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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식형 펀드 찬밥 신세] 코스피 지수 2000 넘으면 환매 줄 이어 

박스권 장세 이어지고 수익률도 낮아 … 채권형 펀드·MMF 등으로 자금 몰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7월 26일 코스피 지수는 2027.34로 거래를 마쳤다. 올 들어 가장 높은 수치였다.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 우려가 제기되고, 국제 유가마저 급락하며 지난 2월 12일 연중 최저치인 1817.97까지 내려갔던 것에서 완연히 회복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악재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이겨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국내 증시의 시가 총액은 1조2595억 달러(약 1450조원)로 지난해 말보다 2.3% 증가했다. 순위도 당시보다 한 단계 오른 세계 14위다. 이와 달리 영국 런던과 독일 거래소는 브렉시트 여파로 시가총액이 약 10%씩 감소했다. 이쯤 되면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1.25%인 상황에서 주식에 대한 관심이 커질 법도 하다.

지수 2000선 위에선 매도, 1900선 근처에서 매수

하지만 적어도 펀드 시장에선 이런 전망이 빗나가고 있다. 투자자들은 위험자산인 주식형 펀드를 팔아 안전자산으로 돈을 옮기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월 26일 기준 국내 주식형 펀드(공모) 설정액은 총 50조3268억원이다. 22일엔 50조 2936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8월 26일(50조2783억원)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지난해 8월은 중국 증시의 주가 폭락으로 국내 증시도 어려움을 겪던 시기다.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채권형 펀드와 종합자산 관리계좌(CMA)·머니마켓펀드(MMF) 등으로 흘러들고 있다. 펀드 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4053억원의 자금이 순유출 됐다. 이와 달리 채권형 펀드로는 4조7230억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7월 들어선 하루 평균 300억~400억원의 자금이 채권형 펀드로 유입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가 집계한 CMA 잔액은 6월 말 43조9789억원이었던 것이 7월 26일 52조172억원으로 늘어났다. 만기 1년 이내의 기업어음(CP)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 등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MMF의 설정액도 7월 26일 123조7407억원이다. 7월 19일엔 사상 최대치인 128조1358억원으로 늘었다.

투자자들은 왜 주식형 펀드를 꺼리고 있는 걸까. 전문가들이 꼽은 이유는 두 가지다. 2010년대부터 6~7년 간 코스피 지수가 박스권 장세에 머물면서 생긴 학습효과가 하나고, 좀처럼 오르지 않는 주식형 펀드 수익률이 두 번째다. 김정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박스권 증시가 이어지면서 지수 2000선 위에선 매도, 1900선 근처에서 매수라는 패턴이 투자의 정석처럼 자리잡았다”며 “외국인들이 펀드 매도세를 압도할 만큼의 자금을 투자하지 않는 한 박스권을 벗어나는 게 쉽지 않은 구조”라고 말했다. 이는 대신증권이 집계한 2011년 이후 코스피 지수대 별 주식형 펀드 환매 현황을 봐도 알 수 있다. 투자자들은 1950선 아래에선 자금을 넣지만, 그 이상 지수가 오르면 환매에 나서기 시작해 2000~2050선 사이에서는 141조8760억 원을 빼낸 것으로 나타났다. 2050~2100선에서는 순유출 규모가 14조4500억원으로 대폭 줄어들면서 증시 향방을 지켜보는 ‘눈치보기’ 장세가 이어졌다. 이후 지수가 2100선 이상으로 올라서면 33조9640억원 이상의 순유출을 보이며 적극적인 환매에 나섰다.

수익률에 대한 불만도 크다.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평균 0.22%다. 2.05%인 국내 채권형 펀드의 수익률의 10분의 1이다. 최근 1년과 2년으로 기간을 늘려도 주식형 펀드는 각각 4.09%, 2.89%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김학균 미래에셋대우 투자전략부장은 “개인의 직접 투자 자금이 증시에서 이탈하는 것 같지는 않으나 간접 투자에 대한 불신으로 주식형 펀드 환매는 계속되고 있다”며 “펀드에 장기적으로 투자해 성공을 한 경험이 적은 것이 주식형 펀드 이탈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경향을 보면 주식형 펀드를 환매할 때는 주가 상승폭이 컸던 업종이 주로 처분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7월 초부터 지난 22일까지 자산운용사 등 투신권이 주로 순매도한 업종은 제조업(8067억4600만원)·전기전자(2874억7500만원)·화학(1729억1600만원) 업종 순이었다. 섬유의복과 의료정밀, 종이·목재업종은 하위권에 자리했다. 또 중소형주보다 대형주 순매도가 두드러졌다. 같은 기간 투신권은 대형주에서 1조555억7000만원, 중형주와 소형주에서 각각 1412억6700만원, 237억5200만원을 순매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외국인의 힘이었다. 외국인은 9월 27일까지 15거래일 연속 순매수에 나서고 있다. 2011년 이후로도 외국인은 국내 투자자와는 달리 2000선 이상에서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이 기간 2000~2050선에서 외국인은 22조원가량을 순매수하며 전체 지수구간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계속된 펀드 환매가 코스피 시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채권형 펀드와 MMF 등 안전자산에 자금이 몰리는 건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 전망을 밝게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라며 “현 시점에서는 투자자가 코스피 시장이 상승할 거라 전망하고 국내 주식형 펀드에 자금을 넣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코스피 지수를 떠받쳐온 외국인의 순매수 행진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외국인의 적극적인 순매수는 코스피 상승의 동력이 되고 있다”며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과 미 대통령 선거 이슈 등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일 경우 외국인이 적극적으로 주식을 사들일 만한 환경이 조성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박스권 상단 돌파하면 돈 몰릴까?

코스피가 박스권인 1800~2100선만 돌파한다면 펀드 환매가 줄어들고 신규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서재영 한국투자신탁운용 펀드매니저는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반도체와 전자 등 IT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IT업종이 수년 간 박스권에 머물러 있거나 부진했다”며 “따라서 다른 업종 주가가 올라도 코스피 전체가 박스권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IT업체들이 깜짝 실적을 발표하고 있고 이익 전망치가 오르고 있어 코스피의 박스권 돌파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며 “2100선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펀드 환매가 줄어들고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고 봤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도 “국내 주요 기업의 실적 성장이 확인된다면 투자자들도 결국 주식형 펀드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1346호 (201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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