한 비대면 방식으로 이뤄졌다. 나머지 10.7%만 은행을 방문해서 업무를 봤다. 금융연구원 이윤석 연구위원은 “금융 거래의 편의성이 확대되고, 기존 은행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지급하며, 혁신적인 금융상품을 선보일 경우 기존 은행의 고객층이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차)으로 편안하게 앉아서 돈을 벌던 과거와는 달리 저금리·저성장 탓에 수익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핀테크라는 새로운 조류에 밀려나선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기 다른 인터넷 전문은행과 손을 잡았다. KB국민은행 측은 온·오프라인 고객수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만큼 인터넷전문은행에 참여해 기존의 명성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오프라인 채널의 전통적 강자인 KB국민은행과 온라인 네트워크의 강자인 카카오가 만나면 온·오프라인 마켓을 동시 공략해 금융상품의 트렌드를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KB국민은행의 스마트폰 뱅킹인 ‘KB스타 뱅킹’ 가입자가 지난해 4월 1000만명을 돌파하는 등 모바일 뱅킹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본 경험과 네트워크를 통해 카카오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모바일 부동산 중계업체인 ‘직방’과 MOU를 맺고, 방을 구하는 사람에게 바로 대출 서비스를 해주는 사업 모델 등 다양한 금융상품 개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은행은 모바일 뱅킹의 성공 경험을 주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중금리 대 대출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구현하고자 하는 수익 모델에서 이미 성과를 낸 경험이 있다. 우리은행은 ‘위비뱅크’라는 모바일 뱅크를 통해 핀테크 업체의 전유물이었던 중금리 대 대출을 시중은행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신용등급이 7등급인 고객도 최대 1000만원까지 연 5.8~9.6%의 금리로 대출해주는 위비모바일대출 건수는 지난해말 기준 1만3000건(500억 원)에 달했다. 케이뱅크 쪽에서도 우리은행의 모바일 뱅킹 운용 능력과 마케팅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케이뱅크 측은 “KT가 보유한 통신 기록과 가맹점 매출 정보 등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신용평가 시스템을 통해 중금리대 대출 시장을 공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KEB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핀테크라는 기초체력을 쌓아나가면 얼마든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KB국민은행이나 우리은행과는 달리 민간은행으로서 기술 금융 분야에서 충분히 실력을 쌓고 대비해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도 “신용 리스크 관리와 보안상의 문제 등을 감안하면 첫 차를 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KEB하나은행은 자체적인 핀테크 능력을 쌓는 한편 제휴를 통해 고객에게 다양한 금융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올해 1월 중으로 생체인증 기능을 탑재한 모바일 뱅킹인 ‘1Q’뱅크를 선보일 것”이라며 “영업점 방문 없이 고객을 유치하고 상품에 가입하게 하는 게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또 하나금융그룹 계열사의 포인트를 한 곳에 모아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하나멤버스’의 제휴사를 늘려 모바일 결제 서비스 분야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은행 간 혁신경쟁 더욱 치열할 듯

신한은행은 내실을 다지면서 기회를 엿보겠다는 전략이다. 한동우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신한은행이 인터넷전문은행 참여에 빠진 것과 관련 “향후 은행법이 개정되면 다시 설립을 추진할 수 있다”고 여지를 열어뒀다. 대신 자체적인 핀테크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말 모바일 은행인 ‘써니뱅크’와 통장이나 카드 없이 손바닥 정맥 인증으로 본인 인증이 가능한 디지털 키오스크를 선보였다. 개인 간 대출 플랫폼 기업인 어니스트펀드, 해외송금 서비스 업체인 스트리미 등 핀테크 업체에 투자해 기술을 선점해 중금리대 대출, 해외간편 송금 등의 서비스도 개발 중이다.

인터넷전문은행과의 동맹 여부에 상관없이 은행 간 경쟁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구자현 연구위원은 “인터넷전문은행은 하나의 플랫폼으로, 이 플랫폼을 확보했는지 여부보다 중요한 것이 어떤 콘텐트를 보유하고 있느냐의 문제”라며 “누가 더 혁신적인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낼지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은행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게 되면 금융 소비자는 좀 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연구원 이윤석 연구위원은 “인터넷전문은행이 금융 거래의 편의성을 높이고, 기존 은행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지급하며, 혁신적인 금융 상품을 선보일 경우 기존 은행의 고객층이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1319호 (201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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