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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에 묶인 전기자전거] 자전거 타는 데 웬 오토바이 면허? 

현행법상 전기자전거는 차로 분류 ... 세계 시장은 중국·유럽 중심으로 성장 

최영진·유부혁 기자 cyj73@joongang.co.kr

▎한국에서 전기자전거를 타려면 원동기 면허가 필요하고, 자전거전용도로를 이용하지 못한다. 현행법으로 전기자전거는 자전거가 아닌 차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 사진:삼천리자전거 제공
한국의 자전거 제조업체 알톤스포츠가 올해 선보일 e시리즈 모델 중 하나인 ‘커뮤트(COMMUTE)’가 앞에 있다. 기자가 체험해볼 전기자전거다. 겉보기에 일반 산악용자전거(MTB)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모니터가 핸들 중앙에 달려있고, 앞뒤 브레이크의 위치가 일반 자전거와 반대라는 것, 그리고 ‘스로틀(Throttle)’이라 불리는 레버가 달려 있다는 게 다른 점이다. 체험을 하기에 앞서 헬멧과 팔과 발을 보호하는 보호대를 착용했다. 집에서 가까운 중랑천변에 있는 자전거도로로 나가면 된다. 중랑천을 달리면서 봄 기운을 흠뻑 느껴볼 계획이었다.

도심에서 자동차 대신할 수 있는 운송수단인데…


라이딩을 준비하는 기자에게 전기자전거 운행법을 설명해 준 관계자는 “혹시 원동기 면허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자전거를 타는 데 왜 오토바이 면허가 필요한가”라고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현행 전기자전거는 자전거도로를 달릴 수 없다”며 “전기자전거를 타려면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자전거 체험은 아파트 단지를 라이딩하는 것으로 대신해야만 했다. 모니터에 있는 PAS(Pedal Assist System)를 1에 맞추고 전기자전거에 올랐다. 페달을 구르니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모터가 구동되면서 페달을 밟는 동작에 힘을 줄 필요가 없었다. “오르막 길을 라이딩해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에 전기자전거를 끌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상으로 올라가기 전 PAS를 5에 맞췄다. 페달을 구르면서 오르막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일반 자전거 같으면 기어를 최대한 낮추고 엉덩이를 안장에서 띄운 채 허덕거리며 올라갔을 것이다. 전기자전거를 이용하니 안장에 엉덩이를 붙이고 힘을 들이지 않고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또 한번 놀란 것은 스로틀 기능이다. 스로틀을 당기면 페달을 구르지 않아도 모터의 힘으로만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최대속도는 시속 25km다. 자전거동호회 회원들이 한강변을 라이딩할 때 내는 속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기자전거를 체험한 결과 큰 힘 들이지 않고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전기자전거는 도심에서 자동차를 대신할 수 있는 ‘차세대 운송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환경오염이나 교통체증 등의 문제가 심화되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도 꼽힌다. 전기와 같은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거나 1~2인승 개념의 소형 개인 이동 수단인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덕이다. 퍼스널 모빌리티를 대표하는 것으로 1인용 전기자동차와 전기자전거가 꼽힌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서정주 연구위원은 ‘스마트 모빌리티 현황과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기존 자동차를 대신할 수 있는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커서 자동차 업체들이 소형 전기자동차, 전기자전거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고 분석했다. 푸조,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 혼다 등이 대표적이다. 기아차도 2014 제네바 모터쇼에서 전기자전거 콘셉트 모델인 KEB를 선보였다.

중국 전기자전거 시장 연평균 11% 성장


▎2015년 유로바이크에 출품된 전기자전거를 관람객이 살펴보고 있다.
세계 전기자전거 시장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해 4000만대의 전기자전거가 판매됐다. 내비건트 리서치(Navigant Research) 자료에 따르면 전기자전거 시장은 2013년 84억 달러(약 10조240억원) 규모였지만, 2018년에는 108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기자전거 시장의 성장은 중국과 유럽이 주도하고 있다. 2013년 중국에서 팔린 전기자전거는 3600만대로 세계 전기자전거 판매량의 90%를 차지한다. 2009년부터 중국의 전기자전거 시장 규모는 연평균 11.3%씩 증가하고 있다. 중국의 샤오미도 전기자전거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샤오미는 1999위안(약 36만원)짜리 전기자전거를 출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전기자전거 평균 가격은 220만원, 일본의 경우 155만원이다. 중국의 전기자전거 평균 판매가격은 50만원 정도다.

전기자전거 시장에서 5%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유럽에선 독일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독일의 경우 일반 자전거 판매량은 2011년 370만대에서 2013년 330만대로 줄어들고 있지만, 전기자전거 판매량은 2011년 33만대에서 2013년 41만대로 증가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일반 자전거의 판매량은 줄어들고, 전기자전거 판매량은 늘어나고 있다.

전기자전거를 구매하면 보조금을 지원하는 나라도 있다. 스페인은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전기자전거 구입 보조금 정책을 펴고 있다. 대당 지원금은 200유로(약30만원). 유럽 전기자전거 평균 가격의 10% 정도를 지원하는 셈이다. 2009년부터 프랑스 파리는 전기자전거 구매 가격의 25%까지(최대 400유로) 지원해주고 있다. 프랑스 낭뜨에서도 최대 300유로를 지원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전기자전거 시장 규모는 미미하다. 한국교통연구원 신희철 연구위원은 “한국에는 전기자전거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수치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교통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시장 규모는 1만3000여 대, 2015년에는 1만7000여 대에 불과하다. 세계 전기자전거 시장의 0.05%에 불과하다.

언덕이 많은 한국에서 전기자전거는 노약자 등의 교통약자의 보조 이동수단과 직장인의 출퇴근 수단으로 효용가치가 많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 시장의 특성상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도 덜하다. 그럼에도 전기자전거는 외면을 받고 있다. 신희철 연구위원은 “전기자전거는 법적으로 자전거가 아니다”라며 “전기자전거가 자전거로 인정받아야 시장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약칭 자전거법으로 불리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 2조에서 자전거는 ‘사람의 힘으로 페달이나 손페달을 사용해 움직이는 구동장치와 조향장치 및 제동장치가 있는 바퀴가 둘 이상인 차로서 행정자치부령이 정하는 크기와 구조를 갖춘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도로교통법에서 전기자전거는 ‘차’에 포함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전기자전거를 타려면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가 있어야 하는 것. 신희철 연구위원은 “전기자전거를 타는 데 면허가 필요한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꼬집었다.

전기자전거 운전에 면허 필요한 나라는 한국뿐


전기자전거가 차로 분류되기 때문에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는 것도 불법이다. 이 밖에 전기자전거 규제로 통하는 시속 25km의 속도 제한과 헬멧 강제 착용 등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런 규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전기자전거를 자전거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 겨울 스위스 전기자전거 브랜드인 ‘플라이어(FLYER)’를 한국에 들여온 박성호 스위스플라이어코리아 대표는 “국내 전기자전거 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며 “고객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데, 전기자전거를 둘러싼 환경은 열악하다”고 아쉬워했다. 박 대표는 서울 양재동 K호텔에 있는 회사에 방문한 고객을 위해 인근 양재천까지 주행할 수 있는 시승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2012년부터 전기자전거 대중화를 위한 제도 개선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뾰족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2012년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자전거에 전기자전거를 포함하려는 자전거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2015년 5월 ‘전기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한 강 의원은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더불어 성장하고 있는 전기자전거 활성화를 위한 활로가 입법 과정부터 국회에 발이 묶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행정자치부는 전문가의 의견수렴과 공청회 등을 거쳐 입법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기자전거 업계의 한 전문가는 “자전거동호회 회원들이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치인들도 이 때문에 법 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전기자전거 시장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알톤스포츠·삼천리자전거 같은 자전거 제조 업체도 R&D 투자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 배터리 등의 연관 산업의 발전도 더딜 수밖에 없다. 알톤스포츠 김민철 마케팅 팀장은 “한 해 전기자전거 판매대수가 수천 대에 불과하다”면서 “해외 수출을 노려야 하는데, 내수 시장이 받쳐주지 않으니까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최영진·유부혁 기자 cyj73@joongang.co.kr

1328호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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