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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헬스 시장 더 키우려면] 20년 ‘원격의료의 벽’ 이번엔 넘을까? 

의료계와 싸우는 동안 기술 융합은 뒷전 ... 규제는 총체적·근본적으로 풀어야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1월 20일 경기도 성남 국군의무사령부에서 의료종합상황센터 응급의료체계 및 원격의료 시연을 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지난 1월 보건복지부의 연두 업무보고 내용은 화려했다. 바이오·헬스 분야를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워 양질의 일자리 76만 개와 65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내용이다. 한국 의료를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고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의료서비스 시장을 육성하는 게 핵심이다. ‘디지털 헬스케어’를 키우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복지부의 이러한 구상은 2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더욱 구체화됐다. 정부는 일반적 건강관리와 의료 행위를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건강관리서비스가 미래 유망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건강관리서비스 법적 정의 없어


급속한 고령화로 건강관리 수요가 늘고 있지만, 의료행위와 정확히 구분되는 건강관리서비스의 법적 정의는 없다. 정부는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2월 15일 투자활성화 대책 배경 브리핑에서 “진료와 건강관리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없어서 관련 업체가 생기지 않았고, 사업도 하지 못했다”며 “어떤 게 의료이고, 어떤 게 관리서비스인지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보험사를 포함해 일반 기업도 웨어러블 등 ICT 기기를 활용해 건강관리서비스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의사 면허가 없어도 혈압·당뇨 등을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4월부터 연구 용역과 의료계 등 이해관계자 협의를 진행해 9월까지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계획은 원대하나 뜻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풀어야 할 규제, 고쳐야 할 법이 너무 많은데 각종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서다. 정부가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를 추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관련법도 18대 국회에서 두 차례나 제출됐었다. 사실상 정부의 청부 입법이었으나 의료 민영화 논란에 밀려 폐기됐다. 당시 변웅전 자유선진당 의원이 낸 법안의 제안 이유는 이렇다. ‘건강관리서비스 제공을 위한 법률적 근거를 만들어 무분별한 서비스 제공을 통제할 수 있는 각종 조치를 마련한다. 동시에 건강관리서비스 제공 및 이용범위, 제공 주체와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을 명확히 하는 법률을 제정해 국민건강 및 보건산업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 최근 정부의 발표와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건강관리서비스와 의료행위를 분리하는 것 자체가 논란거리다. 의료계는 이를 사실상 원격의료의 전 단계라고 본다. 원격의료는 ICT를 활용해 의사와 환자가 얼굴을 맞대지 않고 진료하는 것을 말한다. 주요국에선 이미 자리를 잡았다. 미국은 1997년 도입했고, 일본·호주는 물론 우리보다 의료 환경이 좋지 않은 중국도 2013년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은 의료계의 반대에 밀려 20년째 추진을 못하고 있다. 논란 끝에 2014년 겨우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본론으로 들어가려면 아직도 넘을 산이 많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정부 발표 이후에도 성명을 내고 “이번 투자활성화 대책은 의료서비스를 통해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게 함으로써 보건의료 환경이 자본에 지배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국가 보건의료 체계를 왜곡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강 관리서비스의 도입으로 유사 의료행위가 만연하고, 국민 의료비가 급증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 연구소장은 “복지부 발표에 디지털 헬스케어란 용어가 처음 포함된 건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디지털 헬스케어를 원격의료와 같은 의미로 오용하고 있다”며 “원격의료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수많은 하위 분야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의 ‘밥그릇 지키기’란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 중 하나인 이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속도를 내기 어렵다.

건강관리서비스 도입이 의료 영리화 수순이란 비판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참여연대는 2월 17일 논평을 통해 “정부가 국민에 대한 건강관리 책무를 영리화하려는 의도”라며 “민간 건강관리서비스 사업 도입은 건강서비스를 상품화해 개인의 동의 없이 건강정보를 영리사업자에게 제공하는 것이고, 이는 위헌이자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의 국민건강 관리 책임을 규정한 보건의료기본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런 반발을 잘 알고 있다. 이번에 정부가 법 제정이 아닌 가이드라인 카드를 들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확실한 건 아니다. 가이드라인은 분쟁의 여지가 있다. 효력 또한 의문이다. 기재부도 ‘불확실성을 100% 제거할 순 없다’고 인정한다. 가이드라인으로 업체의 자격 등을 규정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의미다. 결국은 법 제정으로 가야 하는데 이 경우엔 야권의 수용 여부가 미지수다. 산 넘어 산이다.

법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으니 기업은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헬스케어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완화 대책은 과거에도 수없이 언급됐다”며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닌데 앉아서 기다릴 수밖에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주요 ICT 기업은 2010년 전후로 헬스케어를 차세대 사업으로 내세웠다. 시범 서비스도 몇 차례 발표했다. 그러나 늘 규제에 막혔다. SK텔레콤은 2012년 모바일 전자처방전을 출시했다가 의료법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지난해엔 아예 서비스를 접었다. LG유플러스 역시 클라우드 기반 병원정보시스템(HIS)을 개발했으나 의료법에 맞지 않다는 유권해석에 따라 사업을 접었다. 그러니 자꾸 해외로 나간다. 삼성전자는 얼마 전 당뇨관리서비스를 결합한 모바일 헬스케어 서비스를 캐나다에서 출시했고, SK텔레콤도 서울대병원과 합작해 당뇨관리솔루션을 중국 시장에 내놨다.

원격의료보다 디지털에 초점 맞춰야

난관이 많지만 전문가들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서비스업은 제조업보다 규제가 훨씬 많은데 총체적·근본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면 피부에 닿는 변화는 불가능하다”며 속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을 꾀하려면 의료가 아닌 디지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원격의료의 무리한 추진보다는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센서, 클라우드 등의 디지털 기술과 의학의 융합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최윤섭 소장은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는 충분한 수의 스타트업, 스타트업을 키워줄 수 있는 특화된 엑셀러레이터와 벤처캐피털, 관련 연구를 함께 진행할 의료기관, 인수·합병(M&A) 시장에 뛰어들 대기업 등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1325호 (20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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