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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D 시장의 강자 노리는 프로그램스 박태훈 대표] 넷플릭스도 두렵지 않아요 

영화 별점으로 시작해 정액제 VOD 서비스... 글로벌 영화사·방송사와 계약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박태훈 프로그램스 대표는 왓챠의 성공을 발판으로 왓챠플레이를 내놓고 정액제 VOD 시장에 뛰어들었다.
영화 별점이 중요한 데이터가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누구나 한번쯤은 매겨본 영화 별점을 한 데 모으니 강력한 무기가 됐다. 영화 별점 데이터는 영화 제작사 사이에 화제가 됐고, 영화 별점은 마케팅 도구가 됐다. 영화 플랫폼을 서비스하는 통신사들은 사용자들의 영화 별점 데이터를 사가기도 했다. 별점 서비스는 드라마로 이어졌고, 곧 도서에 대한 별점 서비스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영화 별점을 보유한 ‘왓챠(Watcha)’를 세상에 내놓은 박태훈(30) 프로그램스(Frograms) 대표가 보여준 놀라운 결과다.

왓챠는 개인 추천 영화와 드라마 서비스로 유명하다. 별점 데이터 때문이다. 왓챠를 이용하기 위해 회원에 가입하려면 가장 먼저 자신이 봤던 영화 중 20개를 골라 별점을 줘야만 한다. 회원 수가 늘면 늘수록 별점 데이터가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모인 별점 데이터로 사용자들의 취향을 분석하게 된다. 분석 결과에 따라 사용자 개개인에게 맞는 추천 영화를 보여주게 된다. 왓챠를 사용하는 이들은 자신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추천 콘텐트를 보면 놀랄 수밖에 없다. 극장에 걸리는 수많은 영화 중에서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보고 싶은 영화 한 편 고르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왓챠를 이용하면 그런 고민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며 박 대표는 웃었다.

2억7000만 개 별점 데이터 분석으로 추천 정확성 높여

별점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분석의 정확성은 높아진다. 현재 왓챠에 쌓인 별점 데이터는 2억7000만 개나 된다. 가입자 수는 180만 명을 넘어섰다. 박 대표는 “넷플릭스나 아마존 같은 서비스를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개인 추천 서비스 때문이다. 우리는 2억 개가 넘는 별점 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들의 취향에 맞는 콘텐트를 정확하게 추천하고 있고, 이 때문에 왓챠가 유명해졌다”고 강조했다.

데이터가 아무리 쌓여도 분석할 능력이 없었으면 왓챠는 그렇게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박 대표는 “우리의 엔지니어들은 업계에서 유명하다. 좋은 엔지니어를 합류시키기 위해서 2년 동안 설득한 경우도 있을 정도로 공을 많이 들였다”고 강조했다. 프로그램스 임직원은 모두 25명이다. 이 중 개발자는 7명이다. NHN과 카카오에서 12년의 개발경력을 가지고 있는 카이스트 전자공학과 출신의 정인수 팀장을 필두로 삼성전자·넥슨·엔씨소프트 같은 내로라하는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이들이 추천 서비스의 정확성을 높이는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왓챠는 서비스 초기부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창업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케이큐브 벤처스의 제 1호 투자 스타트업으로 선정됐다. 2013년 10월에는 메가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27억원을 투자받으면서 미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12년 글로벌 K-Startup 프로그램에서 최우수상을 시작으로, 2013년 구글 플레이 어워드 최고의 앱, LINE 일본 본사 임원진 선정 베스트오브베스트 상(2014년), 대한민국 멀티미디어기술대상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회장상(2015년), K-글로벌 DB스타 지원사업 선정(2015) 등 다양한 수상도 했다.

별점 서비스는 큰 호응을 받았지만 비즈니스 모델로 이어가진 못했다. “서비스의 특성상 매출을 많이 올리지 못했다. 왓챠로 성공하면 VOD 서비스에 도전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돈이 많이 들 것이라고 생각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투자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투자를 할 테니 시작해보라’는 조언을 많이 한 것. 박 대표는 이에 힘입어 지난해 말부터 정액제 VOD(SVOD) 서비스 준비를 시작했고, 지난 1월 ‘왓챠플레이(Watcha Play)’를 론칭했다. 글로벌 기업 넷플릭스가 장악한 시장에 겁 없이 뛰어든 것이다.

박 대표는 왓챠플레이 출시 6개월 만에 다양한 성과를 보여줘 업계를 놀라게 했다. 왓챠플레이가 넷플릭스를 뛰어넘은 게 있다. 한국 콘텐트를 넷플릭스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7월 초 왓챠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영화와 드라마는 1만 2000여 편이나 된다. 이 중 한국 콘텐트가 50%를 차지한다. 박 대표는 “거대 영화 제작사와 계약을 앞두고 있는데, 7월 말이면 2만 여 편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월 1만2000원의 사용료를 받고 있지만, 왓챠플레이는 커피 한잔 가격인 월 4900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

박 대표는 2011년 9월 프로그램스를 창업했다. 창업 후 6년이 채 안 된 스타트업이 짧은 시간에 1만200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 콘텐트를 서비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라도 ‘설마’라고 놀라게 된다. 글로벌 영화 제작사나 방송사와 계약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업계에서 왓챠가 유명했기 때문에 글로벌 배급사와 계약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프로그램스와 계약을 맺은 부가판권(VOD) 배급사는 디즈니, 소니, CJ, 쇼박스, BBC, EBS 같은 곳이다. 워너브러더스, 유니버설 픽처스, 21세기 폭스와도 계약을 앞두고 있다.

왓챠가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한국의 스타트업이 판권을 따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의 노하우는 뭘까. 박 대표는 “왓챠플레이 서비스를 론칭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 뛰어다녔는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전화로는 될 것처럼 말해서 직접 찾아가면 ‘지금은 힘들다 나중에 하자’라는 말을 들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황당한 일도 많이 겪었지만, 그는 몇 번이고 담당자를 찾아가서 설득했다.

박 대표가 왓챠플레이를 론칭할 수 있던 것은 왓챠 덕분이다. 글로벌 배급사의 한국 지사 관계자들은 대부분 왓챠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 박 대표는 글로벌 배급사의 한국지사 관계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계약을 위해 담당자들을 만나는 것이 수월했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면서 하나 둘씩 계약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신작을 고집하지 않았다는 것도 계약을 따낸 이유다. 왓챠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최신작은 없다. 개봉한 지 2~3개월이 지난 영화와 드라마가 대부분이다. “배급사 입장에서도 2~3개월 지난 영화나 드라마를 공급하는 데 부담이 없는 것 같다. 신작을 고집하면 배급사를 설득하기 어렵다.”

2만여 개의 콘텐트 보유

신작이 없으면 매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영화나 드라마를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모든 신작을 볼 수는 없다. 시간이 없거나 기회가 없어서 놓쳤던 영화나 드라마를 왓챠플레이를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을 더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한국 드라마가 별로 없다는 것. 공중파 및 종편과 판권 계약을 못했기 때문이다. “방송사와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박 대표는 자신했다. 올해 목표는 왓챠플레이 가입자를 20만 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박 대표는 “7월 현재 왓챠플레이 가입자가 넷플릭스 가입자 수를 넘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올해 말까지 20만 명을 넘어서면 본 궤도에 오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서울과학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카이스트를 택했던 박 대표. 대학 다닐 때 방송국 활동, 전국 경영전략학회 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공부 대신 다양한 활동을 한 것은 창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대학에 다닐 때 개인화와 추천화를 해주는 서비스를 내놓으면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창업 이유를 밝혔다.

1345호 (201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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