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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클린 디젤’ 신화] 이론적으로 가능한데 현실에선… 

규제 충족시키려면 차값 20~30%↑ ... 미세먼지 주범으로 모는 건 무리 

박성민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닛산과 폴크스바겐의 디젤 엔진 사건이 연이어 터지며 클린 디젤의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사진은 2011년 국제 그린카 박람회에서 관람객이 클린 디젤의 원리를 살피고 있다.
폴크스바겐과 닛산의 디젤 배기가스 논란이 연이어 불거지자 ‘디젤 엔진의 시대가 끝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디젤차는 클린 디젤을 내세워 친환경차로 각광을 받은 지 15년이 되지 않아 이젠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몰렸다. “클린 디젤 자체가 ‘환상’이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클린 디젤의 역사는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도요타가 하이브리드 ‘프리우스’를 출시하면서 친환경 차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던 시기다. 지금처럼 가솔린·디젤 내연기관이 사라지고 모터가 대체할 것이란 전망이 그때도 나왔다. 내연기관 역사가 100년이 넘어 엔진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독일 브랜드는 역으로 디젤 엔진의 효율성에 주목했다. 디젤엔진은 질소산화물(NOx)이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대신 가솔린 엔진과 비교해 더 적은 연료로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다. 또 다른 환경오염 물질인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가솔린 엔진보다 적다는 강점도 있었다. 별도 장치를 장착해 질소산화물만 해결하면 연비 좋고 깨끗한 차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 클린 디젤의 시작이다.

비싼 백금 덜 쓰려고 ‘꼼수’ 부려


독일 브랜드가 질소산화물을 줄이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배기가스 재순환 장치(EGR)를 장착해 연료를 최대한 연소시켜 오염물질의 배출을 줄이는 게 우선이다. 배기가스를 한번 더 엔진룸으로 집어 넣어 연소시키는 방법인데, 엔진의 출력이나 연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닛산이 온도 조건을 낮게 넣어 배기가스의 재순환율을 줄이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EGR이 걸러내지 못한 질소산화물은 선택적환원촉매장치(SCR)나 희박질소촉매장치(LNT)라는 산화장치를 거친다. 별도의 촉매를 사용해 질소와 산소를 분리하는 방법이다. SCR 방식이 LNT와 비교해 오염물질은 더 확실하게 걸러주지만 가격이 비싸고 차량 내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게 단점이다. 지난해 말부터 문제가 된 차는 대부분 LNT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클린 디젤의 허구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지난해 폴크스바겐 사태가 터지기 이전부터 있었다.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디젤 엔진의 매연이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발표한 게 도화선이 됐다. 2014년 앤 히달고 파리 시장이 “2020년까지 파리에서 디젤차가 사라질 것”이라는 폭탄발언을 했고 파리 시민들이 호응하면서 화제가 됐다. 2015년 4월 영국의 대법관 전원(5명)은 디젤차에 대한 징벌적 과세 조치 내용이 포함된 대기질 개선 계획을 유럽연합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문제가 되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디젤 차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나온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22%가 자동차에서 나온다. 다만, 모든 책임을 디젤차에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상현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가솔린이나 디젤 등 내연기관마다 주로 배출하는 오염물질의 종류가 다르고 디젤차라고 해도 차종에 따라 배출량의 차이가 크다”며 “디젤차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수도권대기환경청이 2014년 발표한 자료에는 ‘자동차 타이어의 마모에 의해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디젤 엔진 배출가스에서 발생하는 것보다 20배나 많다’는 내용도 있다.

전문가들은 환경 보호를 위해 “디젤 엔진 규제를 강화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접근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현 교수는 “최근 나오는 디젤차는 오염물질 배출량이 크게 줄었고, 문제가 되는 것은 연식이 오래된 디젤차다”며 “낡은 디젤차의 점검을 철저히 하고 폐차 지원금 제도를 마련하는 등의 방법이 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임옥택 울산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디젤 엔진은 장점이 많아 트럭이나 건설장비에는 꼭 필요한 내연기관이고 국가 경제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무작정 운행을 막기보다는 환경적인 부분을 강화하며 기술을 쌓아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클린 디젤’은 정말 허구일까? 이 질문에 선우명호 한양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말했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질소산화물을 줄일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차값이 너무 올라가 현실적으로 적용이 어렵다”는 게 선우 교수의 설명이다. SCR과 LNT에는 화학반응을 위한 촉매제로 백금이 들어가는데 이 자체가 고가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최대한 적은 백금을 쓰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EGR 조작과 같은 꼼수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또 백금 자체가 소모성 물질이어서 오래될수록 효과가 떨어진다. 10년이 넘어가는 디젤차가 검은 매연을 내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환경오염 방지효과가 좋은 SCR보다 가격이 싼 LNT를 주로 쓰는 것도 문제다. 한 자동차 전문가의 말이다. “지난해 폴크스바겐부터 최근 닛산까지 문제가 된 차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소형차고 LNT를 장착했다는 게 공통점이다. 소형차일수록 가격이 중요해 값싼 LNT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임옥택 교수는 “이번 사태로 LNT 방식으로는 디젤차가 유로6 기준을 충족하기 쉽지 않다는 게 밝혀졌다”며 “유로7 등 더 강화된 환경규제가 나오면 LNT 방식으로 규제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타이어가 오염물질 더 많다’ 조사 결과도

클린 디젤을 실현하려면 EGR을 조작하지 않고, 촉매제로 더 많은 백금을 쓰고, 값비싼 배기가스 저감장치(SCR)를 달면 된다. 다만 이렇게 되면 지금보다 20~30% 정도 차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과 비교해 부품의 수가 3배나 많아 이미 가격이 비싼데, 여기서 가격차가 더 벌어지면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많은 전문가들이 ‘디젤차 시대의 종언’을 이야기 하는 이유다.

디젤차의 미래를 밝게 보는 전문가도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에 비해 개선·발전될 여지가 충분하다”며 “가격 문제는 있지만 여전히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가장 경쟁력을 갖춘 엔진은 디젤”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BMW의 세단 520d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주장했다. 520d는 이번에 환경부가 검사를 실시한 20개 차종 중 유일하게 환경기준을 충족했다. 김 교수는 “친환경 기술은 어느 한 장치에 의해 해결되지 않는다”며 “엔진 효율과 배기가스 후처리 기술, 각 장치간 연계까지 완벽해야 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 박성민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1336호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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