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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솔 피어나는 중앙은행 무용론] 돈 푸는 거 말고 여태 뭘 했지? 

8년 간 7000조원 쏟아 부어도 세계 경제 풍전등화 ... 통화정책 효과에 의문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일본은행은 1월 29일 추가 금융완화의 일환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 사진:중앙포토
“올해 세계 경제는 다소 등락이 있겠지만 지난해 3.1%보다 다소 높은 3.4%, 내년에는 3.6% 성장을 기록할 것이다.” 1월 24일 폐막한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다보스포럼)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 말이다. 각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도 힘을 보탰다.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 등이 그랬다. 그들은 각자 자국 경제의 긍정적 지표를 언급하며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 8년 만에 또 한 번의 경제위기가 다가올 수 있다는 우려를 잠재우고 싶었을 터다. 포럼이 열리는 동안에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5년 만에 최저인 6.9%로 떨어지고, 홍콩 증시가 폭락하는 등 연이어 악재가 터졌지만 이들의 전망은 내내 장밋빛이었다.

“통화정책 이미 갈 때까지 갔다”


그러나 다보스포럼에 참가한 일부 경제학자와 투자전문가의 생각은 달랐다. 말뿐인 낙관론과 양적완화만으로 벗어날 수 있는 위기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번 다보스포럼에선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중심의 시장 왜곡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연이어 제기됐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의 악셀 베버 회장은 “유럽중앙은행(ECB)이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없을지 모르지만 양적완화의 성과엔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통화정책이 이미 갈 때까지 갔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채권 매입 규모 확대 가능성을 시사한 것을 꼬집은 것이다. 악셀 베버 회장은 지난해 11월에도 “양적완화로 경기를 살릴 수 없다”며 “제로 금리 탓에 정부의 재정 적자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CEO 역시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2배로 늘린다면 중앙은행과 종이화폐 자체, 일부 통화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으며 채권과 주식가격은 폭락할 것”이라며 힘을 실었다.

중앙은행의 파워는 통화량 조절 기능에서 나온다. 중앙은행은 금리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 채권의 매입, 매각도 좌지우지한다. 이런 방법으로 통화량을 통제하고, 물가 수준도 관리한다. 이론은 간단하다. 침체기엔 돈을 풀고, 호황기엔 회수하면 된다. 지금까지 중앙은행의 이런 활동은 꽤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점점 통화량 조절의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특히 선진국)으로서는 옛날이 그리울 것이다. 세계 경제가 다 같이 성장할 땐 통화량 조절만으로도 위기를 극복하는 게 가능했다. 통화정책의 강도에 따라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느냐의 문제였지 해결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각국의 양적완화 실험은 사실상 실패했다. 그렇게라도 안 했으면 더 나빠졌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세계 경제는 다시 금융위기 못지 않은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그동안 각국 중앙은행은 버냉키 전 미 연준 의장의 표현대로 헬리콥터로 돈을 뿌렸다. 그 돈이 무려 6조 달러(7200조원)다. 이 정도 했으면 경기가 살아나고, 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임금이 올라 소비도 늘어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물 경기는 여전히 나쁜데 성장동력인 신흥국은 흔들리고, 산유국은 저유가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특히 중국 리스크는 심각하다. 이번 다보스포럼에서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 정부의 부채 증가가 언젠가는 금융 시스템에 큰 쇼크를 안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지 소로스의 발언은 더 강력했다. 그는 “현재 이 위기의 진원지는 중국”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이 리커창 총리까지 나서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사실 전 세계가 중국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는 게 소로스의 말 한마디 때문만은 아니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 부정확한 예측…


세계 경제의 기초 체력을 되살리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본질적인 구조개혁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나 구조개혁은 고통이 따르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 사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미 시중엔 엄청난 양의 돈이 풀려 있다. 주식·채권·부동산 할 것 없이 곳곳에 거품투성이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더욱 커졌고, 언제 이 버블이 터질지 모른다는 비관론에 점점 더 힘이 실리는 것도 사실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중앙은행이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엔 중앙은행이 뭘 하든지 시장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금리 인상·인하 정도에나 반응할까 파워가 예전만 못하다. 이미 ‘약발’이 잘 안 먹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중앙은행의 고민이 깊어가는 건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12월 기자단과의 송년회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금리를 내려도 소비가 늘지 않고, 고용과 물가 사이의 고리도 약해진다. 이론은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고, 경제 현상을 예측하기도 대단히 어려워졌다.” 이 말대로 지금의 세계 경제 상황은 기존의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 투성이다. 그렇다고 중앙은행이 그 이론을 버리고, 전망을 내놓거나 통화 정책을 설계할 순 없는 일이다. 불확실성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창조적 대안이 필요하지만 마땅한 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니 결국 또 양적완화다. 중앙은행의 시장 개입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드라기 총재가 추가 부양을 언급한 데 이어 일본은행이 1월 29일 추가 금융완화책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기로 했다.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감으로 지난해 말 금리를 올린 미국이 1월 28일 올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 연준은 “세계 경제와 금융 움직임을 면밀히 점검하고 고용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악재와 유가 급락으로 글로벌 경제가 휘청거리는 상황을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벌써부터 연준의 ‘2015년에 4번의 금리 인상 단행’ 예고가 지켜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축통화를 쥐고 흔드는 중앙은행 ‘맏형’인 미 연준마저도 당장 몇 달 뒤에 무슨 일이 생길지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1321호 (201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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