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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비즈니스 모델 | ‘빌려주는’ 서비스] 공간도, 아이디어도, 돈도 빌린다 

생활밀착형 대여·대출 스타트업 대거 등장 … 공유경제와 핀테크 영향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일러스트:중앙포토
‘큰집에 맡기고 큰집에 살자’. 스타트업 ‘큰집’을 시작한 이종호 대표가 만는 슬로건이다. 그가 구상한 사업은 창고 빌려주기다. 창고를 가진 사람과 공간이 필요한 수요자를 연결하는 공유 비즈니스다. 이종호 대표는 “강남 사무실 임대료가 얼마나 비싸냐”며 “저렴한 가격에 물품을 보관해 공간 활용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대 사업가인 이 대표는 열정이 넘친다.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한 다음 투자자를 찾아 다녔다. ‘공간 빌려쓰기’라는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엔젤투자가 덕에 그는 스타트업 창업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사업을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해나갈지 고민하던 그는 예상치 못한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다른 스타트업 기업인이다.

이 대표가 창업자에게 사무용 공간을 빌려주는 스타트업 르호봇을 찾았을 때다. 사무 공간도 얻고 이곳에 입주한 다른 기업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갔다. 르호봇은 공간만 제공하는 기업이 아니었다. ‘창업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며 도움을 제공하는 장소였다. “생각보다 훨씬 깊이 있는 창업 상담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벤처 인큐베이팅까지 지원해주더군요.”

르호봇 다음에 찾아간 사무실 공유 스타트업 패스트파이브에서도 색다른 경험을 했다. 패스트파이브는 입주 스타트업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교재의 장을 제공했다. 창의성을 자극하는 공간에서 입주 기업이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 미국의 공간 비즈니스 업체인 위워크(WeWork)를 롤모델로 삼아 설립했다. 위워크는 독특한 사무실 공간 구성으로 유명하다. 스타트업을 배치할 때 사업의 연관성을 계산해서 공간과 통로를 구상한다. 사무실에서 움직이는 동선에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스타트업 창업자의 책상이 있다. 자연스럽게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사막을 지나는 상인들이 오아시스에서 모이듯, 위워크 곳곳엔 카페가 있다. 사무실을 공유하는 이들이 교제하는 장소다. 위워크 관계자는 “스타트업 기업의 경험을 살려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사업을 키운 덕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스타트업이 찾아오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위워크는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뒤를 잇는 공유경제 기업으로 꼽힌다.

생활밀착형 ‘빌려주기’ 강세

공유경제 기업의 성장은 스타트업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필요한 것을 빌려주는 행위를 벤처인들이 사업으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주거공간·사무실 공유 기업이 크게 늘었다. 의류·스마트폰·교재를 빌려주는 생활밀착형 스타트업도 강세다. 지난해 9월 첫선을 보인 원투웨어는 월 10만원 내외 금액을 내고 여러 브랜드의 옷을 대여하는 스타트업이다. 옷 한 벌 가격으로 마음에 드는 다양한 옷을 입어볼 수 있어 직장 여성 사이에서 인기다. 원투웨어가 옷 상태를 관리하기 때문에 별도로 세탁할 필요도 없다.

쏘시오에서는 휴대전화·청소기· 카메라 같은 가전제품을 하루 단위로 빌릴 수 있다. 하루 2000원이면 애플워치를 빌려 찰 수 있다. 제품을 대량 구매해 여러 이용자와 공유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학 교재를 빌려 쓰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빌북은 학생들이 쓰지 않는 교재를 맡겨두면, 빌북에서 이를 필요한 학생에게 대여한 후 수익금을 공유하는 서비스다. 교재를 맡긴 학생은 맡긴 교재가 대여될 때마다 정가의 10%를 받을 수 있다. 빌북을 운영하는 이준승 플래니토리 대표는 “지난해 고려대에서 교과서 나눠 사용하기를 시범 운영하며 학생들의 수요를 확인했다”며 “빌북 서비스가 대학교내 불법 제본 문제를 개선하고, 학생들 간의 공유경제를 통한 교재 비용 부담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승 대표는 웹사이트 구축을 마무리 했다. 전국 대학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남의 것을 빌려 쓰는 걸 꺼렸지만 최근에는 누군가와 공유하는 게 실용적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지금보다 더 다양한 물품을 공유하는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빌려주는 서비스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친 다른 한 축은 핀테크다. ‘현찰’은 시대를 불문하고 빌리기 가장 어려운 품목이다. 핀테크 시장이 발전하며 틈새시장이 생겼다. 새로운 형태의 금융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핀테크 스타트업 렌딧이 좋은 예다. 이곳은 짧은 시간에 자리잡은 P2P(개인간) 대출 업체다. 렌딧의 심성준 대표는 카이스트 출신의 벤처인이다. 스타트업 창업 당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자금 마련이었다. 기존 금융권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 자신있게 들고간 사업 계획서를 본 은행 담당자의 답은 ‘신용정보가 부족하다’였다. 제2금융권은 이자가 너무 높았다. 20%의 금리는 신생 기업이 감당하기 어렵다. 기존 벤처캐피털 가운데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을 운영하는 곳은 소수다. 김 대표는 미국 핀테크 P2P 기업 랜딩클럽을 통해 자금 문제를 해결했다. 금리는 7%. 깊은 인상을 받은 김 대표는 랜딩클럽을 벤치마킹한 랜딧을 창업했다. 벤치마킹 대상인 렌딩클럽은 최근 성공리에 나스닥에 상장했다.

“저금리 은행 대출은 1~4등급의 높은 신용등급 고객만을 수용할 수 있고 저축은행, 캐피털 등 2금융권은 7% 이상의 조달 금리에 지점 운영비용, 인력비용에 마진까지 더하면 20% 이상의 금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 간극을 저비용 구조인 우리가 메울 수 있습니다.”

틈새시장 중금리 대출 공략

렌딧의 강점은 빠른 대출과 합리적인 금리다. 10% 내외의 중금리 대출을 신속하게 진행해준다. 신용평가사로부터 받는 250여 가지의 고객정보와 SNS의 소셜데이터, 자사 사이트에서의 행동분석 등을 분석해 대출을 결정한다. 1금융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신용등급자가 주 고객이다. ‘제2금융권의 절반 수준의 금리’ 소문에 고금리에 허덕이던 사람이 몰렸다. 렌딧은 6개월 만에 368건, 61억원의 대출을 진행했다. 월평균 200% 이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추가 투자자금은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을 통해 모집했는데, 공고 5번 만에 38억원을 모았다.

올 상반기에는 렌딧과 유사한 빌려주는 핀테크 서비스가 더 많이 등장할 전망이다. 스타트업 크라우드펀딩기업이 P2P 서비스 시장 진출을 예고했다. 8퍼센트·렌딧·펀다·어니스트펀드같은 벤처기업이 관련 서비스를 내놨고, 성장세도 빠르다. 여기에 증권형 크라우드펀딩 서비스(증권 발행과 투자자 중개서비스)도 시동을 걸었다. 비상장 기업에 대한 증권발행과 투자자를 연결시켜주는 이 서비스는 그동안 관련 법이 없어 시장에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개정된 자본시장법이 1월 25일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관련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벤처기업인 인크는 법 시행에 맞춰 정식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인크를 비롯해 신화웰스펀딩, 유캔스타트, 팝펀딩, 펀딩포유 등 새로운 스타트업 속속 등장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인터넷전문 은행 출범을 계기로 “금융 업계에서도 핀테크 창업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 더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공유경제 : 물건을 소유하는 개념이 아닌 서로 빌려 쓰는 경제활동을 일컫는다. 2008년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하버드대 교수가 처음 이 개념을 언급했다.

1320호 (20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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