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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 “키우다니요? 같이 만드는 거죠”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동반자 … “회사 만드는 플랫폼 만든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지난 3월 24일 서울 역삼동 마루180에서 ‘컴퍼니 빌더(Company Builder)’ 퓨처플레이의 데모 데이가 열렸다. 컴퍼니 빌더란 말 그대로 ‘회사를 만드는 회사’다. 초초기(Very early)부터 퓨처플레이와 함께 회사를 꾸려온 9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이 투자자, 언론, 업계 관계자 앞에 시제품과 기술을 선보였다. 주로 무대에서 말로 회사를 소개하는 다른 데모 데이와 다르게 행사장 곳곳을 부스로 꾸며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할 수 있게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오후 7시, 5시간여의 행사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우르르 옥상으로 올라가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같은 일을 해도 좀 다르게, 아니면 완전히 남과 다른 일을 하는 이가 류중희(42) 퓨처플레이 대표다. 퓨처플레이는 기술 기반(Tech centric) 스타트업을 만든다. 넓은 의미의 정보기술(IT) 기업이 아닌 핵심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회사들이다. 류 대표는 “자신도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창업한 경험이 있어 누구보다 창업자의 마음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영상 인식 회사 올라웍스를 창업했다. 2012년 미국 인텔이 350억원에 이 회사를 인수해 엑시트(자금 회수)에도 성공했다.

1년에 4~5팀만 선발


이후 2년 동안 인텔 상무로 재직한 류 대표는 2014년 3월 넥스알 창업자인 한재선 최고기술책임자(CTO), 100개 이상 특허를 출원한 황성재 최고창의책임자(CCO)와 퓨처플레이를 창업하며 다시 정글로 나왔다. 이 회사는 여느 벤처캐피털이나 액셀러레이터와 좀 다르다. 핵심 기술, 아이디어만 있는 단계에서부터 함께 회사를 만들어나간다. 공동창업에 가깝다. 그는 ‘육성’이라는 표현이 싫다고 했다. “컴퍼니 빌더와 스타트업은 평등한 관계입니다. 보호하고 키워야 할 대상이 아니란 거죠.”

회사를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퓨처플레이는 ‘테크 업(Tech Up) 프로그램’에 선발된 팀에게 6개월 동안 5000만원을 지원한다. 창업자는 특허·재무·디자인·연구개발 등 각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기술과 아이디어를 사업 모델로 발전시킨다. 이 프로그램을 마친 팀에게 다시 자금과 무료 사무공간, 교육 프로그램, 공동 창업 과정을 제공해 함께 회사를 키운다.

이 프로그램으로 7명의 예비 창업자가 스타트업 CEO로 성장했다. 류 대표는 “모든 과정에 세세히 참여하기 때문에 1년에 4~5팀 정도만 선발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즌에는 세 팀이 프로그램을 마쳤다. ‘Ab180’은 데모 데이에서 앱을 설치하거나 실행하지 않아도 앱의 콘텐트를 검색할 수 있는 검색기술을 선보였다. 또 다른 스타트업 ‘센티언스’는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기술 등을 활용한 신용평가 시스템을 개발했다. ‘넥스프레스’는 반도체 생산에 활용되는 MEMS 같은 첨단기술을 이용, 피부에 부착할 수 있는 피부미용 제품을 제조한다.

류 대표는 “하반기는 ‘테크 업 플러스’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존 테크 업 프로그램에 대기업이 참여하는 형식이다. 퓨처플레이는 지난 1월 네이버·LG전자·SK플래닛으로부터 30억원을 유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대기업들이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어요. 대기업이 직접 못하는 걸 퓨처플레이의 기술과 경험을 빌려 함께 하는 거죠. 벤처 생태계 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봅니다.”

회사를 함께 만드는 것은 단순 투자보다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왜 이런 모델을 생각했을까. “확장성(Scalability)이라고 하죠. 제품 한 개가 아니라 플랫폼을 팔면 기업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회사로 만족하지 않고 회사를 만드는 플랫폼을 만든 셈이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게임을 해보고 싶었어요. 매일 스트레스 받고, 크고 작은 일에 시달리지만 덕분에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떤 기술을 눈여겨보느냐’는 질문에 “인공지능이나 가상현실은 원래부터 봐오던 것이고 요즘 뇌에 관심이 많다”고 답했다. “두 분야가 진화하면 결국 ‘뇌’에서 만나지 않을까요. 당장 수익모델이 보이지 않아도 투자하려 합니다.” 사실 그는 분야에 관계 없이 생각지 못한 기술로 그를 놀라게 한 창업자들에게 투자해왔다. “‘휴이노’가 기억에 남아요. 이 회사가 개발한 스마트 워치는 혈관에 압력을 가하지 않고 혈압을 간접적으로 잴 수 있어요. 생각지도 못한 일 아닌가요?” 그렇다고 감으로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직관처럼 보이겠지만 그 안에 촘촘한 논리가 있다”고 말했다. 직접 스타트업을 경영하고 다른 CEO, 벤처 투자자들과 교류하며 경험을 쌓은 덕이다.

류 대표가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창업자다. “그냥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풀려는 문제가 뭔지, 어떻게 풀 건지 같이 봐요. 좋은 문제를 찾아냈다는 건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고 솔루션이 훌륭하다는 것은 능력을 믿을 수 있다는 얘기니까요.” 결국 기술이다. 그는 “기술 분야에서는 투자 받으려는 사람이 사업에 대해 잘 아는지 모르는지 더 잘 드러난다”며 “왜 사업을 하려는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의 목표와 달성 방법을 세부적으로 계획해야 합니다. 스타트업 경영 자체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또 그는 “가족의 행복을 걸고 투자할 가치가 있는 사업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고 가족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따로 쓰라”고도 강조했다.

“제도가 기술적 상상력 제약하면 곤란”

자신감을 가지라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창업자가 타고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많은 스타트업과 일하면서 기술만 파고 들던 ‘공대생’이 기업가의 역할도 잘 해내는 걸 봤거든요.” 류 대표는 창업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 예상되는 결과를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이견이 생기면 최종 결정은 창업자의 몫이다. “우리 목적은 그들의 모든 문제를 풀어주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을 훌륭한 경영자로 만드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실패를 한번도 안 할 수는 없겠죠.” 그는 서로 솔직하게 대해야 교감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에 안 드는데 앞에서 ‘예’ 하고 뒤에서 딴 소리 하는 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요. 심하게 얘기해서 인간적인 모욕을 주고 받기 직전까지 논쟁할 각오로 스스로를 단련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류 대표는 “제도가 기술적 상상력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며 규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미국에서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법을 바꾸고 있습니다. 처음에 불법이라고 했던 우버도 이제 많은 곳에서 합법이죠. 차가 처음 나왔을 때 관련 법이 없어 거리를 다닐 수 없었다고 해요. 법은 시대상을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단기간에 바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컴퍼니 빌더로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나갈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1332호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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