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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국내 해운업 어디로 가나] 6월 안에 한진해운·현대상선 항로 결판 

자구안 마련, 용선료·비은행 채무 협상 험로 ... 글로벌 해운동맹 재편도 변수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한진해운의 대주주인 조양호 회장은 경영권을 포기하고 사옥을 팔아 4100억원을 추가로 마련하는 등의 자구안을 내놓았지만 운영 자금과 용선료 인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정은 회장도 현대상선의 등기임원 및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300억원 수준의 사재를 출연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용선료 인하 협상에 애를 먹고 있다.
국내 양대 선사가 채권단에 몸을 맡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현대상선이 지난해 3월 조건부 자율협약을 한 데 이어, 한진해운이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대한민국 해운산업이 결국 SOS를 타전했다. 한진그룹은 “해운업 환경이 급격하게 나빠져 한진해운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놓여 독자적인 자구노력만으로는 경영 정상화가 어렵다고 판단해 자율협약을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채권단의 손에 운명이 갈리게 됐다. 채권단 자율협약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로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채권단이 지원하는 정책이다. 한진해운이 KDB산업은행에 자율협약을 신청하면, 채권 금융기관은 자구안을 심사한다. 이후 몇 가지 조건을 걸어 자구안이 성실히 이행될 경우 채무 만기를 연장하거나 유동성을 지원한다. 자율협약을 하더라도 경영 정상화가 어려울 경우 법정관리로 넘어갈 수 있다.

양대 선사가 채권단에 몸 맡기는 초유의 사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해운사 입장에서 법정관리는 곧 퇴출을 뜻한다. 컨테이너 선사는 세계적으로 글로벌 체인을 구축해 화물을 운반한다. 개별 기업이 전 세계 항구에 취항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요 해운사들은 해운동맹(얼라이언스)을 구축한다. 동맹 선사끼리 선박이나 노선을 공유하는 것을 코드쉐어(공동 운항)라고 한다. 항공사들이 ‘스타 얼라이언스’나 ‘스카이팀’을 만들어 공동 운항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데 주요 해운동맹은 해운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재무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질 경우 해운동맹에서 퇴출한다. 독자적으로 전 세계 컨테이너 라인을 구축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법정관리가 결정되는 순간 글로벌 해운사로 부활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결국 양대 해운사의 운명이 채권단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해운사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법정관리행이다. 현대상선은 KDB산업은행과 용선료 인하와 회사채 조정을 전제로 조건부 자율협약을 했다. 다시 말해 두 사안을 해결하지 못하면 채권단 지원은 불가능하다. 현대상선이 용선료 협상과 회사채 조정에 실패할 경우 법정관리로 넘어간다.

한진해운은 현대상선보다 높은 파고를 넘어야 한다. 현대상선은 ▶오너 사재출연 ▶자산 매각 ▶감자 등의 문제를 해결한 상태다. 이와 달리 한진해운은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일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어머니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과 함께 모두 300억원 규모의 사재를 내놨다. 현대상선은 터미널 자산 등도 매각했다. 현대증권을 비롯한 금융 3사를 1조2500억원에 파는 데 성공했고, 벌크전용선 사업부를 1200억원에 매각하고 4200억원의 부채를 이전한다는 계약도 했다.

한진해운도 국내외 터미널·벌크선·사옥·상표권 매각 등을 통해 4112억원의 실탄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오너 사재출연은 아직 논의되고 있지 않다. 채권단이 한진그룹에 공개적으로 사재 출연을 요구하지는 않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자율협약 개시의 필수 조건으로 분석된다. 다만 한진해운의 실질적인 최대주주인 조양호 회장 일가에게 사재 출연을 요구할지, 한진해운 부실 과정에서 책임론이 불거지는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일가에게 사재 출연을 요구할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채권단의 사재 출연 요구, 조양호냐 최은영이냐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용선료 인하와 회사채 조정이라는 두 개의 고비가 더 남아 있다. 용선료 인하 문제부터 보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용선료 인하 협상이 불발된다면 원칙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기존 계약을 변경해서 용선료를 낮추지 않고 양대 선사가 법정관리에 돌입하게 될 경우, 해외 선주들도 용선료를 한푼도 받지 못하게 된다.

현대상선은 지난 2월부터 용선료 인하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순조롭게 이뤄낼 수 있다는 의지도 강하다. 정부가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5월 중순에 맞춰 용선료 인하 협상 중인 현대상선은 사업부문 임원 등 10여 명의 협상단이 22개 해외 선주사를 찾아다니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지난 2월부터 진행해온 용선료 인하 협상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며 “5월 중으로 용선료 인하 협상을 완료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진해운도 용선료 관련 구체적인 계획을 담은 자구안을 마련 중이다. 다만 이제 막 자율협약 신청서를 제출하고 보완 자구안을 마련 중인 한진해운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정부가 용선료 인하를 전제로 지원 방침을 밝힌 만큼 용선료 협상에 매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비은행권의 채무도 문제다. 전체 차입금(4조8000억원) 중 은행 대출이 23%에 달하는 현대상선도 회사채 투자자 등과의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상선은 6월 사채권자 집회를 연다. 한진해운도 상황은 비슷하다. 6월 1900억원 공모 사채 만기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1조1000억원어치 공·사모 채권을 막아야 한다. 문제는 한진해운 차입금 중 비은행 채무(비협약 채권)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비은행 채권이 많으면 자율협약에 들어가더라도 채무조정이 가능한 채권이 적어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 한진해운 차입금(5조6000억원) 중 은행 대출은 12.5%에 그친다. 한진해운은 회사채 유예를 위한 사채권자 집회를 5월 19일 개최할 예정이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법정관리로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KDB산업은행은 배수의 진을 친 상황이다. KDB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도 불사할 것”이라며 “산은은 두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손실을 모두 떠 안을 수 있다”고 양대 선사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중 하나만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다. 양대 선사의 부채 규모가 과도해 양사 부채를 모두 해소하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한진해운의 부채 규모는 6조6000억원, 현대상선의 부채 규모는 4조8000억원 수준이다.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체결로 양사 모두 채권단 관리 하에 들어가면서 합병설에 힘이 실린 것도 사실이다. 정부 내에서도 국적선사가 반드시 두 개일 필요는 없지 않으냐는 의견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 관계자는 “모두 자구노력과 협상을 잘 해서 자율협약에 성공하면 둘 다 살 수 있겠지만 불가피할 경우 1개만 살아남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 확정된 상황은 아니다. 해운 업계 관계자는 “합병설이 나오기 다소 이른 시점”이라며 “일단 양사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채권단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회사가 나올 때, 비로소 합병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두 회사 모두 어려운 상황인데 만약 구조조정 성과가 큰 차이가 없을 경우 어느 선사가 인수 주체가 되느냐도 논란거리”라고 말했다.

산은 배수의 진 “법정관리 불사”

물론 최상의 시나리오는 양사가 모두 순조롭게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국내 해운 업계와 항만업 등 유관기관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런 시나리오를 바란다. 용선료 협상을 순조롭게 이끌어 내고 사채권자들의 채무 감면과 유예를 거치면, 채권단의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관건은 남아 있다. 어떤 해운동맹에 들어가느냐다. 세계 해운동맹은 덴마크 머스크와 이탈리아·스위스 합작 MSC가 결성한 ‘2M’을 비롯해 프랑스 CMA-CGM을 중심으로 한 ‘O3’, 한진해운이 포함된 ‘CKYHE’, 현대상선이 포함된 ‘G6’ 등 4대 동맹 체제다. 이들은 주요 원양 항로의 99%를 점유한다.

4대 해운동맹 재편 ‘급물살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은 한진해운 자율협약 신청 직전 보유 주식을 팔아 논란을 빚었다. 금융당국이 최 회장의 주식 매각 관련 법규 위반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히자 최 회장 측은 상속세 납부 등을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최근 CMA-CGM과 중국 코스코(COSCO), 대만 에버그린, 홍콩 OOCL 등 4개 해운사가 기존 동맹에서 탈퇴했다. 내년 4월 ‘오션 얼라이언스’란 새로운 해운동맹을 출범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되면 해운 업계는 덴마크·스위스의 2M과 프랑스·중화권 중심의 오션 얼라이언스로 재편될 전망이다. 향후 발주량까지 고려하면 TEU(1TEU: 20피트 컨테이너 1대) 기준 2M은 33.6%, 오션 얼라이언스는 37%를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양대 해운 동맹에 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G6 동맹에서 2개사가 빠진 G4 체제가 되면, 시장점유율이 11.5%로 쪼그라든다. CKYHE 동맹은 비중이 가장 큰 2개사가 빠지면서 사실상 동맹 해체 상황이다. 해운동맹 체제가 급격히 재편되는 움직임이 보이자 4월 26일 오후 여의도에서 우리나라 해운업 전문가 7인이 ‘해운동맹(얼라이언스) 재편 대응방안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3시간 동안 이어진 마라톤 회의에서 단 한 명도 화장실에 가지 않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들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운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해운업 전문가들은 앞으로 두 달을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운명을 좌우할 ‘골든타임’으로 봤다. 이들이 본 최고의 시나리오는 현대상선이 현재 G4 동맹에 남고, 한진해운이 2M 동맹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물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불가능한 시나리오도 아니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실장을 분석을 들어보자. “2M 동맹은 유럽 선사들로만 구성됐다. 오션 얼라이언스가 출범하면 2M 점유율을 살짝 넘어선다. 2M이 유럽계 해운사라는 점에서, 아시아 입지가 공고한 한진해운에게 러브콜을 보낼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작지만 누구도 모른다.” 물론 황 실장은 한진해운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1만8000TEU급 선박 수 척을 발주한다는 전제를 가정하고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현대상선이 주축인 G4 동맹에 한진해운이 합류하는 시나리오다. 현재로선 가장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이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만약 한 해운사가 재무구조 개선에 차질이 생겨 양사 합병 체제로 가더라도 동일 얼라이언스에 속해있다면 합병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부회장은 “G4 동맹은 서로 끈끈한 유대관계로 유명하며 특히 현대상선과 하파그로이드는 십수 년을 함께한 동지”라며 “지금 현대상선 상황이 다소 좋지 않더라도 법정관리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G4 동맹은 유지된다”고 봤다.

G4 동맹에 한진해운 합류할까


문제는 한진해운이다. 현재 한진해운은 G4 동맹 소속 해운사인 독일 하파그로이드와 일본 NYK에 합류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 역시 한진해운의 합류를 거부하지 말라고 현대상선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G4 동맹 중 한 군데라도 거부하면 한진해운은 해운동맹에서 빠진다. 한진해운이 G4에 합류하더라도 부산항 물동량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기존 G6 동맹 6개사와 CKYHE 동맹 5개사가 끌어오던 물량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한진해운이 합류하지 못하면 G4 동맹이 독일과 일본 선사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김영무 부회장은 “부산항은 1만 8000TEU급 배가 들어오기 불편한데다 기항지를 줄이면 비용도 상당히 줄어든다”며 “때문에 일본 해운사가 동맹을 주도하면 부산항 대신 동경과 오사카항을 환적항구로 이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G4 동맹의 최대 해운사인 하파그로이드가 G4를 탈퇴하는 시나리오다. 이렇게 된다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현대상선이다. 양창호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만약 G4 중에서 부실한 곳이 한 곳만 있어도 하파그로이드 입장에서는 G4 동맹 자체가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며 “G4 해체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이는 현대상선에 최악이지만, 한진해운으로선 최상의 시나리오다. 하파그로이드는 양대 해운동맹과 경쟁을 위해 규모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양창호 교수는 하파그로이드와 UASC가 합병한 뒤, 일본 3사(케이라인·MOL·NYK), 중국 양밍과 한진해운이 해쳐 모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네 번째 시나리오는 현대상선·한진해운이 모두 제3동맹에서 퇴출되는 시나리오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회생에 실패해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이럴 가능성이 크다. 김인현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장은 “만약 양사가 모두 퇴출돼 글로벌 체인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나라 해운업 자체가 몰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근본적으로 국내 선사가 자체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하영석 한국해운물류학회 고문은 “우리나라 해운사가 본원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운사를 살리겠다는 시그널을 준다면 모든 해운동맹에서 국적 선사를 유치하려고 할 것”이라며 “1만4000TEU급 이상 초대형 선박을 보유하고 비용 경쟁력이 높은 초대형 에코선을 건조해 가장 효율적인 항로에 투입하는 등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해운 동맹 재편 대응방안 긴급회의’ 패널: 김대진 KDB산업은행 산업분석부 부부장(물류학박사),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부회장, 김인현 고려대 로스쿨 해상법연구센터장, 양창호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윤상호 현대상선 전략총괄 상무, 하영석 한국해운물류학회 고문(계명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해사연구본부 실장

1333호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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