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권력 지배구조부터 바꿔라 

 

문형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미국 대통령 선거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 트럼프 열풍이 언제까지 어떻게 이어져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 내느냐다. 공화당에서 비주류였던 트럼프의 놀라운 선전은 나날이 커지고 있는 불평등과 기득권층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분노가 만든 현상이라는 인식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보통 사람의 분노를 자신에 대한 지지로 이끌어 오는 트럼프의 방식과 행동에 많은 사람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그의 돌풍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크다. 한국도 나날이 벌어지고 있는 경제·사회적 불평등, 지도층의 윤리적 무감각과 헛된 우월의식 등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라서다.

한 고위 공직자의 망언과 왜곡된 사회인식, 성공의 표상인 벤처기업가와 고위 검사의 은밀한 거래, 사익을 위한 사회 지도층의 부정한 청탁 등 최근 우리를 분노하게 만든 사회 현상은 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걸까.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층이 저지른 5조원 대의 분식회계 의혹은 지금까지 알려진 게 사실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심한 불법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어처구니 없는 분식회계가 가능했던 배경을 고위 공직자, 경영자나 회계사 개인의 일탈행위로 국한시킬 수 없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지배구조에서도 원인을 찾아야 한다. 상호견제나 독립성이 제도적으로는 가능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정치권력의 지배구조, 독립적인 이사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기업의 이사회, 그리고 정치권력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공기업의 지배구조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이 절실하다.

얼마 전 해외 유명 일간지에 흥미로운 전면 광고가 실렸다. 광고에는 워런 버핏을 비롯한 유수의 대기업 최고경영자 13명이 합심해 상장기업이 자유경제 체제를 건전하게 이끌고 나가기 위한 선언이 담겼다. 재산의 반 이상을 기부하자는 기빙 플레지 운동(2010년 빌 게이츠 주도)에 이어 기업과 기업인의 신뢰 회복을 위한 2탄인 셈이다.

이번 선언의 핵심은 좋은 기업지배구조 만들기다. 이번 선언에선 상식적인 지배구조의 특성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 선언에 서명한 기업인 그리고 기업이 자신들이 제안한 바대로 지배구조를 얼마나 분명하게 운영해 나갈지는 더 지켜 봐야 한다. 또 그들이 인정하고 있듯이 선언 속에 제시된 지배구조의 모습이 완전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상식적인 지배구조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기업·정부·정치권 등에 대한 사회의 신뢰가 추락할 때마다 우리는 무수하게 많은 반성과 사과의 목소리를 들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반성은 대체로 잘못한 개인을 찾아내서 처벌하고 구조적인 문제는 고치는 시늉만하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저성장이 뉴 노멀로 굳어지고 있고 조선 업계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에 대한 신뢰는 다시 추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 특히 권력기관을 중심으로 기업과의 부적절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무소불위의 정치권력과 자본으로 무장한 기업권력이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힘을 쓰지 못하도록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 워런 버핏 등의 기업가들이 상식적인 지배구조의 모습을 제안하고 지속적으로 함께 고민하자는 선언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1347호 (2016.08.1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