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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 봅시다 | 국제기구의 정치경제학] ‘힘있는 IMF 힘없는 유엔’ 왜? 

IMF, 구제금융 막강 권한 행사 ... ‘군인 한 명 못 움직이는’ 유엔 

백우진 한화증권 편집위원 woojinb@hanwhawm.com

▎사진:중앙포토
#1. 유엔 회비위원회는 중국이 유엔의 연간 예산을 분담하는 비율을 기존의 5.1%에서 2016~18년에 7.9%로 높여달라고 요구했다고 중국 신경보가 지난해 10월 전했다. 이에 대해 중국 유엔 대표부는 “중국은 개발도상국”이라며 “지불능력 이상의 회비를 부담시키려는 유엔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했다.

#2.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출자지분(쿼터)을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제통화기금(IMF) 개혁안이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를 통과했다. 개혁안은 미국 지분을 기존 16.7%에서 16.5%로 축소하고 중국의 쿼터는 기존 3.8%에서 6.07%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미국 의회가 IMF 개혁안을 비준하자 중국은 즉각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성명을 통해 “이 개혁안이 IMF에 대한 신뢰와 정당성, 업무 효율을 높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두 기사는 유엔과 IMF에 대한 중국의 상반된 자세를 잘 보여준다. 중국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다. 주요국은 대부분 유엔에 심드렁한 반면 IMF 지분을 놓고는 열을 올린다. 유엔 경비 부담은 가능하면 줄이려고 하고, IMF 지분은 최대한 확대하려고 든다.

미국도 유엔 경비 분담금 상습 체납


미국은 유엔 경비의 22%를 부담한다. 이 분담률은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에는 미국의 분담률이 25%로 더 높았다. 미국은 1973년 이래 자국의 분담률을 깎기 위해 외교력을 기울였고 이를 22%로 축소한 유엔 재정개혁안을 2000년 12월에 통과시켰다. 미국이 분담률을 낮추는 데 무려 27년이 걸린 건 미국 대신 유엔 경비를 더 떠안아야 하는 개발도상국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개도국 모두 유엔에 더 많이 기여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이와 달리 중국이 IMF 지분을 확대한 과정은 미국의 반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미국은 미세한 폭이지만 자국 지분 축소를 내키지 않아 했고 중국 몫이 확대되는 데 반대했다. IMF 개혁안은 이미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합의됐다. 그러나 미국이 훼방을 놓았다. 공화당이 장악한 미국 의회는 ‘외환 조작국인 중국에 대한 IMF 지분 확대를 승인할 수 없다’는 명분을 앞세워 비준을 거부했다. 개혁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하고 올해 1월 발효되기까지 5년 넘게 걸렸다.

중국의 IMF 지분 확대는 미국의 자발적인 양보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중국은 미국의 반대로 개혁안이 가로막히자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을 설립해 한국을 비롯한 57개국을 끌어들여 세를 과시했다. 국제금융질서에서 따로 판을 짜서 활동할 수 있다는 제스처였다. 그러자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해 10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연차총회에서 “미국이 계속 거부한다면 차선책을 강구하겠다”며 미국 의회의 승인이 필요 없는 특별증자를 통해 중국의 지분을 높여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미국이 마지못해 개혁안에 동의하면서 중국이 기존 체제 속에서 발언권을 더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유엔 경비 분담률이 쟁점이 됐지만 주요국이 부담하는 금액은 거액이 아니다. 유엔의 연간 예산은 2014~15 회계연도 기준 약 54억 달러다. 이 가운데 22%를 맡기로 약속한 미국의 부담은 11억8800만 달러다. 분담률 5.2%이었던 중국이 내온 비용은 2억8000만 달러다. IMF가 추산한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기준 각각 17조9682억 달러, 11조3848억 달러인 미국과 중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푼돈’에 불과하다. 더구나 미국은 요즘도 매년 이 금액을 체납하고 있다. 유엔 헌장은 분담금을 체납한 회원국의 총회 투표권을 박탈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유엔은 미국을 제재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결국 유엔의 요구를 수용해 올해부터 7.9%를 부담하기로 했다고 지난해 말 차이나데일리가 보도했다. 그러나 중국이 유엔 분담금을 늘리기로 했다고 해서 중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이 유엔에 대해 데면데면한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주요 현안에서 유엔을 통하지 않고 일을 저지른다. 일례로 미국은 2014년 9월 이슬람 수니파 무장 세력 ‘이슬람국가(IS)’의 시리아 북부 근거지를 공급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 미국뿐 아니다. 가까운 사례를 들면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반대와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무기를 개발해왔다. 최근에는 이란이 유엔 안보리 결의 2231호의 ‘이란은 핵무기 탑재 능력이 있는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어떠한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무시하고 2월 초 중거리 탄도미사일 2기를 시험 발사했다.

유엔이 회원국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회비’조차 걷지 못하는 것은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IMF는 다르다. IMF는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긴축적인 재정·금융 정책과 함께 광범위하고 대대적인 조치를 요구하곤 한다.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한국은 1997년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재정 긴축, 금융규제 완화, 무역 자유화, 자본시장 개방 등을 이행해야 했다. 국제금융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IMF에 대해 미국은 ‘최대 지분’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IMF 구조개혁안이 반영돼 중국의 지분이 늘었지만 미국은 여전히 원하지 않는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을 만큼의 의결권은 유지하고 있다. IMF에서 안건을 통과시키려면 85% 동의가 필요한데 미국은 16.5%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력한 유엔, 더 무력한 사무총장

유엔의 사명은 지구적인 데 비해 권한은 미미하다. 유엔의 사명은 평화 유지와 국제적인 협력 증진이다. 유엔이 이를 위해 지난 70여 년 동안 한 일은 많지 않다. 유엔의 무력함은 이 조직을 이끄는 사무총장들이 절절히 토로한 바 있다. 코피 아난 제 7대 사무총장(1997~2006)은 “나 자신은 전투기 한 대, 군인 한 명도 움직일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쿠르트 발트하임 제4대 사무총장(1972~1981)은 “유엔 사무총장은 무한 책임을 지지만 실제로는 보잘것없는 힘을 극히 제한적으로 행사한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국제기구의 정치경제학에 비추어 볼 때 반기문 현 사무총장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의 조나단 태퍼먼 편집장은 2013년 9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반기문, 당신은 어디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반 총장을 ‘투명인간 총장’ ‘무력한 관찰자’ ‘존재감 없는 사람’ 등으로 혹평했다. 그러나 그는 “반 총장의 ‘무능’에는 그의 역할을 제한하는 유엔 주변의 조건에도 문제가 있다”며 “유엔 사무총장에게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없다”고 인정했다.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자리가 원래 힘이 없고 일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지만 반 총장은 그래도 너무 못한다는 말이다.

- 백우진 한화증권 편집위원 woojinb@hanwhawm.com

1329호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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