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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현·이희우의 새로운 도전] IT업계 전설과 VC업계 베테랑의 만남 

NHN Japan의 성공 스토리 쓴 천 회장 제안으로 인공지능 관련 VC 설립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2012년에 창업가와 투자자로 만난 천양현 코코네 회장(오른쪽)과 이희우 전 IDG벤처스코리아 대표가 의기투합해 ‘코그니티브 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 사진:오종택 기자
2012년은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된 해다. 한 사람은 일본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한 창업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한국의 창투사 대표였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나눈 대화는 이상했다. 창투사 대표는 “우리가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했고, 창업가는 “투자는 받지 않기로 했다”고 답변했다. 스타트업 창업가는 창투사의 투자를 반기는 게 일반적이다. 창업가가 창투사 대표의 제안을 거부한 이유가 있었다.

3월 초 코그니티브 인베스트먼트 설립

투자를 받지 않겠다는 창업가는 한국과 일본 IT업계에서 유명인사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온라인 게임 업체의 일본 지사를 만들어 성공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커다란 성공을 뒤로 하고, 2009년 다시 일본에서 창업에 도전했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는 이유였다. 3년 동안 기반을 다진 후 스타트업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투자 유치가 필요했다. 아는 이들이 많은 한국을 찾았다.

그 창업가는 의기양양하게 많은 벤처캐피털(VC)을 만났다. 예상과 다르게 모두 거절했다. 굴지의 IT 기업 대표가 투자를 약속하기도 했지만, 실무진의 반대로 투자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경험했다. “그때 내가 거둔 성공은 나를 만나주는 정도의 효과 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그 창업가는 회고했다. 한국에서 한 건의 투자도 받지 못한 창업가는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투자를 받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며칠 후 한국의 한창투사 대표가 일본 사무실을 찾아왔다. 강경하게 “투자를 받지 않는다”는 창업가와 “투자하겠다”는 창투사 대표의 대화는 4시간을 넘었고 저녁 식사자리로 이어졌다. 창업가도 그제서야 투자를 받아들였다. 23억원의 투자가 거기서 이뤄졌다. 창업가와 투자자로 만났던 두 사람은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왔다. 그리고 3월 초 두 사람은 함께 ‘코그니티브 인베스트먼트(Cognitive Investment)’라는 이름의 창투사를 한국에 설립했다. 한국에는 100여 개의 VC가 활동하고 있다. 설립 이후 실적을 내지 못하고 폐업하는 VC도 많다. 이런 VC시장에서 또 하나의 VC가 설립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코그니티브 인베스트먼트의 등장은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많은 VC로부터 퇴짜를 맞은 창업가는 천양현(50) 코코네(COCONE) 회장이다. 천 회장을 만나기 위해 일본까지 날아가 바로 투자를 결정한 창투사 대표는 유튜브에서 ‘쫄투(쫄지말고 투자해라)’ 진행자로 유명한 이희우(44) 전 IDG벤처스코리아 대표다.

천 회장은 한국 IT업계의 전설이다. ‘한국에 이해진·김범수가 있다면 일본에는 천양현이 있다’는 극찬까지 받았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초·중·고 동창으로, 1999년 김범수 의장과 함께 한게임을 공동 창업했다. 1년 후 6명의 직원과 함께 한게임 Japan을 설립했다. 당시 한국의 IT기업이 일본에서 성공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던 시절이다. “일본 게이오대학 정책미디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개인 사정상 일본에서 계속 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게 아쉬웠기 때문인지, 일본에서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고 천 회장은 회고했다. 7명으로 시작한 한게임 Japan을 수백 명의 직원이 일하는 NHN Japan으로 성장시켰다. 연매출 100억엔(약 1300억원) 이상의 기업으로 키운 후, 2009년 새로운 도전을 위해 NHN Japan에서 ‘졸업’했다.

이후 만든 스타트업이 코코네다. 코코네는 일본어로 ‘마음(코코)과 소리(네)’에서 따왔다. ‘사람들의 마음 소리까지 소통할 것’이라는 의지를 담았다. 코코네는 ‘갑자기 들리는 영어’ ‘갑자기 말되는 영어문법’ 등의 어학 관련 서비스와 모바일 아바타 서비스인 ‘포켓클로니’ 등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인지 과학으로 석사학위를 땄다. 언어와 인공지능 등에 관심이 많고 이게 코코네의 서비스로 이어졌다.” 천 회장은 코코네의 구체적인 매출액을 밝히지는 않지만, 매년 수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희우 대표는 VC업계에서 20여년 간 일한 베테랑이다.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국내 벤처캐피털의 효시로 꼽히는 KTB네트워크에 입사해 벤처 투자에 입문했다. “학교를 다닐 때 우연하게 영화배우랑 밥도 먹을 수 있는 직업이 투자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투자도 하고, 재미있는 경험도 할 것 같아서 창투사에 들어갔다.” 이후 리얼미디어코리아 등을 거쳐 텐센트·샤오미 등에 투자한 글로벌 VC인 IDG 한국 지사 대표까지 맡았다.

이 대표가 스타트업계 유명 인사가 된 것은 2011년 말부터 유튜브를 통해 방송하고 있는 ‘쫄투’ 때문이다. 창투사 대표로서 많은 창업가를 만났고, 기술력과 미래성이 있는 창업가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방송이다. 그의 바람대로 이 방송을 통해 투자를 받은 창업가가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이 방송을 통해 200여 개의 스타트업을 소개했는데, 이들이 투자받은 규모가 1000억원이나 된다”고 설명했다. 쫄투 출연 이후 엑시트에 성공한 스타트업도 5곳이나 된다고 전했다.

코그니티브 인베스트먼트는 후배 스타트업 창업가에게 뭔가 해주고 싶다는 바람에서 만들었다. 지난해 이 대표는 창업가들을 위한 액셀러레이터를 준비했고, 천 회장을 찾아가 “10억원만 나에게 투자해라”라고 제안했다. 천 회장은 “차라리 VC를 만드는 것이 어떠냐”고 역제안을 했다. 이를 계기로 이 대표는 VC 설립 준비에 들어갔다. 자본금 50억원은 천 회장이 전액 투자했다. “후배 창업가들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50억원을 회수하기 위한 투자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세돌·알파고 대국으로 인공지능 분야 관심 커져

이세돌 9단과 구글 알파고의 대국 덕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지도 않은 신규 창투사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번 대국으로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코그니티브 인베스트먼트도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 관련 스타트업이라면서 투자받기를 원한다는 전화가 많이 왔다”며 이 대표는 웃었다.

천 회장과 이 대표는 우선 150억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 계획이다. “5월이면 펀드가 만들어질 것 같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천 회장은 인공지능과 인지과학 분야에 특화된 VC로 만들 계획이다. “한국과 일본의 스타트업에 투자해 한·일 간의 가교 역할도 할 것”이라고 천 회장은 강조했다. IT업계의 전설과 VC업계의 베테랑의 만남이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1326호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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