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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의 스타트업 사업 가로채기 논란] 최태원 회장은 청년창업 밀어준다는데… 

SKT 티-밸리, 고푸다와 접촉 후 ... 유사한 푸드트럭 중개 서비스 전개 

박상주 기자 sangjoo@joongang.co.kr

▎이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 / 사진:중앙포토
SK텔레콤이 청년창업 대표주자로 지목된 대학생 스타트업인 고푸다의 영업정보를 무단 활용해 서비스로 만들어 물의를 빚고 있다. 평소 청년창업을 적극 지원하겠다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지가 무색한 일이다. 이런 사실은 고푸다 측에서 “SK가 영업정보를 무단 도용했다”고 주장하면서 알려졌다.

SK텔레콤의 서비스 사업부서인 티-밸리(T-valley)는 최근까지 푸드트럭 중개 플랫폼 사업을 추진했다. 고푸다 측은 SK텔레콤이 고푸다에 접근해 서비스 관련 각종 정보를 확보해 자체 중개 서비스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7월 출범한 고푸다는 푸드트럭 간 실시간 위치, 장사가 잘되는 장소, 유동인구에 따른 추천 메뉴 등 정보를 활용해 푸드트럭 사업을 하려는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중개 플랫폼을 개발해 사업을 전개해 왔다. 푸드트럭은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의 아이콘으로 손꼽은 사업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 26일 고푸다를 직접 찾아 “푸드트럭이 청년창업의 한 분야가 돼서 K-푸드를 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안착해야 한다”면서 “푸드트럭 시장을 키우는 데 이 친구(황윤식 고푸다 대표)의 아이디어가 좋으니 중소기업청장이 잘 도와주라”고 말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은 고푸다가 올해 4월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의 관심을 받은 직후인 5월 고푸다를 찾았다. SK텔레콤은 푸드트럭 사업을 지원하겠다며 한양대 글로벌사업가센터, 한양대 생활협동조합 그리고 고푸다 등과 연이어 만났다. 이후 티-밸리 담당자는 사업 지원 등을 이유로 황윤식(27) 대표와 몇 차례 미팅을 가졌다. 황 대표는 이 과정에서 서비스 운영 방법과 노하우, 푸드트럭당 평균 거래금액, 위치별 유동인구, 위치별 수익, 트럭별 평균 임금 정보를 SK텔레콤에 설명했다. 그 후 SK쪽 담당자는 지난 7월 “회사 상부에서 방침을 바꿔 서비스를 하게 돼 미안하게 됐다”며 “양쪽의 서비스가 너무 유사해 협업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지금 상황에서 당장의 협업은 힘들 것 같다”며 협업 철회를 알렸다.

대통령이 직접 손꼽은 청년창업 아이템

황 대표 주장에 대해 SK텔레콤은 강하게 반박했다. 티-밸리 담당자는 “푸드트럭 중개 서비스를 검토하긴 했지만 사업 크기가 너무 작고 우리 사업 영역이 아니어서 전부터 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다”고 밝혔다. 또 “푸드트럭 중개나 케이터링 서비스와 같은 플랫폼 사업은 특별한 아이디어가 아니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며 “푸드트럭 업주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선의에서 사업을 검토해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담당자는 “몇 주 전(7월 22일)까지만 해도 사업을 추진할지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최태원 회장 “2021년까지 125억원 지원”

그러나 확인 결과 SK텔레콤의 설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이후부터 최근까지 티-밸리는 푸드트럭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SK텔레콤이 기자에게 해명한 8월 23일에도 티-밸리 한 담당자가 푸드트럭 업주를 모집하는 공지문을 한 SNS를 통해 전달한 사실이 확인됐다. 영업정보를 도용했다는 고푸다 측 주장에 대해 SK텔레콤은 “시장조사 차원에서 만난 것일 뿐”이라며 “고푸다는 폭넓게 시장조사를 진행하면서 만난 100명이 넘는 푸드트럭 업주, 여러 대학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 대표는 “우리가 어렵사리 뚫은 영업 상대방을 몰래 찾아가 거래를 트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SK텔레콤 측은 “SK와이번스나 그룹의 인력개발원 등 푸드트럭 업주를 위해 그룹 자회사에 자리를 마련하는 데 국한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고푸다가 사례로 제시한 SK 외 대기업의 축구 구단을 티-밸리가 찾아가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SK는 그룹차원에서 청년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최태원 SK 그룹 회장은 특히 카이스트의 청년창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 회장은 7월 7일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청년 기업가들을 더 많이 육성시켜 나가겠다”며 “2021년까지 5년 동안 125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금은 카이스트 청년 창업지주 등에 투자돼 기술 기반 청년창업에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지난해엔 ‘SK 청년 비상’ 프로젝트를 개설해 청년 기업가 양성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선발 대학에 2년 동안 6억원가량을 지원해 창업 인프라 구축과 창업교육 커리큘럼 개발과 운영, 창업지원금을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최 회장은 사회적기업 활성화에도 주력해 지난해까지 사재 104억원을 출연해 창업펀드를 만들었다. 당시 최 회장은 청년사업가를 꿈꾸는 학생들과 가진 토론회에서 “어렵고 힘들어야 혁신이고, 블루오션”이라며 “실패가 두려워 스케일을 줄이면 결국 성공할 수 없으니, 도전을 계속해야 하고, 실패 스토리가 쌓일수록 더 큰 성공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박스기사] 끊이지 않는 중기·벤처 아이디어 도용 논란 - 스타트업 보호·협력할 생태계 마련 급해

대기업이 중소기업·벤처기업의 아이디어나 영업정보를 도용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도용이 의심되는 것까지 포함하면 상당히 광범위하게 번져 있다는 게 업계 통설이다. 그러나 대기업에 맞서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고, 대기업이 시장 전반을 지배하고 있어 혹시 모를 불이익을 우려해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덮고 넘어가기 일쑤다.

SK는 지난 5월에도 논란을 일으켰다. SK텔레콤의 자회사 SK커뮤니케이션즈가 제작한 사진 편집 앱 ‘싸이메라’의 필터 가운데 상당수가 한 스타트업이 내놓은 필터 앱을 무단으로 도용했단 논란이다. 사진 필터 유료 앱 ‘아날로그 필름’ 시리즈를 만든 오디너리팩토리가 도용을 주장했다. 그러나 SK커뮤니케이션즈는 “비슷한 류의 효과를 내는 필터는 카메라 앱 시장에 흔하다”면서 “유사한 필터로 오해가 생겨 유감”이라는 정도로 대응했다.

국내 최대 포털서비스 네이버도 서비스 표절 논란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 ‘브이’ 앱 표절 논란을 시작으로 지난 7월엔 ‘참여번역Q’가 아이디어를 도용했단 논란을 빚어 서비스를 종료했다. ‘제2의 라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부상한 동영상 메신저 ‘스노우’도 표절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사도 예외가 아니다. 간편 송금 서비스를 만든 스타트업 ‘토스’는 카카오가 자사 서비스를 도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안솔루션 스타트업 비이소프트는 우리은행이 제휴를 명목으로 접근해 아이디어를 빼낸 후 유사한 서비스를 내놨다며 2년째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강병오 한국창업포럼 회장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활용하려면 제값을 주고 사업 정보를 구매하거나 해당 스타트업을 정당한 가격에 통째로 사야 한다”며 “대기업 입장에선 간단한 아이디어에 작은 사업일 수 있지만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선 그게 일생의 꿈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영목 중앙대 경영경제대학 교수는 “대기업과 협력을 시작할 때 스타트업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인 규제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스타트업의 사업을 보호하면서도 대기업과의 협력을 중재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1350호 (201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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