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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에 빠진 일본] 오큘러스 리프트 발매에 열도가 들썩 

예약해도 몇 개월 기다려야... 하드웨어·OS·주변기기 일체화 노리는 소니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오늘날의 플랫폼이 모바일이라면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은 미래의 플랫폼이다.” 2014년 3월 미국 페이스북은 20억 달러(약 2조3200억원)에 VR 스타트업 오큘러스(Oculus)를 인수했다. 당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서두와 같이 이야기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오큘러스 인수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페이스북에게 VR은 관련 없는 기술처럼 보였으며 보급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보는 견해에 더 힘이 실렸다. 그러나 마침내 저커버그의 말이 현실에서 구현되기 시작했다. 3월 28일 오큘러스는 4년에 걸쳐 개발해온 VR 단말기 ‘Oculus Rift(이하 리프트)’를 발매했다. 리프트는 HMD(Head mounted Display,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 기기) 형태로 599달러(약 70만원)라는 고가에도 예약이 쇄도했다. 1대에 15만엔(약 162만원)이 넘는 게임용 PC에 접속해야 하지만 전 세계 게이머들은 리프트에 열광했다. 최초 출하분은 이미 예약이 끝났고, 지금 주문하면 몇 개월 후에나 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다.

VR은 가짜를 진짜처럼 느끼게 만드는 모든 작업을 말한다. 현실 환경을 배경으로 가상 정보를 추가한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을 포함한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AR은 빠르게 대중화됐다. 위치 기반 교통정보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좁은 의미의 VR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VR과 AR을 구분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기술적 경계선이 희미한데다 앞으로 이 둘이 어떻게 조합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커버그의 선견지명?


VR의 매력은 말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직접 체험해봐야 알 수 있다. HMD를 쓰면 360도로 펼쳐진 컴퓨터 상의 가상현실에 빠져든다. 바닷속에서 모험을 즐기거나 사막에서 좀비와 총격전을 벌일 수도 있다. 오큘러스는 당시 19살이었던 ‘신동’ 게이머 파머 럭키(Palmer Luckey)가 2012년 설립한 회사다. VR 단말기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해 크라우드펀딩으로 약 2800만엔(약 3억원)의 개발비를 모으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약 10배의 자금을 조달했다. 시판용 제품조차 완성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페이스북은 2년 후 엄청난 돈을 주고 이 회사를 샀다. 저커버그 역시 아마도 VR의 압도적인 몰입감에 매료됐을 것이다. 리프트는 게임 단말기로 개발됐지만 앞으로 가격이 떨어져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분야로 얼마든지 넘어올 수 있다.

VR 환경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방식부터 지금과 확 달라진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상대와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개발 중인 컨트롤러 ‘Oculus Touch’를 사용한다면 아바타(분신 캐릭터)를 통해 손짓·발짓 등의 제스처를 나누면서 여러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몇 년 후에는 아바타가 아닌 실제 인간의 영상으로 교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2016년에는 일반용 VR 단말기가 잇따라 발매될 예정이다. 그야말로 ‘VR 원년’이다.

스마트폰 업체인 대만 HTC와 세계 최대 PC게임 보급 플랫폼인 ‘Steam’을 운영하는 미국 밸브(Valve)도 VR 단말기 ‘HTC Vive’를 공동 개발했다. 지난 1월 예약 주문을 받기 시작해 4월 정식 출시했다. 가격은 799달러(약 93만원)로 리프트보다 비싸지만 HTC 일본법인의 다마노 히로시 사장은 “(세계 시장에서) 4~5월은 예약이 꽉 찼다”며 “기대 이상의 반응”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10월에는 소니가 ‘PlayStation VR(PS VR)’ 발매를 앞두고 있다. 3월 말 공지된 가격은 399달러(약 46만원)로 가정용 게임기 ‘Play Station 4’의 부속품으로 발매된다. PS4는 2013년 11월 판매를 시작한 이후 역대 자사 게임기 중 가장 빠른 판매 속도를 보이고 있다. 올해 내로 4000만 대 돌파가 확실시 된다. 탄탄한 고객층과 합리적인 가격을 무기로 단숨에 VR 유저를 확보할 전망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간단한 VR 단말기도 보급되고 있다. 한국 삼성전자는 오큘러스와 공동 개발해 지난해 12월 ‘Gear VR’을 발매했다. 이 제품은 네덜란드에 설치된 VR 전용 영화관이나 일본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에 이용된 실적이 있다.

미국의 구글도 2014년 골판지를 사용한 간편한 VR 단말기 ‘구글 카드보드’를 발매했다. ‘5월 중순에 개최되는 구글 개발자회의(Google I/O)에서는 새로운 VR 단말기가 소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이미 유튜브에서는 VR 대응이 가능한 360도 동영상이 선을 보였다. ‘구글 플레이’에서 VR용 게임이 서비스된다면 보급 속도는 한 단계 더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할리우드도 VR에 뜨거운 반응


그러나 단말기 보급은 매력적인 콘텐트가 없다면 더딜 수밖에 없다. 최근 인기 게임인 ‘마인 크래프트’나 ‘그란 투리스모’ 등은 VR용 버전이 출시됐다. 할리우드도 의욕적이다. 2015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VR 콘텐트 제작 벤처기업인 ‘Jaunt’에 6500만 달러(약 756억원)를 출자했다. 오큘러스도 영화 스튜디오‘Oculus Story Studio’를 설립했다. 개설 1년여 만에 픽사 애니메이션스튜디오 등 대형 영화사로부터 인재를 스카우트해 이미 2편의 단편영화를 공개했다. 영화계 거장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 중인 영화 [게임 워즈]도 가상현실 공간을 무대로 한 SF어드벤처다. 2018년 봄 공개 예정으로 실제 VR 콘텐트로도 제작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지 루카스 감독이 가장 적극적이다. [스타워즈]를 만든 루카스 감독은 지난해 7월 VR 전문 스튜디오인 ‘ILMxLAB’을 설립해 스타워즈 시리즈의 VR 콘텐트를 공개한 바 있다.

VR의 인기에 투자자들도 뜨거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1월 골드먼삭스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VR 관련 시장은 800억 달러(약 94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보급 속도에 따라 시장은 1820억 달러로 커질 수 있다. VR은 게임뿐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활용된다. 노무라증권이 발표한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도 ‘게임 용도로만 보더라도 2020년 시장 규모가 1조엔(약 11조원)을 넘는다’(오카무라 유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고 전망하고 있다. 과거 2년 동안 실시된 VR 분야 벤처 투자 총액은 전 세계적으로 4000억엔 정도다. 스마트폰 게임 개발업체인 코로프라넥스트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규모의 VR 전용 펀드를 설립했다. 펀드 규모는 5000만 달러로 이미 200건이 넘는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코로프라의 야마가미 신타로 대표는 “가장 빨리 시장에 참여해 VR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펀드회사가 되고 싶다”라며 의욕적이다.

기회를 포착한 것은 투자가만이 아니다. 전 세계 게임 개발자들이 VR게임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인디 개발사들이 적극적이다. 지난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GDC(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는 VR 관련 출전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게임 저널리스트인 신 기요시는 “게임 관련 기업의 VR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크다”며 “VR의 특징을 살린 게임이 히트한다면 저렴한 개발비로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스마트폰 게임의 성장기와 닮아 있다”고 말한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세계적으로 새로운 VR 콘텐트 개발이 뜨겁다. 일본에서도 코로프라가 리프트용으로 2가지 타이틀을 투입했으며 그리(GREE) 역시 스마트폰용 타이틀을 복수 개발 중이다. 그리의 경우 ‘몇 년 전 휴대전화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과정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VR에서는 초기부터 참여해 업계 리더가 되고 싶다’(아라키 에이지 이사)고 의욕을 보인다.

게임 업계에서도 기대 만발

시장에 뛰어든 주요 기업의 기대 역시 크다. 요시다 슈헤이 소니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게임이 VR 단말기의 보급을 이끌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VR은 게임만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니 PS VR의 ‘시네마틱 모드’ 기능은 일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PS VR 안에서 영상이나 영화를 즐길 수 있다. TV가 없어도 누운 채로 대화면으로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가정용 게임기보다 훨씬 넓은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PS VR은 최고 수준의 사양을 자랑한다. 거치형 게임기인 ‘PS4’와 병행해 개발했기 때문에 영상 역시 PS4에 가장 최적화돼 있다. 이는 하드웨어에서 OS, 주변기기까지 모두 소니 스스로 해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요시다 대표는 “1994년 당시 PS의 등장은 엄청난 사건이었다”며 “처음으로 3D 그래픽을 사용한 가정용 게임기가 등장해 그때까지 게임을 만들지 않았던 개발자도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보려고 잇따라 뛰어들었다”고 회상한다. VR로 그 때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각오다.

삼성전자는 3월 요코하마 DeNA베이스터즈와 VR 콘텐트 서비스 제휴를 맺었다. 요코하마 스타디움 내에 ‘Gear VR’ 체험 코너를 설치해 선수들의 연습풍경 등을 VR 영상으로 시청하는 팬 서비스로 연결시키자는 의도다. 영업을 위해 활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미쓰비시지소는 삼성전자와 손 잡고 지난해 10월부터 주택 관람에 VR를 도입했다. 모델하우스까지 직접 가지 않아도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집안 구조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 ‘갤럭시 S6’는 고기능으로 설계돼 Gear VR에 높고 깨끗한 해상도로 VR영상을 내보낼 수 있다. PC 대응인 VR 단말기의 경우 전원 케이블이나 전용 공간이 필요하지만 Gear VR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VR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허들 높다” 버블 우려 목소리도


▎올해 초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16에서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PS) VR’을 활용한 게임 ‘런던의 강도’를 선보였다.
이벤트나 영업용으로도 사용하기 쉬워 가치가 높다. 오큘러스의 공동창업자 네이트 미첼 제품 담당 부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리프트를 개발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편안함’이다. 착용감이나 디자인과 같은 하드웨어 측면과 설정 및 콘텐트 등 소프트웨어 측면까지 사용자가 질 높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오큘러스는 자체 ‘오큘러스 스토어’를 통해 콘텐트를 공급하지만 타사 서비스 플랫폼인 ‘Steam’에도 적용된다. 사용자가 다양한 선택을 함으로써 개발자는 플랫폼에 구속되지 않고 유연하게 콘텐트를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콘텐트 수가 늘어나면 사용자가 더 증가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VR 시장의 조기 확대로 이어진다. 계획대로라면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기업이 수익을 향유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하나의 승리 전략으로 본다.”

기대가 더해지는 VR이지만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버블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과거 미래 플랫폼으로 기대를 모았다가 사라져간 인터넷 가상세계 ‘세컨드라이프’나 3D TV에 비유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야스다 히데키 에이스경제연구소 애널리스트는 “지금의 VR 게임은 시각과 청각을 사로잡아 유저를 놀라게 할 뿐”이라며 “히트시키기 위한 허들은 에베레스트급으로 높다”라고 경종을 울린다. VR 전문 미디어인 ‘Mogura VR’의 구보타 슌 공동대표 겸 편집장도 “VR 게임은 킬러 타이틀의 부재로 시동에 고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쨌든 VR 전쟁은 시작됐다. 활용 범위도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는 VR을 이용한 오락시설을 4월 오픈했다. 빌딩 고층부의 돌출된 상판을 걷는 공포체험이나 스키를 타고 절벽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어트랙션 등이 마련됐다. 동사 AM 사업부의 고야마 준이치로 수석 프로듀서는 “VR을 이용하면 100㎡ 부지에 세계 최대 테마파크를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게임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는 VR 세계. 과연 새로운 플랫폼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일시적인 붐으로 끝날 것인가?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1335호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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