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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의 ‘노벨경제학자의 은밀한 향기’ (21)] 누군가 당신을 낚을 준비를 하고 있다 

조지 애커로프의 레몬시장 이론... 시장 실패 부르는 정보의 비대칭성 

조원경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

▎자유시장경제 곳곳에는 피싱의 덫이 깔려있다. 정보가 부족한 ‘정보 바보’와 심리적 자극에 쉽게 흔들리는 ‘심리 바보’가 걸려드는 덫이다.
인터넷 중고물품 사기로 한 달 남짓 130여 명으로부터 3000만원가량을 챙긴 고등학생이 경찰에 구속됐다. 정보가 시장에 완전하게 반영된다는 게 여러 경제이론의 가정인데, 실제 시장에는 이처럼 기만, 속임수(피싱, Phishing)가 많다. 피싱은 개인 정보(private data)와 낚시(fishing)의 조합어로 누군가를 교묘히 속여 개인정보를 빼가는 속임수법이다. 피싱을 당하는 피해자는 새로운 ‘바보’로 불린다. 정보의 부족에서 오는 ‘정보 바보’와 심리적 자극에 쉽게 동요하는 ‘심리 바보’가 대표적이다. 피싱은 금융사기 수법에 그치지 않고 경제·정치를 비롯해 인간 활동의 전 분야에서 사기와 기만, 속임수를 통해 자기 이윤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 됐다.

정보가 시장에 완전하게 반영된다는 경제학 이론은 비현실적인 게 태반이다. 정보가 넘치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서로 간에 지니고 있는 정보의 차이가 여전히 경제학의 핵심 문제 중 하나다. 정보로 먹고 사는 구글과 야후의 엄청난 수입을 보라. 두 회사의 시가총액이 미국 전체 항공사의 시가총액의 몇 배가 되는지를 보면 정보가 돈이 되는 것이고, 시장은 정보를 완전히 반영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재래시장을 돌아보면 사람 냄새가 난다. 오가는 정에 콩나물 파는 아주머니는 단골에게 콩나물을 한 움큼 더 주기도 하고, 인정 많은 단골 구매자는 고사리 파는 할머니에게 손녀에게 사탕 한 봉지 사주라고 1000원을 덤으로 쥐어 주기도 한다. 시골 장터는 기본적으로 상품을 파는 곳이지만 ‘정’을 나누는 따뜻한 곳이기도 하다. 도시에서도 단골가게는 아무래도 믿음이 간다. 그러나 장사라는 게 이윤을 남기는 것이기에 현실 시장은 ‘단골의 정’도 ‘서로 간의 신뢰’도 금이 갈 때가 많다. 우리네 일상에서 쪼들리는 살림살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고가게를 간다고 하자. 거래에 참여하는 구매자와 판매자는 상대방에 대한 지식이 불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시 이거 내가 속는 것 아냐’ ‘바가지 쓴 것 아닐까?’ ‘싼 게 비지떡이었네’…. 어디 나만 당하는 기분이랴?

정보 바보, 심리 바보

시장 참여자 사이에는 가치 있는 정보를 아는 정도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이 현상을 경제학에서 ‘정보의 비대칭(asymmetry of information)’이라고 하며 시장 실패의 한 원인이 된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남자 조지 애커로프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연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의 노벨상 수상 논문은 ‘레몬시장(The Market for Lemons)’이었다. 레몬 마켓에서 레몬은 먹는 레몬이 아닌 ‘불량 중고차’를 의미한다. 겉으로는 달콤할 것 같아 그럴 듯해 보이지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는 너무 맛이 셔 먹지 못하는 레몬을 불량 중고차에 비유한 것이다. 중고시장에는 형편없는 중고차인 ‘레몬’도 있으나 성능이 쓸 만한 단 맛 나는 ‘복숭아’ 중고차도 있다. 중고차 판매자는 자신이 팔려는 차가 레몬인지 복숭아인지 잘 알고 있다. 반대로 중고차를 사는 사람은 그것을 잘 모른다. 중고차를 파는 사람이 자신의 차가 ‘복숭아 중고차’라면 어떤 조치를 취할까? 구매자가 제값을 쳐주지 않는다면 급하지 않아 시장에 매물로 내놓지 않게 된다. 레몬차는 값을 적절히 쳐주면 수익이 나는 구조이므로 중고차시장에 매물로 재빨리 내놓게 된다. 그 결과 중고차시장은 복숭아는 거의 없고, 레몬으로 가득 찬 레몬가게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차 상태가 깔끔한 무사고 차량을 1600만원에 내놓았는데 구매자는 1200만원에 차를 팔 것을 요구하며 협상하려 한다. 판매자는 짜증이 나서 자신을 신뢰하는 지인에게 제값을 주고 팔게 된다. 이와 달리 같은 종류와 연식의 차량을 중고차시장에 내놓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차는 사고가 났고 상태가 좋지 않아 실제 가치는 120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고객은 이 차를 충분히 알지 못하기에 1200만원을 주고 사게 된다. 시장에 이런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레몬만 실제 가격보다 높게 팔리고 좋은 중고차들은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되어 처음부터 복숭아 중고차는 시장에 나오지 않게 된다. 복숭아를 원하는 중고차 구입자들은 질이 떨어지는 레몬가게에 등을 돌리기 시작해, 중고차시장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구매자는 모든 판매자를 ‘사기꾼’으로 생각하고, 판매자는 모든 구매자를 ‘진상’으로 인식해 시장 전반의 질이 떨어진다. 팔려는 사람은 자신의 차의 가격이 평균 이상인지 이하인지 알고 있으나, 사려는 사람은 이것을 모르므로 항상 평균 가격만을 선택하게 되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중고차시장에는 가격이 평균 이상 되는 차는 없어지게 되고, 평균 이하인 차만 남아 비효율적으로 된다는 게 애커로프의 이론이다. 조지 애커로프에게서 복숭아차의 향기가 레몬차의 향기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정보 비대칭으로 소비자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는 그의 ‘역(逆)선택 이론(adverse selection)’은 소비자 주권을 희생시키는 시장 실패의 단면을 보여준다.

판매자는 사기꾼, 구매자는 진상?


애커로프의 레몬시장 이론은 대출시장·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에도 적용된다. 금융시장에도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대출자는 돈을 빌리지 않기에 궁극적으로는 신용도가 낮은 대출자, 레몬만 남게 된다. 다 그런 것은 아니나 차입이 필요 없는 회사는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수요자의 선택이 시장의 원리와는 반대로 나타나는 현상이 금융시장에 종종 목격된다. 역선택을 금융시장에서 주목하는 이유는 역선택이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하는 대표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회장이 회사가 망할 것을 알면서도 높은 이자의 정크본드를 발행했다고 하자. 그 회장은 발행할 때부터 채무를 갚을 생각이 아예 없었다. 정크 본드를 산 사람들은 회사의 사정을 거의 몰랐다. 금융시장의 실패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정크 본드를 산 사람들의 속은 숯이 된다.

당신이 사서는 안 될 것을 사게 되어 구매자로서 기분이 나쁘게 되는 것처럼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암보험을 판매하는 경우에도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사람이 보험에 더 많이 가입하고자 한다면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손해를 볼 수도 있고 평균적인 암 보험료를 올리고 싶은 유인이 생긴다. 그렇다고 보험료를 올리면 진짜로 암에 걸릴 가능성이 큰 사람만 가입한다. 이런 잘못된 선택이 일반화되면 좋은 상품을 제값 받고 팔기 위해서 다른 묘책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구매자에게 건강 보증서 따위를 첨부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거래를 위해 부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정보의 비대칭 문제가 발생하면 수요자와 공급자만 있던 경제학 세계에서 보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개인의 역할이 등장한다. 이 역시 거래비용을 늘리는 요인이다.

민간의 중개 기능을 좀 더 세밀히 살펴보자. 어느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한다면 일반 투자자들은 기업 자체보다는 기업의 상장 업무를 하는 주관사를 믿고 투자를 결정한다. 주관사가 없다면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상장 자체가 어려워진다. 정보를 판매하게 하거나 증권시장 공시제도 같은 정부 규제를 할 수도 있다. 금융중개기관이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좋은 투자처를 소개해 줄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한 대표적인 수단으로 명성을 쌓아온 민간회사가 신용평가기관이다. 그런데 신용평가기관이 다수의 서민 편에 서 있지 않고 돈벌이를 위해 소수의 대형 은행과 대기업 편에 서서 그 피해가 서민에게 갔다면 용서가 되겠는가? 2008년 금융위기가 그런 예다. 역선택을 방지할 신용평가기관이 오히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저질러 레몬 맛은 시다 못해 쓰기까지 했다. 신용평가기관은 수입을 올리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기까지 했다. 금융위기를 몰고 온 주범 중 하나로 신용평가기관이 지적되는 가운데 무디스의 한 직원이 주택담보증권 상품에 양심에 어긋나는 미심쩍은 등급을 매겼다. 서민은 이를 액면 그대로 믿었다. 이들 신용평가기관의 말 한마디가 한 국가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세상에서 이들이 죄 없는 서민의 편에 서지 않고 책임 있는 기업 편에 자주 선다면 큰일이다. 신용평가기관의 내부 평가과정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평가에 무한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나아가 그들이 월가의 ‘큰 손’들과 얽히고설킨 관계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거래비용을 늘리는 중개인

정보 비대칭 문제로 역선택과 함께 자주 논의되는 것이 위의 도덕적 해이 문제다. 역선택이 거래 이전에 발생하는 문제라면 도덕적 해이는 거래 이후에 발생하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주식회사의 경우 경영자(대리인)는 주주(주인)를 위해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기보다 자신의 이득을 더 챙기려 드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의 엔론 사태를 보면 엔론 경영자들이 사익을 위해서 회사 자금과 이윤을 유용했다. 주주(주인)들이 기업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할 경우 경영진(대리인)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있다. 화재보험을 든 후에 화재 예방에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도 도덕적 해이의 문제이다. 보험을 든 후에는 주의의무를 다할 인센티브가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다.

중고차도 전문 딜러를 통해서 사면 그나마 낫다. 그러나 가격이 일반인 간의 거래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상당히 비싸니 서민들은 중고 가게에서의 구입을 주저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온라인 사이트의 홍보 문구를 보고 직거래를 이용한다. 별도의 수수료가 없고 당사자 간 가격 흥정도 가능하다. 문제는 직거래는 약속된 물건을 받지 못하고 돈만 날릴 사기 위험도 높다는 것이다. 통신판매업자의 신고 의무도, 정보제공 의무도, 구매안전 서비스 제공 의무도 없어 거래 안전을 제도적으로 담보하기도 어렵다. 최근 수년 간 온라인 직거래 사기 건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 중고 상품 직거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직거래 시장 자체가 위축될 우려도 농후하다. 하지만 온라인 중고 상품 직거래는 개인의 자유 영역이기에 정부가 사전적·제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공인된 딜러는 일정 기간 수리를 보증하기도 하고 프랜차이즈 형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일반인 간 직거래는 가격이 싼 것 이외에는 이런 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들다.

정부와 구성원이 함께 노력해야

인터넷이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혹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점차적으로 계속 좁혀지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정보가 세상에 알려지고, 공유돼 많은 사람이 예전에 소수가 지배했던 정보를 쉽게 알게 되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겠다. 하지만 인터넷에 수많은 비양심적 딜러와 허위 매물로 인해 불신이 팽배하다면 여과(필터링)는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중고시장은 더욱 그러하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소비자의 이익에 반하는 정보를 이용하게 하면 큰 일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소비자에게 없는 정보를 가지고서 소비자들의 무지를 이용한다면 또 어떻게 되나. 소비자는 전문적인 정보에 감히 도전을 하기 어렵다. 의사가 돈벌이를 위해서 수술을 강력히 추천한다고 해도 고객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정보 비대칭성 문제를 보여주는 미국 의학논문 결과를 예로 들자. 출산율이 떨어지는 지역에 소재하는 산부인과의 제왕절개수술 비율이 출산율이 높은 지역보다 더 많다는 보고가 있다. 병원이 어려울 경우 의사들은 더 비싼 수술 절차를 밟으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뒷받침하는 것은 아닐까? 이 보고서가 실제일까 두렵게 느껴진다.

다시 중고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중고차 시장 규모는 연 5조~6조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매년 1만 건 이상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피해는 주로 중고차 성능과 상태가 매매업자가 고지한 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 결국 기업가의 양심과 정부의 역할이 정보의 비대칭 해소를 위해 중요하다. 중고차 사이트를 운영하려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안전한 거래를 준수하는 안심 딜러에게만 활동 자격을 부여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정부는 매매사원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매매사원 자격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중고 자동차시장 선진화 방안’과 ‘중고 자동차 온라인 경매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미국의 켈리 블루 북(Kelly Blue Book) 같은 가격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자동차 분야 전문기관에 민원센터를 세워 중고차 구매 시에 소비자 피해 상담과 지원을 추진한다. 중고차시장의 불법 행위 방지를 위해 소비자 민원이 가장 많은 성능 점검의 경우 거짓 점검을 한 것으로 적발되면 해당 성능검사장의 영업을 즉시 취소하도록 한다. 매매업자의 매물이 허위나 미끼매물로 2회 적발될 경우 매매업 등록을 취소한다. 온라인 경매 이용자 보호를 위해 온라인 경매 시에도 ‘주행거리’ 및 ‘자동차이력관리정보’를 표시하도록 하고 거래 기록을 1년 간 보관하도록 했다. 이런 조치에도 완벽하게 정보의 대칭을 이루는 현실을 만들기는 어렵다. 중고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과 신뢰 사회를 이루기 위한 구성원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인터넷 서핑 중 내 머릿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광고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 당신을 낚을 준비를 하고 있다면 당신은 방어할 경계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조지 애커로프(George Akerlof, 1940년 6월~): UC버클리대 경제학 교수로 2001년 마이클 스펜스, 조셉 스티글리츠와 함께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 경제학자다. 1970년 발표된 ‘레몬시장 이론(Lemon Market Theory)’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시장경제에 미치는 심리적 오류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돼 효용이 극대화되는 이상적인 시장이라는 기존 경제학의 도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시장이 왜곡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레몬시장 이론은 정보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의 초석을 다지는 데도 일조했다. 조지 애커로프는 런던 이코노믹 스쿨 경제학 교수, 브루킹스 연구소 수석연구원을 역임했고, 클린턴 행정부 시절 경제자문 위원으로 활동했다.

조원경 -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 물가, 복지, 소비자, 국제금융, 통상, 대외경제 분야에서 일했다. 미주개발은행 이사실에서 한국 대표로 근무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장급)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이 있다.

1345호 (201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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