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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오 유컴테크놀러지 대표] “빅 데이터 기반 서비스 사업으로 진화” 

스포츠 데이터 정밀 측정 기술 접목... 종합 스포츠 IT기업 부푼 꿈 

박상주 기자 sangjoo@joongang.co.kr

미국 ABC 방영 드라마 [로스트(LOST)]에는 외진 섬에 남겨진 사람들이 골프를 즐기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주인공 잭 셰퍼드(매튜 폭스 분)는 “골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한마디로 답한다. “골프는 정확성(accuracy)이죠.”

멀리 날려보내고, 힘차게 스핀을 먹이는 게 멋져 보이겠지만, 결국 골프는 정확한 거리까지 공을 보내는 게임이다. 눈대중으로 어림짐작해 경험에 견줘 보는 걸로는 한계가 있다. 섬세한 거리 정보, 그린의 라이 등을 알고 쳐야 싱글로 거듭날 수 있다. 그래서 골프는 정확성의 스포츠다.

수 년 전부터 주말 골퍼들이 모자에 흰색 버튼을 달고 다니고 있다. 현 위치에서 홀컵까지 거리를 알려주는 ‘보이스캐디’다. 조약돌 크기의 이 기기만 있으면 거리가 얼마 남았는지 일일이 찾아보고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모자에 달린 버튼만 누르면 정확한 거리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캐디가 거리를 길게 알려줬네, 짧게 알려줬네 불평하는 이야기도 없다. 보이스캐디는 캐디보다 정확하다.

보이스캐디는 2010년 처음 나왔다. 음성으로 거리와 핀의 위치까지 알려주는 획기적인 기계였다. 자동차 운전자에게 내비게이션이 필수이듯, 골퍼에겐 보이스캐디가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보이스캐디는 출시 9개월 만에 10만 개가 팔려나갔다. 대개 1000~2000개 수량이 소화되는 폐쇄적인 골프용품 시장에서 초대박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중학교 생활기록부 ‘나의 꿈은 중소기업 사장’

골프 업계 희대의 히트상품인 보이스캐디를 만든 주역은 김준오(49) 유컴테크놀러지 대표다. 김 대표는 전형적인 기술경영인이다. 안테나류 무선소자 개발을 전공한 전기공학 박사 출신이다. 실리콘에서 동작할 수 있는 초고주파 소자 설계가 박사 논문 주제다. 쉽게 말해, GPS 등을 활용해 정확한 위치 정보를 잡아내거나 거리측정기 제작에 가장 필요한 기술을 가진 전문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가 골프용품 개발로 창업한 것은 아니었다.

김 대표는 중학교 시절 생활기록부 장래희망란에 ‘중소기업 사장’이라고 썼다. 대기업 사장이 아니라 창업을 해서 작은 회사부터 만들어 보겠단 의미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칠 무렵 현지에선 창업열풍이 불었다. 주변 동료 박사 중 한 명은 회사를 만들어 인텔에 2억 달러에 팔기도 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김 대표는 미국보다 인맥이 든든하고 기술력 차이가 많이 나는 한국으로 넘어와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투자를 받아 무선통신 분야 사업으로 창업했지만 벌이가 좋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눈에 띈 것이 PDA타입 거리측정기였다. GPS신호로 거리를 측정하는 기계다. 당시엔 가격이 비싸고 GPS 수신기의 오차도 컸다. 위치정보 오차가 반경 100m에 달했다. 거리측정기가 옆 홀까지의 거리를 알려주기 일쑤였다. 메모리 용량도 작아 3~10개 골프장 정보 밖에 넣을 수 없었다. 다른 골프장을 갈 때면 해당 골프장 정보를 일일이 찾아 다운로드 받아야 했다. 기존 거리측정기 제조사는 골프장 데이터를 더 적게 입력하는데 주력했다. 화면이 크고 무거워 정작 거리를 측정해야 할 땐 카트에 두고 다니게 되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이었다. 불편했지만 골퍼들은 PDA화면으로 정보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거리측정기는 충분하다고만 생각했다.

2010년 들어 자석으로 모자에 붙이고 다니는 볼마크가 등장했다. 이를 본 김 대표는 거리측정기를 볼마크처럼 모자에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시점의 개발 타이밍이 좋았다. 2010년은 GPS 수신기의 오차가 줄고 반도체 메모리의 용량이 급증하던 시기다. 김 대표는 위치정보 오차를 대폭 줄였다. 메모리 용량을 키워 한국은 물론 세계 각국 3만 개 골프장 정보를 모두 넣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 사용하기 간편하도록 버튼만 누르면 거리와 핀의 위치 등 간단한 정보를 목소리로 들려 줄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내놓은 상품이 보이스캐디 ‘VC100’이다. “한국 골프장에선 어디에나 캐디가 있어서 누가 이런 전자제품을 살까 싶었어요. 그래서 선물용으로 쓰도록 가격을 8만~9만원대로 맞췄습니다. 당시에 선물용으로 흔하던 고급 골프공 한 세트가 6만원이었거든요. 선물을 받는 사람의 호응이 폭발적이었어요. 광고를 하지 않고도 입소문을 타고 골프 업계에 널리 퍼졌지요. 원래 골프용품은 유통체인에 입점하기 상당히 까다로운데, 보이스캐디는 입소문 덕에 쉽게 입점했습니다.”

최근엔 제품 가격을 30만원 선에 맞추고 있다. ‘직장을 다니는 남편이 아내의 허락 없이 쓸 수 있는 최대 금액’이란 판단에서다. 한국의 골프인구는 150만 명 선. 유컴테크놀러지는 이 중 30만~50만 명을 골프IT 제품 구매대상자로 보고 있다. 구매 층이 넓은 만큼 다양한 라인업이 필요했다. 김 대표는 회사를 키우면서 직원의 반을 연구개발 인력으로 구성했다. 매년 새로운 라인업을 내놓기 위해서다.

아이디어는 곧바로 시제품으로 이어지고 있다. 보이스캐디 이후 김 대표는 시계형·레이저형·밴드형 거리측정기를 연이어 출시하고 있다. 개발 분야는 거리측정기에 국한하지 않는다. 퍼팅의 방향과 템포를 측정하는 퍼팅분석기, 그린 경사도를 측정하는 디지털 볼마커, 개인용 스윙분석기까지 내놓았다. 특히 스마트폰처럼 생긴 스윙분석기는 차량 속도 측정용 스피드건에서 사용하는 레이더를 활용해 공의 발사 속도와 발사각을 측정한다. 정밀하게 거리와 방향을 조절해야 하는 숏게임 훈련에 적합한 기기다. 과거 이런 기기는 백팩만큼 커 투어프로들의 큰 짐 중 하나였다. 스크린골프가 흔하지 않은 미국에서 김 대표의 스윙분석기는 인기 있는 제품이다.

유컴테크놀러지는 2014년을 분기점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존 제품군을 매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무게는 줄이고 기능은 다양화한다. 거리뿐 아니라 그린의 기울기 분포도를 보여줘 공략 지점을 미리 알려줄 정도다. 이젠 거리측정기에서 벗어나 확실한 종합 골프IT 회사로 변신했다. 브랜드 범위를 늘리고 골프 전 분야에 IT기기가 필요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시장도 다변화하고 있다. 유컴테크놀러지의 해외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35%에 달한다. 미국이 20%, 일본이 5~10%로 늘어나고 있고, 유럽이 10%대다. 김 대표는 미국에 지사를 내고 해외 비중을 더욱 키우고 있다. 한국 시장은 세계 골프 IT 제품 시장의 10%에 불과하고 미국은 45%나 차지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주요 골프용품 마트에 신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스윙분석기는 영어로 된 설명영상을 함께 보내면서 매달 1000여 개가 판매되고 있다.

해외 매출 비중 35%

김 대표는 내년 목표를 ‘스포츠 IT기업’으로 잡고 있다. 골프 IT에서 벗어나 아웃도어 부문 IT기기를 개발 중이다.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프로페셔널한 스포츠 IT기기를 만들 예정입니다. 정교한 데이터로 선수는 물론 상급 아마추어도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의 다양한 스포츠 능력을 측정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기기를 선보일 거란 얘기다. 그는 “내후년엔 무선 데이터 기술을 접목해 데이터 분석 중심의 서비스 기반 사업으로 또 한 번 변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컴테크놀러지는 탄탄한 기술력과 매력적인 상품군을 가진 중소기업이다. 김 대표는 중학교 때의 꿈을 이뤄냈다. 다만, 골퍼로서의 꿈은 멀었다. 김 대표는 아직 완전한 싱글에 등극하지 못했다. 80대 타수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

1342호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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