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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앱 날개 달고 진화 거듭하는 모텔산업] 휴식·문화 접목 젊은층 고객 늘렸다 

중년의 퇴폐·불륜 온상은 옛말 ... 숙박시설 과잉 논란에도 틈새시장으로 성장 기대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모텔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오프라인(모텔)과 온라인(애플리케이션)을 잇는 숙박 예약·검색 O2O 서비스 순풍을 타면서부터다. 이런 숙박앱은 이제 TV 광고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전국에 3만 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모텔 업계의 연매출 규모는 14조원에 이른다. 거래액으로 봤을 때 연 3조6000억원인 호텔 시장의 3.5배 수준이다. 덩치만 커진 게 아니다. 숙박앱 바람을 타고 ‘불륜’이나 ‘19금’과 같은 부끄럽고 어두운 이미지까지 벗고 있다. 모텔산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들여다봤다. 더불어 한국 숙박시장의 현주소와 미래도 살폈다.

한국에서 ‘모텔’의 시작은 언제 어디서부터였을까. 19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생긴 ‘파크텔’이 모텔의 원조다. 당시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관광객을 위한 숙박 시설의 고급화를 유도했다. 장기 저리 융자를 받은 여관과 여인숙 주인들은 건물을 올리고 파크텔이란 간판을 달았다. 과거 여관이나 여인숙은 숙박시설 성격이 강했다. 파크텔은 달랐다. 3저(저유가·저금리·저달러) 덕에 경제뿐만 아니라 유흥 업계도 호황을 누렸다. 특히 ‘부적절한 관계’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유치하면서 파크텔은 ‘쇼트 타임’이라 불리는 대실 위주의 영업 방식을 선택한다. 이때부터 이런 파크텔을 가리켜 ‘러브호텔’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여관→파크텔→러브호텔→모텔


1990년대 들어 러브호텔은 좀 더 퇴폐적으로 변한다. 이름도 일본에서 러브호텔을 뜻하는 ‘모텔’로 바뀌기 시작했다. 번호판 가림 서비스 등의 현수막을 내걸며 영업 방식도 노골화됐다. 모텔 붐은 준농림지 개발 허용이란 호재까지 더해지면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러브호텔은 산과 들, 해안가를 거쳐 주택가까지 파고들면서 풍기문란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모텔이 된서리를 맞은 것은 90년대 말. 외환위기 여파로 유흥 업계 거품이 꺼지면서 타격을 입었다. 특히 무리한 확장으로 주택가까지 영역을 넓힌 게 부메랑으로 작용해 전국적인 ‘러브호텔 반대운동’까지 일었다. 그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반짝 호황을 누렸지만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음성적인 영업을 하던 모텔이 또 다시 철퇴를 맞았다.

‘퇴폐와 불륜’의 상징인 모텔은 한류 열풍에 편승해 다시 변신을 꾀했다. 2011년 기준 서울을 찾은 관광객이 900만 명을 넘었지만 서울 시내에는 관광호텔을 포함 139개 호텔에 객실은 2만4000여 개에 불과했다. 객실 수요에 비해 절반 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때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한국 관광산업 경쟁력은 139개국 중 32위였다. 문화 자원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숙박시설은 100위 권에 그쳤다. 관광객 증가에 따른 숙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 서울에서 ‘이노스텔(Innostel)’을 도입했다. 3만~6만원 대의 저렴한 숙박비에도 외국인이 편하게 묶을 수 있는 모텔을 지정해 브랜드화한 것이다. 영어나 일본어 등 외국어를 할 수 있는 종업원이 있어야 하고 방을 빌려주는 대실 영업을 금지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우수 숙박시설 지정심사위원회 심사도 통과해야 했다. 그렇게 40개 모텔이 선정돼 1700여 객실을 운영했다. 그러나 일부 업소의 대실 영업이 알려지면서 퇴출당하는 곳이 생기자 숫자는 점점 줄었다. 더구나 ‘세금으로 러브호텔을 지원한다’는 비난까지 일면서 모텔은 다시 위기를 맞는다. 운영자금 저리 융자와 상·하수도 요금 감면과 같은 정책적 지원도 끊겼다. 이노스텔은 2013년 한국관광공사와 서울시의 우수 숙박 시설 지정제도 통합에 따라 ‘굿스테이’로 합쳐지면서 사라졌다.

‘부적절한 만남’의 온상지로 여겨졌던 모텔은 200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연계(O2O) 기반의 숙박 서비스가 등장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2005년 설립된 ‘야놀자’는 국내 숙박산업의 반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텔 정보를 한데 묶어 제공했고, 저렴하고 깨끗한 숙박 시설에 갈증을 느끼던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급성장했다. 이어 2014년 숙박 애플리케이션 ‘여기어때’가 나오면서 숙박 O2O 시장의 양강 체제가 구축된다.

숙박앱 등장 이후 서서히 양지로


숙박 O2O는 은밀하고 숨길 것 많은 모텔을 휴식과 문화를 접목한 놀이공간으로 달라지게 만들었다. 파티룸이나 월풀룸, DVD룸 같은 다양한 공간을 갖춘 모텔이 늘면서 이런 서비스를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모텔을 찾는 이용객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호텔이나 레지던스에 비해 저렴하면서 한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매일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라고 고민하는 청춘들의 발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런 변화는 모텔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꿨다. 여기어때의 문지형 홍보이사는 “예전엔 엄두도 못 냈던 모텔 광고가 이젠 TV에도 나온다”며 “모텔이 부끄럽지 않은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노력한 결과, 재밌고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이용자 편익을 위한 ‘최저가 보상제’나 ‘당일 예약 취소 보상제’와 같은 시스템 도입도 모텔의 이미지 변신에 한몫을 했다는 평가다. 최저가보상제는 들쑥날쑥한 가격 정책으로 혼란스러워하는 모텔 이용자에게 적정 가격을 제시했다. 또 특급호텔에서도 시도하지 못하는 단순 변심 이용객의 당일 예약 취소 보상제가 적용되면서 모텔시장에도 예약 문화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숙박앱은 모텔 이용자의 편의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숙박앱과 제휴를 맺은 모텔 업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시장 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숙박앱 제휴 업체 업주 159명을 대상으로 ‘숙박앱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53.5%)이 “숙박앱과 제휴 이후 영업과 홍보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숙박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 매출 증대가 됐나’라는 질문에 대해서 모텔 업주의 72.3%는 “도움이 됐다”고 했다.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변한 업주는 8.2%에 그쳤다. 숙박앱을 통한 고객 후기와 평가는 업주들의 변화를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응한 업주 4명 가운데 3명(74.8%)은 “고객의 평가를 보고 서비스나 청결도를 개선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수도권 지역에서 12년 동안 모텔을 운영해온 김모(48)씨는 “모텔 자체가 부정적 인식이 너무 강해 하나의 산업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노출을 줄이는데 신경 써 왔었다”라며 “처음 숙박앱과 제휴를 맺을 땐 관심이 커질까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숙박업에선 공실률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한데 숙박앱과 제휴한 이후 오히려 공실률이 줄어 사업에 도움이 되고 있다”며 “우리 업소를 찾는 고객에게 휴식처를 제공한다는 마음으로 서비스 개선에도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2년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가 열리면서 국내 숙박시장 전체 규모도 커졌다. 외국인 관광객은 급증했지만 그들이 묵을 만한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부는 ‘관광호텔 특별법’을 시행했다. 2012~2015년 관광호텔 특별법이 적용된 기간 동안 150개의 호텔, 1만7816실이 새로 생겼다. 지난해 관광호텔 특별법이 1년 더 연장되면서 당분간 호텔 건설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선 호텔 과잉 공급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관광호텔업협회에 따르면 서울지역 호텔 객실 이용률은 2011년 80.7%에서 지난해 50~55%(추정치)로 떨어지는 추세다. 호텔시장이 이미 포화상태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숙박 O2O를 만난 모텔시장은 다르다. 성장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숙박앱은 배달앱에 비해 수수료의 기준이 되는 객단가가 높다. 또한 여전히 오프라인에 머물러 있는 숙박 업소가 많아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도 긍정적 요인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1300만 명을 넘어 2000만 명 시대를 넘보고 있다. 모텔이 여전히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숙박 시설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지만, 호텔에 뒤지지 않는 서비스와 시설을 갖춘 모텔이 늘어나면서 외국인 이용률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이용률도 점차 늘어


▎서울 종로의 모텔 밀집 거리. / 사진:여기어때 제공
현재 전국 숙박 객실 현황은 모텔과 호텔에 더해 펜션 2만 5000개, 게스트하우스 5000개 등 200만 객실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올 2분기부터는 단기숙박 서비스까지 등장한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이 정체기를 맞으면서 정부가 ‘공유경제’에 대한 빗장을 풀기 시작해서다. ‘공유 민박업’은 주택 소유자가 단기적으로 숙박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숙박업으로 등록·신고하지 않고 주택을 빌려주면 불법이다. 하지만 공유 민박업이란 새 영역은 이런 사업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용객 입장에서 숙박시설의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이다. O2O 서비스란 날개를 단 새로운 숙박시장의 성장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이런 덕에 글로벌 숙박 공유 기업인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는 255억 달러(약 29조5000억원)가 넘는다. 세계 호텔체인 1위인 힐튼과 맞먹는 수치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기업인 아마존도 최근 호텔 등 숙박 예약 사업에 뛰어들었다. 모텔시장을 키운 숙박 O2O 기업의 미래 역시 밝다.

-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1328호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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