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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매출 올리는 야쿠르트 아줌마 3인방] “알파고가 야쿠르트 빨대도 꽂아주나요?” 

고정 고객 500~600명 확보해... 한달 2000만원어치 팔아... 잔심부름 기본, 단골 체질까지 파악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한국야쿠르트가 선정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야쿠르트 아줌마 3인방 한순옥·김은하·김희정씨(사진 왼쪽부터). / 사진:공정식 프리랜서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김은하(39)씨는 그때마다 유쾌한 목소리로 답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 통화하는 듯했다. “3년 넘게 주문한 고객이 다른 동네로 이사갔는데 계속 제가 갖다 주면 안 되겠느냐고 그러네요(웃음).” 8년째 ‘야쿠르트 아줌마’로 살고 있는 김씨는 고정 고객 수만 400명에 달한다. 수원 영통구 일대의 공장 직원들이 김씨의 주고객이다. 김씨는 새벽 3시에 집을 나서 근처 아파트 단지 배달을 시작으로 하루를 연다.

새벽 5시에 집에 들러 중·고등학생 자녀의 등교시간에 맞춰 아침밥을 차린 후에야 영업점으로 향한다. 하루 동안 배달할 음료가 든 냉장 박스를 경차에 넣고 본격적인 배달에 나선다. 골목마다 깊숙이 숨은 작은 하청업체가 대부분이다 보니 김씨가 아니면 손님을 찾기조차 어렵다. 그는 “8년 간 배달을 전담한 지역이다 보니 이곳은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안다”며 “10분만 늦게 도착해도 무슨 일 생긴 게 아닌지 걱정하는 고객들 때문에 하루도 쉬기 힘들다”며 웃었다.

새벽 3시에 집 나서 배달 시작

김씨는 전국 1만3000여명 야쿠르트 아줌마 가운데 ‘일 잘한다’고 소문난 아줌마 중 한 명이다. 김씨와 비슷한 경력(8~9년 차)을 자랑하는 한순옥(45)씨와 김희정(43)씨도 한국야쿠르트에서 손꼽는 ‘영업왕’이다. 이들은 한국야쿠르트가 1년에 한 번 매출과 영업능력·사회공헌활동 등을 평가해 최고의 아줌마를 선발하는 ‘명예의 전당’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수도권과 지방권에 각 1명씩 한 해 단 2명 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다. 한국야쿠르트 홍보팀 김근현 과장은 “단순히 매출만 기준으로 주는 상이 아니다 보니 선발 요건이 상당히 까다롭다”며 “어떤 해엔 적임자를 찾지 못해 건너뛰기도 하는데 올해 상을 받은 두 사람은 역대 수상자 가운데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매일 100km 운전하며 공장 도는 성실함


‘최고의 아줌마’ 3인방의 한달 평균 매출은 1인당 2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연 2억~3억원 수준이다. 평범한 야쿠르트 아줌마의 한달 평균 매출이 700만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 3배 이상을 파는 셈이다. 이들이 관리하는 고정 고객 수 역시 400~600명으로, 평균 170명을 관리하는 일반 아줌마의 3배 수준이다. 이쯤 되면 이들이 배달하는 지역이 유독 인구가 많거나 생활 수준이 높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렇지만 다른 아줌마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영업점에서 배정하는 일정한 크기의 지역을 맡았을 뿐이다. 김희정씨는 “남들보다 많이 파니까 주변에서 ‘배정된 지역이 좋겠지’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며 “내가 처음 이 지역을 맡았을 때 전임자 5명이 모두 1년을 못 넘기고 그만뒀을 만큼 녹록하지 않은 곳이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지역구’는 포항 죽도시장이다.

한 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 칸칸이 들어앉은 200여명의 시장 상인이 김씨의 고객이다. “처음 3개월은 매일 퇴근해 눈물을 훔칠 만큼 힘들었어요. 한자리에서 20년 넘게 장사하며 유대관계를 쌓은 상인들이다 보니 마음을 열기가 어려웠죠. 그래도 매일같이 웃으며 먼저 인사하고, 수조 밖으로 튀어나온 생선 주인도 찾아주며 친근하게 다가가려 노력했어요.”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나 공단지역과 달리 시장의 특성상 평일보단 주말이 바쁘다는 게 김희정씨의 설명이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타지에서 놀러온 손님까지 더해져 발 디딜 틈도 없다. 그런 날이면 김씨는 야쿠르트 200병이 든 20kg짜리 박스 6개를 싣고도 모자라 카트 주변에 야쿠르트 봉지를 주렁주렁 매달고 출근한다. 영업비결은 8년 간 매일같이 쓴 고객일지다. 하루 동안 수금 내역은 물론 고객이 마신 음료 종류, 평소 식습관과 체질 등을 빼곡히 적은 노트만 10권에 달한다. 김씨는 “물 한병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시대에 단순히 음료를 배달하기만 했다면 야쿠르트 아줌마는 벌써 사라졌을 것”이라며 “고객과 소통하며 정을 나누는 건 알파고도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은하씨는 고객을 세심히 관찰해 필요한 제품을 권한다. 전날 과음한 직원에겐 평소 배달하던 야채주스 말고 숙취해소에 좋은 음료를 갖다 주는 식이다. 야근이 잦아 시내에 나가기 힘든 손님을 위해선 잔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씨는 “담배·스타킹·응급약처럼 필요한 물건을 대신 사주는 일은 예사”라며 “말단 직원부터 사장님까지 모두 알고 지내다 보니 일자리 소개는 물론 중매도 여러 번 섰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경기가 안 좋으니 공장 사정이 어려울 텐데도 ‘월급은 끊겨도 야쿠르트는 안 끊는다’는 손님들 덕분에 힘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대구 북부점 소속인 한순옥씨는 음료를 용달 트럭에 싣고 매일 100km씩 운전한다. 한씨는 “공장이 띄엄띄엄 있다 보니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배달을 마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 별명이 대구의 광개토대왕”이라며 웃었다. 한씨 역시 2007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막막하기만 했다. ‘한달에 최소 10만원은 벌어야 운동화 한 켤레라도 사서 뛰어다닐 텐데’라는 생각으로 돌아다녔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평소처럼 아침 일찍 출근해 음료를 두고 나오려는데 한 공장 사장이 한씨를 불러세웠다. ‘하루도 빠짐 없이 정확한 시간에 와서 음료를 놓고 가는 점이 인상 깊다’며 앞으로 60여명의 전 직원 앞으로 매일 음료를 갖다 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 일을 밑천 삼아 9년 간 일한 한씨는 지난해 연매출 3억2000만원을 기록했다. 전국 아줌마 가운데 최대치다.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아도 누군가는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책임감을 갖게 됐어요.” 한씨는 틈날 때마다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제품 관련 강의를 스마트폰 화면으로 수십 번 반복해본다. 그는 “내가 먼저 제품에 대해 잘 알아야 고객에게도 자신있게 권할 수 있다”며 “요즘엔 거의 3개월 주기로 신제품이 나오는데 조금이라도 게을리했다 간 트렌드를 따라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동형 냉장고 타고 스마트폰으로 신제품 공부

‘손에서 손으로 전달’을 원칙으로 삼는 야쿠르트 아줌마의 경쟁상대는 이제 1000원짜리 커피를 파는 편의점과 빠르고 정확한 배송을 자랑하는 소셜커머스업체 등으로 확대됐다. 소비자는 모바일 앱을 통해 야쿠르트 아줌마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뿐 아니라 옥션·G마켓 등 온라인 마켓을 통해 주문받은 음료를 가까운 고객에게 빠르게 전달해야 한다. 앱을 통해 바로 결제는 물론 청구서 발행부터 수금까지 가능해졌다.

한순옥씨는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전화만 하면 뭐든 배달이 오는 시대지만 여전히 시골 어르신들에겐 우리가 직접 빨대를 꽂아드리는 야쿠르트 한 잔이 최고”라며 “우리 아줌마들이 기술을 이용하지만 기술에 점령당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탄생한 1971년에도, 45년이 지난 지금도 음료를 ‘배달한다’는 말 대신 ‘전달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최첨단을 걷는 야쿠르트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 45년사 | 노란색 유니폼 벗고 첨단을 입다


우리나라에 야쿠르트 아줌마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1년 8월. 최초의 야쿠르트 아줌마로 선발된 47명이 서울 종로지역을 중심으로 배달을 시작했다. 그 후 숫자가 빠르게 늘어 1975년 1000명, 1998년 1만명을 기록한 데 이어 현재 전국에 1만3000여명의 아줌마가 활동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초창기부터 신선한 제품 전달을 위해 생산된 제품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선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었고, 전달자는 친근한 인상을 주는 가정주부들이라는 판단에서 아줌마 방문판매를 실시했다.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가정주부가 밖에 나가 일하는 것이 드물었다. 그러나 주부 판매원만큼 ‘엄마의 마음으로 건강을 전달한다’는 콘셉트와 잘 맞아떨어지는 이가 없었다. 외환위기 당시엔 실직한 가장을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여성이 늘면서 고학력·미혼 지원자가 몰리기도 했다. 올해로 45주년을 맞은 야쿠르트 아줌마는 하루 평균 6.8시간 일하고 월 평균 16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지난해 실시한 채용설명회에 3000여명의 구직자가 몰릴 정도로 야쿠르트 아줌마의 인기는 건재하다.

노란색 유니폼은 한때 야쿠르트 아줌마의 상징이었다. 이 유니폼은 줄곧 유지되다가 2014년 핑크색 계열로 바뀌었다. 디자인만 달라진 게 아니다. 한국야쿠르트 측은 외부활동이 많은 점을 고려해 새 유니폼에 더위와 추위에 강한 기능성 소재를 활용했다. 아웃도어 스포츠 의류 형태로 제작해 통풍성과 착용감을 개선해 실용적인 면을 강조했다. 아줌마들이 힘으로 밀던 수동형 카트도 2014년 말 탑승형 전동카트로 바꿨다. 전동카트는 아줌마가 발판 위에 올라 이동할 수 있는 형태로 개발했다. 높은 언덕이나 장거리에서도 사용이 편리해졌다. 최대 시속 8km까지 낼 수 있는 카트에는 24시간 냉장 시스템을 탑재했다. 220ℓ 용량의 냉장고에는 야쿠르트(65㎖)가 2000개가량이 들어간다. 외부에서도 온도 확인이 가능하고, 여름철에도 변질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1332호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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