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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가&혁신가 | 유석환 로킷(ROKIT) 대표] 비전을 팔면 ‘갑’ 물건만 팔면 ‘을’ 

가성비 갖춘 바이오 3D프린터로 승부수 ... 셀트리온헬스케어 경영 경험 살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유석환 로킷 대표는 “비전을 팔면 ‘갑’이 되고 물건을 팔면 ‘을’이 된다는 신념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사진:주기중 기자
올 초 3D프린터와 관련해 해외에서 주목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의 한 의료진이 3D프린터로 만든 인공 코를 세계 최초로 인체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1월 4일(현지시간) 미국 CBS뉴스는 어린 시절 심한 화상으로 코를 잃은 댈런 재닛(15)이란 소년이 바이오 3D프린터로 출력한 인공 코를 수술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식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소년은 새로 얻은 코로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됐다. 어려운 수술에도 쓰일 만큼 3D프린팅 기술이 갈수록 정밀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세계 3D프린터 시장은 이미 지난 수년 간 외형적으로도 급성장했다. 2011년 17억 달러였던 시장 규모가 지난해는 37억 달러로 커졌다.

365일 중 360일 연구개발

한국에서도 이르면 올해부터 바이오 3D프린터를 통해 신체의 일부를 이식받는 환자가 나올 전망이다. 그 중심에 국내 3D프린터 제조사 로킷(ROKIT)이 있다. 이 회사는 최근 조직공학 연구용 바이오 3D프린터 ‘인비보(INVIVO)’를 개발, 3월 25일 한국생체재료학회 전문가를 대상으로 첫 시연회를 가졌다. 유석환(60) 로킷 대표는 “모든 연구자들이 원하는 재료와 세포에 대해 자유로이 연구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며 “올 하반기 본격적인 상용화를 목표로 제품을 최종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R&D)하기 쉽지 않았겠다고 묻자 “지난해 365일 중 360일을 일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표정에선 자신감이 엿보였다.

로킷이 만든 인비보는 세계 최초 ‘복합형’ 바이오 3D프린터다. 고체인 스캐폴드와 액체인 바이오잉크를 동시에 출력할 수 있다. “스캐폴드는 경조직용, 바이오잉크는 연조 직용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인체 조직의 이식을 위한 조직공학 연구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는 제품입니다.” 인비보를 통해 만들어진 3차원의 정밀한 세포 구조체는 간이나 신장 같은 인공 장기뿐 아니라 두개골, 턱뼈, 피부 등의 이식 연구에 쓰일 수 있다. 또한 실제 환자들이 면역거부반응 등의 부작용이 없는 맞춤형 이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로킷은 그간 산업통상자원부 지원 아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서울대병원 등과 함께 바이오 3D프린팅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인비보의 강점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다. “해외에선 바이오 3D프린터가 대당 2억~3억원을 호가합니다. 이에 반해 인비보는 대당 1500만~3000만원대로 책정할 예정입니다.” 의료분야는 무엇보다 정밀함이 생명인데, 저렴할수록 경쟁력이 없는 제품인 건 아닐까. 이에 대해 유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그동안 해외 바이오 3D프린터 제조사들이 지나치게 고가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바이오 3D프린터 시장이 커질수록 가격 거품이 걷힐 겁니다.” 과거 PC나 휴대전화가 처음 보급되던 무렵 이들 제품의 가격이 지금 관점에선 천문학적이던 것과 비슷한 이치란 얘기다.

유 대표는 요즘 말로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빠른 추종자)’였다. 2012년 당시 세계 정보기술(IT)산업 트렌드를 연구하다가 3D프린터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이후 2013년 로킷을 설립해 주로 가정용 보급형 3D프린터 위주로 국내외 시장에 선보이며 사업을 키웠다. 3년이 지난 지금은 바이오 3D프린터를 통해 ‘퍼스트무버 (first mover, 선도자)’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셈이다. 유 대표는 “어느덧 레드오션이 되고 있는 가정용 보급형 3D프린터 시장을 현장에서 접하면서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로킷은 연 매출이 2013년 15억원에서 2014년 50억원으로 껑충 뛰었지만 지난해는 30억원가량에 그쳤다. 새 활로가 절실했다.

그렇다면 왜 ‘바이오’를 택한 걸까. 우선 전망이 밝으면서도 아직 블루오션이란 판단이 섰다. 시장조사업체 ID테크엑스에 따르면 바이오 3D프린팅 시장은 2024년경 60억 달러 규모로 전체 3D프린팅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이에 지난해 글로벌 기업인 프록터앤드갬블(P&G)이 바이오 3D프린팅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오가노보(Organovo)라는 미국 스타트업은 화장품 분야의 세계 1인자인 로레알과 바이오 3D프린팅 관련 독점 계약을 했다. 전 세계에 상용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유 대표 개인의 경험도 작용했다. 그는 바이오시밀러 전문 기업인 셀트리온 계열사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창립 멤버로 최고경영자(CEO)까지 지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과도 정기모임을 가질 만큼 막역한 사이다. 셀트리온의 성공을 이끌면서 고령화 시대에 바이오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여실히 느꼈다. “3D프린터를 3년 동안 만들다 보니 이제야 길이 보이는 느낌입니다. 가장 자신 있는 두 분야인 바이오와 3D프린터를 융합하기로 한 거죠.”

그런 그가 또 하나 준비 중인 바이오 3D프린터가 ‘에디슨파마(가칭)’다. 올 6~7월 출시를 앞둔 이 제품은 개인 맞춤형 약제를 만들 수 있는 3D프린터다. 예컨대 기성 약제는 ‘성인 두 알, 어린이 한 알’ 식으로 복용량이 뭉뚱그려져 나온 경우가 대다수다. 그 중간 연령대의 청소년들, 혹은 체구가 성인처럼 큰 어린이는 몇 알을 복용해야 할지 애매하다. 공장에서 약제를 대량생산하다 보니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 입장에서 용량이 딱 정해진 탓이다. 3D프린터로 약제를 만든다면 소비자 위주로 보다 세밀하게 용량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유 대표는 “틈새시장 공략에 관심을 가진 일부 제약사와 공급 계약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3D프린터도 맞춤형 프리미엄 서비스로 승부해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 소재에 초점

로킷은 바이오 3D프린터로 승부수를 던진 만큼, 3D프린팅에 쓰이는 소재도 인체에 무해한 것만 넣도록 예전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청(FDA) 규격을 충족하는 ‘BPA 프리’ 소재만 쓰기로 하고 올 초부터 시행하고 있다. 여기서도 유 대표 개인의 경험이 작용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손자가 3D프린터로 만든 인형을 입으로 물고 코로 냄새 맡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들 교육용으로도 많이 쓰이는 게 3D프린터인데 친환경 소재를 쓰지 않으면 큰일이 나겠다 싶었죠.”

유 대표의 올해 목표는 연매출 100억원 돌파다. 다른 ‘돈 잘 버는’ 스타트업에 비해 소박한 목표일 수 있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바이오 3D프린터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적표를 얻고 싶다는 설명이다. 그러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경영철학을 직원들과 공유하려 노력하고 있다. “물건을 팔면 ‘을’이지만 비전을 팔면 ‘갑’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멀리 볼 줄 아는 비전을 가진 기업인이 되고자 합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BPA(Bisphenol-A): 어린이의 뇌손상, 성 조숙증, 유방암 등을 유발하는 환경호르몬.

1328호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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