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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기자가 만난 ‘판교밸리언’(7)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 16년 적자에도 연구개발에 몰두 

해마다 우수 연구원에게 스톡옵션 주며 독려... “남 따라 해선 ‘넘버 원’ 될 수 없어”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7월 22일경기도 판교 본사 연구실에서 조중명 대표가 골관절염 치료제 아셀렉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약은 지난해 식약처 신약 승인을 받아 현재 국내 대학병원에 판매되고 있다.
강원도 태백에서 개구리를 잡으며 곤충학자를 꿈꿨다. 남들이 다 가고 싶어하는 서울대 의대·약대를 마다하고 비인기 학과였던 동물학과(현 분자생물학과)에 진학했다. 대기업 임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벤처기업을 차렸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1년에 10여 차례 해외 학회에 참석하고 네이처·사이언스·셀 같은 과학저널을 끼고 사는 조중명(68)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 얘기다. 조 대표는 벤처 붐이 일던 2000년 단백질 구조 분석을 기반으로 한 신약 개발 회사인 크리스탈지노믹스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2003년 비아그라의 작용 원리를 세계 최초로 밝혔다. 관련 내용이 네이처 표지에 실리며 기술력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에는 개발 신약인 골관절염 치료제 아셀렉스가 한국 바이오 벤처 최초로 식약처로부터 국산 신약 승인을 받았다.

이 약은 동아ST와 판권 계약을 해 국내 대학병원에서 판매되고 있다. 터키를 포함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19개국과도 수출 계약을 했다. 이 외에도 수퍼박테리아 항생제, 췌장암 항암제 등 3개 신약이 임상 2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 성과는 하나 둘 쌓였지만 사업 실적은 저조했다. 지난해 매출은 97억원, 영업손실은 38억원이었다. 16년 내리 적자다. 하지만 지난 6월 미국 바이오 기업 앱토즈바이오사이언스에 3억300만 달러(약 3400억원) 규모의 신약 후보물질 기술을 수출하기로 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조 대표는 “창업 이래 첫 흑자를 예상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계약의 의미는.

“표적 급성골수성백혈병 신약 후보물질 ‘CG026806’은 급성 백혈병 발병의 주요 인자를 억제하는 치료제로 실험을 통해 약효를 확인했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앱토즈바이오사이언스는 혈액암 전문 회사로 개발하던 신약 임상 2상 결과가 좋지 않아 새로운 연구를 필요로 했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연구 성과의 사업화가 절실했다. 서로의 필요가 잘 맞은 셈이다. 계약금 300만 달러를 먼저 받고 향후 임상시험에 성공하면 나머지 금액을 기술 수출료로 받는다. 상업화되면 매출에 따른 로열티도 받게 된다. 협상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기존 우리 쪽 데이터를 믿지 못하겠다고 해 외국 회사에 맡겨 실험을 모두 다시 진행했다.”

의미 있는 실적을 내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돈과 시간의 문제다. 신약 개발에서 독성실험·동물실험을 하는 데 1년, 인간 임상에 1년, 환자를 대상으로 약효 평가를 하는 데 1년 반이 걸린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드는 돈이 1200만~2200만 달러(약 150억~250억원)다. 2006년에 유럽에서 248명 환자에게 아셀렉스를 투여하는 대규모 실험을 했다. 1000만 달러가 들었는데 시장 환경이 좋지 않아 수출에 실패한 일도 있었다.”

회사 내 최연소 임원으로 LG화학 바이오텍(현 LG생명과학) 연구 소장을 지냈다. 왜 그만두고 창업을 했나.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바이오 투자에 무척 적극적이었다. 1년에 연구개발비만 450억원을 썼다. 회사를 그만둘 당시 연구원이 250명이었다. 한국에서 최대 규모였을 거다. 하지만 아무래도 권한이 한정돼 있었다. 1999년부터 벤처 붐이 일지 않았나. 회사를 창업하면 투자하겠다는 곳이 많았다. 결정적으로 지금 포항공대에 있는 방사광가속기를 보고 신약 개발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2000억원 대의 고가 장비로 빛을 이용해 물질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쓰는 기계다. 2003년 비아그라의 작용 원리를 밝히는 데도 주요 역할을 했다.”

네이처에 논문 게재 등 출발이 좋았던 것 같다. 직접 창업을 해보니 예상했던 것과 어떻게 달랐나.

“처음 회사를 설립한 때가 태어나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창업 전에 LG에서 100억원, CJ에서 50억원, SK에서 50억원을 투자받기로 했었다. 우선 전문 투자사에서 10억원을 받은 후 직원 16명을 뽑고 수억 원 대 기계를 들였는데 갑자기 LG가 투자를 못하겠다고 했다. 덩달아 다른 투자도 무산됐다. 2~3개월 동안 혼자 끙끙대며 투자를 받으려고 이곳 저곳을 뛰어다녔다. 어렵게 SK와 벤처캐피털에서 50억원을 유치할 수 있었다. 그 돈이 아니었다면 회사를 접었을 것이다. 워낙 자금으로 마음고생을 한 후라 50억원은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정부 과제로 운영자금을 마련했다. 인력도 부족했다. 당시 연구소에서 구조 분석가 10명 중 8명이 나를 따라 나왔는데 곧 다른 대기업이나 대학으로 이직했다. 아찔한 마음에 창업 후 술·골프를 모두 끊었다.”

그래도 2006년 기술특례기업 1호로 상장했다. 자금난·인력난 속에서 어떻게 기술력을 유지해왔나.

“현재 직원 64명 가운데 50명이 연구개발 인력이다. 회사와 함께 성장하자는 뜻으로 16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우수 인력들에게 스톡옵션을 줬다. 또 매년 인건비를 제외한 순수 연구개발비로만 60~70억원을 투자한다.”

원래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가.

“다른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은 싫다. 7남매 막내로 큰 어려움 없이 자란 덕에 겁이 없어 그런 것 같다. 많은 바이오 분야 가운데 신약 개발에 뛰어든 것 역시 부가가치가 가장 크고 도전적이기 때문이다. LG화학 연구소장 시절인 1997~1999년에 한국 최초로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미국 화이자 등에 약 1400억원 규모의 신약 기술 수출을 한 경험이 있다. 충분한 투자가 뒤따르면 넘버 원이 될 수 있다. 따라 해서는 진정한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 미국 바이오기업 길리아드 역시 20년 넘게 적자를 기록하다 C형 간염치료제 개발에 성공해 수백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지 않았나.”

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해서 바이오 벤처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최소 2~3년 운영할 자금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 필요한 곳이 생기면 큰 규모로 투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주해서는 안 된다. 오늘 밤새 야근했다고 내일 오전에 근무를 안 하면 무슨 소용인가. 학생 때 2박3일 동안 밤잠을 설치며 공부하던 것처럼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나는 지금도 과학 잡지를 보는 것이 제일 즐겁다. 회사가 안정권에 들어서면 연구에만 몰두하고 싶다.”

지난 6월 2대 주주였던 한미약품이 지분을 전량(14.34%) 매도하면서 우호지분이 크게 줄었는데.

“한미약품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경영진 지분이 12%대라 불안한 상황이다. 25% 정도는 돼야 안심할 수 있다. 현재 파트너를 찾고 있다. 하지만 기술 중심의 회사이기 때문에 지분에 크게 휘둘리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조중명: 대표는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 서울로 ‘유학’왔다.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다 미국 휴스턴대 생화학과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베일러 의과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공부했다. 1984년 미국 현지 럭키 바이오텍연구소에서 일하다 1993년 LG화학 바이오텍연구소장을 맡아 한국 최초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신약 팩티브 개발 등을 주도하는 등 바이오 연구를 총괄했다. 2000년 회사를 그만두고 크리스탈지노믹스를 창업했다.

1347호 (201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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