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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대기업의 영국 지사가 보는 브렉시트] 엔고 예상에 자동차 ‘맑음’ 

스마트폰·석유화학·철강 우울... 사면초가 해운업은 울상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현실화하면서 한국 산업은 어떤 영향을 받을지 주목받고 있다. 6월 24일(현지 시간) 브렉시트 직후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SK이노베이션의 영국 지사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대차 영국 지사 관계자는 “투표 결과를 주도한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재투표 주장이 잇따르는 등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영국 지사 관계자는 “(탈퇴 의사를 표시했지만) 탈퇴 후 시나리오는 준비하지 않은 것 같아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브렉시트가 미칠 파장에 대해선 “일단 관망하자”고 입을 모았다. 현대차 영국 지사 관계자는 “경기·환율 전망, 향후 다른 EU국과 협상 여부, EU 추가 탈퇴 움직임 등 변수가 복잡해 영향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영국 지사 관계자는 “(브렉시트가) 단기적으론 유가 하락 요인이지만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다만 장기적으로 경기 악화에 따른 석유 수요 위축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수출 기업이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한 대응책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 영국 지사 관계자는 “영국 내 생산 법인을 둔 회사는 유럽 본토로 이동하는 수준까지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짜야 한다”며 “수출은 관세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반제품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영국 지사 관계자는 “브렉시트 후폭풍은 무엇보다 금융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며 “환차손을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하는 기업 중 하나가 영국 첼시에 유럽 본부를 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다른 EU 국가로 본부 이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LG전자 등 전자업체는 유럽 경제위기로 매출 비중이 계속 줄어든 상황에서 브렉시트가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했다. 한 대형 전자 업체 임원은 “소비 위축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는 걸 가장 경계한다”며 “환율 변동성이 커지는 점도 장기적으로 판매 등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이 한창인 조선·해운 업계엔 먹구름이 끼었다. 브렉시트가 ‘EU 경기 침체→물동량 감소→선박 발주 감소’로 이어질 경우 매출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서다. 단일 수출 품목 1위인 선박의 경우 금융 시장이 안전 자산에 집중되면 돈을 빌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현대중공업 영국 지사 관계자는 “주요 선주사가 몰린 유럽이 경기 경색으로 치달을 경우 ‘수주 절벽’의 장기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해운업도 교역량 수요가 위축될 경우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자동차 업계는 ‘반사이익’을 기대한다. 국내 업체들은 동유럽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지만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업체는 영국에 두고 있다. 영국 현지에서 생산·판매하는 일본차는 한국차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가진다. 하지만 영국에서 생산한 일본 차를 EU 국가에 수출할 땐 (동유럽에서 생산해 관세를 물지 않는 현대·기아차와 달리)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현대·기아차는 올 5월까지 영국에서 7만8000대를 판매했다. 같은 기간 유럽 판매량 40만2000대의 20% 수준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유럽 전역에서 일본차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나 철강도 ‘엔고’ 현상을 맞은 일본 업체와 경쟁에서 유리할 수 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EU에 대한 반감도는 영국(48%)보다 그리스(71%)·프랑스(61%)·스페인(49%)이 더 높다”며 “브렉시트 자체보다 EU 회원국의 도미노 이탈, 보호무역주의 대두에 대비한 전략을 다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1342호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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