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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귀헌의 ‘질문 레시피’ 책임감을 키우려면] 모든 행동은 내 덕 또는 내 탓 

스스로 결정했다는 자기결정성 인지해야 ... 불평할 시간에 경쟁력 제고 고민 

권귀헌 질문연구소 SMART Q-Lab을 운영

▎일러스트:중앙포토
며칠 전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이렇게 물었다. “아빠, 수학을 잘하는 게 좋아, 아니면 국어를 잘하는 게 좋아?” 나는 순간 “그야, 둘 다 잘하면 좋지. 너는 뭐가 좋은데?”라고 답하려다가 호기심이 생겨서 이렇게 반문해봤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러자 아들이 하는 말이 “내 생각에는 수학을 더 잘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왜냐면 숫자는 끝이 없기 때문에 수학이 더 어려울 것 같아.” 나는 이렇게 받아줬다. “그런데 국어는 끝이 있어?”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 국어는 끝이 있어. 왜냐하면 글자가 몇 개 없잖아.” 나는 또 이렇게 물어봤다. “그럼, 오늘부터 수학 공부 열심히 하겠네?” 아들은 이렇게 답했다. “아니, 근데 난 국어가 더 좋아.”

책임감은 자기결정에서 자라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만큼 좋은 평가가 있을까. 두터운 책임감을 가진 구성원이 많을수록 조직은 성장할 확률이 높다. 책임감은 곧 주인의식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책임감에 점수를 부여한다면 몇 점이 적당할까. 상급자나 주변 동료들은 나를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사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년생일수록 자신의 책임감을 제대로 길러두는 것이 좋다. 아무리 일을 잘하더라도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큰일을 맡기지 않는 법이다.

그렇다면 책임감은 어떻게 강해질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책임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책임이라는 영어 단어 ‘responsibility’를 보면 ‘response’와 ‘ability’로 이뤄져 있다. 이는 곧 어떤 상황에 대한 반응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스스로 뭔가를 결정했다는 것은 곧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자기결정에서 책임감이 자란다는 뜻이다.

자기결정에 대한 이론은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L. Deci)가 정립했다. 그는 1969년, 인간의 동기에 관한 위대한 실험을 수행했다. 대학생 두 그룹이 퍼즐 과제를 수행하는 중 주어지는 8분 간의 휴식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첫날, 아무런 보상이 없었음에도 두 그룹 모두 휴식시간 중 3분 45초를 퍼즐에 할애했다. 다음 날에는 A그룹에만 ‘과제 완수 시 1달러’라는 보상을 제시했다. 그러자 A그룹은 휴식시간 중 약 5분을 퍼즐 과제 수행에 사용했다. 이와 달리 B그룹은 전날과 달라지지 않았다. 3일 째 되는 날에는 첫날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보상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자 A그룹은 휴식시간의 3분만 과제 수행에 할애한 데 반해 B그룹은 전날보다 더 긴 시간을 사용했다. 의욕을 고취시켰던 외적 보상이 사라지자 동기가 감소했던 것이다. 오히려 아무런 보상이 없을 때 퍼즐에 몰두했고 과제를 즐겼다.

이 실험은 상과 벌이 인간의 행동을 이끈다는 ‘스키너’식 행동 주의에 대비되는 결과로 경제적 이득, 권력에 대한 욕구, 외부를 향한 이미지 등과 같은 외재적 요인이 공공사회에 대한 헌신, 대상에 대한 호기심, 자발적 욕구와 같은 내재적 동기보다 강력하지 않다는 수많은 후속 연구를 이끌어냈다. 이후 에드워드 데시는 리차드 라이언(Richard M. Ryan)과 함께 인간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마음(내재적 동기)뿐 아니라 행동이나 성과에 대한 외부의 보상이나 자극, 환경적 요인(외재적 동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기 스스로 대처하고 행동한다고 밝혔다. 이를 자기 결정성(Self-Determination)이라고 명명했다. 스스로의 의지와 결정이 동기를 좌우하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어떤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그 행동의 출발이 자신의 결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결정성은 당연하지만 우리가 놓고 있던 심리적 권리이다. 그러나 직장에서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조직의 크기와 무관하게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많은 것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뿐이다. 단순화하자면 그것이 바로 직장에서의 일이다. 직급에 따라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자신이 결정하지 않은 일도 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스스로 결정하고 거기에서 책임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몇 가지 팁을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미 스스로 결정하고 있음을 깨닫자.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린 늘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에 따라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부정하고 타인이나 외부의 요인 때문이라며 남 탓을 한다. 예를 들어 연이어 야근을 하거나 다른 부서의 업무를 떠맡는 것도 결국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건전한 불만 제시, 밉상처럼 굴며 자신만 쏙 빠지기, 노조를 활용한 인권 주장, 퇴사나 이직과 같은 여러 선택도 있지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이미 선택하고 있다는 말이다. 도둑이 칼을 들고 협박해도 지갑을 줄지, 싸울지, 도망갈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심리적 인정이 필요하다.

과거에 집착 말고 미래를 봐야

둘째, 조직 내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하자. 구글에서도 꿀먹은 벙어리 사원을 가장 경계한다고 한다. 어차피 반영되지도 않을 것이라며 회의 시간에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면 모든 일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다는 생각을 갖게 할 뿐이다.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더라도 의연하게 받아들이자. 그에게도 나의 의견을 거부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런 생각하기와 의견 내기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상급자는 바뀌게 마련이다. 조직 전체가 그런 분위기라면 실력을 쌓은 후 떠나라. 불평하기보다는 그런 상황에서도 경쟁력을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셋째, 매사에 이유보다는 목적을 생각하자. 어떤 일이든 일어난 배경(과거)과 해야 하는 목적(미래)이 있다는 말이다. “부장님이 시켰어” “저번 달 실적이 형편없어서”와 같이 이미 일어난 사건에 집중하면 자신이 하는 일에 정을 붙이기 어렵다. 내가 결정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정리해서 넘겨야 자금부에서 편하지” “다음 달에는 만회해보자”라는 목적을 갖고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내 의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아들은 시키지 않아도 이런저런 말을 잘 만들어내고 농담도 심심찮게 한다. 그런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태도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우리는 “부장님이 시켰어”라고 말하며 그 일의 목적보다는 이유를 가슴에 담아 둔다. 책임감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늘 되물어라. 내 스스로 결정했다고 확신하는가. 남 탓으로 돌리고 있지는 않는가. 나아가 주변 사람들도 스스로 결정하도록 돕는다면 두터워진 책임감이 인간으로서 됨됨이는 물론 능력까지 출중하게 키워줄 것이다.

권귀헌 - 어떤 질문을 해야 삶이 풍요로워지는지 연구하는 조용한 혁명가로 질문연구소 SMART Q-Lab을 운영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세계를 이끄는 한국의 최고 과학자들], [질문하는 힘], [삶에 행복을 주는 시기적절한 질문] 등이 있다.

1319호 (201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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