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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非婚)의 경제학] 결혼? 자식? 내 삶이 중요하죠 

SNS서 5년 새 ‘비혼’ 단어 5배 증가... 월세·홈인테리어·소형차 수요도 급증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결혼을 하지 않고 살겠다는 비혼족(非婚族)이 늘고 있다. 경제적 부담과 육아 문제 탓에 결혼을 원치 않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은 5.9건이다.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비혼족이 늘면서 비혼 문화를 돕는 단체가 생기고 새로운 문화도 생겨났다. 혼자 웨딩드레스나 턱시도를 입고 사진을 찍는 ‘싱글 웨딩’, 조카에게 애정을 쏟는 ‘조카바보’가 대표적이다. 비혼족 증가에 따라 월세·홈인테리어·소형차 수요도 늘고 있다. 비혼족이 늘면서 생긴 경제·문화 현상을 짚어봤다.

올해 41세인 미혼 여성 이지은씨는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다. 예쁘장한 얼굴에 안정적인 직장, 경제력까지 갖췄다. 5년 전 부모로부터 독립해 현재 서울 장안동의 소형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이씨는 퇴근 후 저녁 시간은 자신만을 위해 보낸다. 퇴근 후 1시간가량 필라테스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원적외선 반신욕 사우나에 앉아 피로를 푼다. 매주 금요일 퇴근 후에는 집 근처 대형마트로 향한다. 주말에 먹을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소포장 채소와 과일,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즉석식품을 구입한다. 싸다고 대용량 제품을 구입했다가 버리기 일쑤여서 조금 비싸더라도 소포장 식재료를 산다. 주말에는 작은 방에 마련한 ‘나만의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한쪽 벽면에 설치한 100인치 크기의 스크린이 빔프로젝터를 통해 그려내는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일주일 피로가 가시는 듯하다. 이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그저 웃어 넘긴다. 그는 “맞벌이나 육아 문제를 떠안는 결혼생활이라면 안 하는 게 낫다”며 “지금처럼 모든 시간을 나에게 쏟으면서 지내는 게 더욱 의미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결혼보단 자신의 삶을 더 중시하는 비혼족(非婚族)이 늘고 있다. 비혼족은 결혼을 하지 않은 남녀를 일컫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자발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남녀를 가리키는 의미가 강해졌다. 서울시의 ‘서울 가구·가족의 모습’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결혼은 선택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28.9%였지만 2014년에는 41%로 늘었다. 이와 달리 ‘반드시 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3.5%에 불과해 같은 기간 동안 10% 감소했다. 실제로 혼인률도 낮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은 5.9건이다.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결혼은 선택” 41% … 작년 혼인 건수, 통계 작성 후 최저


비혼이란 단어를 언급하는 양도 늘었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 조사 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 비혼에 대한 언급은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는 2500∼3000 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에 1만3000여 건으로 급증하며 약 5배 수준으로 늘었다. 다음소프트 관계자는 “비혼 선언자가 늘어나는 것은 경제적 부담과 같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며 “2011년부터 최근까지 결혼 관련 감성어로 ‘현실적’ ‘스트레스’ ‘경제적’ 등의 언급량이 꾸준히 증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의회의 ‘서울시 1인 가구 대책 정책연구’에 따르면 20~30대 1인 가구주 10명 중 4명은 결혼 자금이나 혼수, 집 마련 등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는 20대는 39.7%, 30대는 39.2%에 달했다. ‘적합한 배우자를 만나지 못해 결혼하지 않았다’는 비율은 20대 25.7%, 30대 30.5%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때문에 1인 가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0년 226만 명(전체 15.6%)이던 1인 가구는 지난해 506만 명으로 전체 가구의 26.5%를 차지했다. 오는 2035년에는 우리나라 인구의 34.3%가 1인 가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인 가구가 늘면서 결혼과 출산으로 3인 이상의 가족을 구성하던 전통적인 구조에서 독신 또는 자녀가 없는 가구로 변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혼자’라는 점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음소프트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온 4억 건의 글 중 2013년까지는 ‘혼자여서 힘들다’가 1위였지만 2014년부터는 ‘혼자라서 좋다’가 1위를 차지했다. ‘혼자라서 편하다’ ‘신나다’가 각각 5위와 9위를 차지했다. 다음 소프트 관계자는 “과거에는 혼자라는 단어가 외로움과 직결됐지만 이제는 심리적인 편안함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비혼족이 늘면서 이들 세태를 반영한 현상과 문화도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앞으로 결혼은 하지 않을 테지만, 축의금 명목으로 돈을 걷어 주면 좋겠다’는 비혼 선언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이 글은 많은 네티즌의 지지를 받았다. 온라인 게시판에는 ‘10년 간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면 친구들이 축의금 대신 ‘위로금’을 걷어주기로 했다’는 글도 종종 등장한다. 장기간에 걸쳐 축의금으로 지출한 많은 금액을 전혀 돌려받지 못하는 기존의 축의금 문화는 불합리하다는 젊은층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비혼 문화의 정착을 돕는 단체도 생겼다. 여성주의단체 ‘언니 네트워크’는 비혼 여성 축제를 개최하고 비혼식을 연다. 비혼식에 참석한 여성들은 웨딩드레스에 대항하는 의미로 자주색 드레스를 입기도 하고 정장을 차려 입기도 한다. 이들은 “우리는 비혼으로 홀로 잘살겠노라고 신성하게 선언합니다”라고 외친다. 이 단체는 지난 2014년에 비혼 여성과 1인 가구를 위한 가이드북을 제작해 공공도서관에 배포하기도 했다. 가이드북에는 혼자 집을 구할 때 유의할 점이나 비혼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등의 내용을 담았다.

비혼족을 위한 틈새시장도 생겨났다. 그중 대표적인 게 결혼을 하지 않아도 혼자 웨딩드레스나 턱시도를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싱글 웨딩’ 이다. 신랑·신부가 결혼식 전 혼인을 기념하면서 스튜디오에서 함께 찍는 보통의 웨딩 촬영과 달리 여성 또는 남성 혼자서 예복을 입고 찍는다. 소품이나 포즈에 제약이 없어 개성 있게 찍을 수도 있다. 싱글 웨딩 촬영에 드는 비용은 50만∼100만원 정도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웨딩사진 스튜디오 관계자는 “한 달에 1~2명 정도 결혼 계획이 없는 여성이 혼자 또는 친구와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남긴다”며 “남성들도 턱시도보단 다양한 옷을 입고 화보식으로 촬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딸바보’ ‘아들바보’에 대신 ‘조카바보’ 현상도 생겼다. 혈육에 대한 정을 자녀 대신 조카에게 쏟는 것이다. ‘조카바보’는 조카 밖에 모르고, 친자식처럼 조카를 사랑한다고 해서 등장한 신조어다.

비혼 문화 정착 돕는 단체도 생겨


이들은 돈과 시간을 오롯이 자신에게 투자할 수 있는 만큼 자기계발이나 문화·취미생활에 열중한다. 이들이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1인 가구의 소득 대비 소비 성향은 80.5%로, 전체 가구 평균인 73.6%를 웃돌았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소비는 2인 가구의 1인당 소비보다 8%포인트 높다. 이로 인해 2012년에 비해 2020년엔 총소비가 3.1% 늘어나는 효과가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들은 저마다 이들을 겨냥한 가구나 가전, 주방용품, 종합홈인테리어 등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비혼족은 거실과 안방을 중심으로 하는 3인 이상의 가족 중심의 인테리어 공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미와 관심을 전체 공간의 중심에 두는 홈인테리어 관심이 크다. 가족의 주거공간인 집이 비혼족에게는 취미·휴식 등을 즐기려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주말·휴일에 인터넷 검색과 TV 시청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TV나 비디오 시청이 57.8%로 가장 많았고, 컴퓨터 게임과 인터넷 검색이 25.8%로 뒤를 이었다. 10명 중 5명가량(46.4%)은 혼자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공간 활용도가 높은 꼬마 아파트와 소형 오피스텔의 수요도 늘고 있다. 소득수준이 높지 않은 이들 사이에선 여러 명이 집을 공유해 함께 쓰는 셰어하우스(share house)도 인기다. 서울 여의도 인근의 공인중개사 대표는 “아파트시장에서 소형으로 분류되는 전용면적 59㎡보다 더 작은 꼬마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미혼 여성들은 주거지 선택 때 꼽는 1순위가 보안인 만큼 보안·방범시설이 강화된 곳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집 꾸미기 관심 많고 취미·자기계발에 많은 투자

비혼족은 자가 소유나 전세에 비해 목돈 부담이 적은 월세 거주 비중이 큰 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비혼족이 많은 20~30대 1인 가구의 경우 월세(보증부 월세 포함) 거주 비율이 45.2%에 달했다. 자기 집을 가진 1인 가구는 11.6%에 그쳤다. 20~30세대 1인 세대는 평균적으로 27만7000원을 월세에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극심한 전세난과 목돈 마련 부담 탓에 월세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결혼을 하면 대체로 맞벌이가 가능해 대출을 받더라도 주택 매입에 따른 원리금(원금과 이자)을 납부하는 데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지만, 비혼족에게는 큰 무리가 따른다”고 설명했다.

내 집은 아니지만 주거 공간은 나만의 개성을 살리는 데 열중한다. 예컨대 방·거실·서재 등의 공간을 ‘나만의 영화관’ ‘나만의 휴식공간’ 만드는 것이다. 인테리어 업체들도 스타일별·공간별 맞춤 상품을 내놓고 있다. 토털 인테리어 브랜드 까사미아는 비혼족의 증가와 소형 아파트 인기 등 새로운 주거 트렌드에 맞춰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형·다기능 가구를 선보이고 있다.

비혼족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삼성카드의 빅데이터 조사에 따르면 2015년 4월~2016년 3월 사이 20~30대의 요리학원·예체능학원 등의 이용건수는 2013년 대비 34%, 인테리어 관련 용품의 구매는 47% 늘었다. 앞으로 비혼족의 수요가 늘면서 관련 시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1342호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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