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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필 50+인생학교 학장] 세대갈등 해결에 ‘50대 에너지’ 활용 

강의 대신 워크숍 중심으로 평생교육... “뒷방 늙은이 자조 말고 뭐든 배워야”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정광필 50+인생학교 학장.
은퇴 이후 대략 10~20년을 더 살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퇴직은 빨라지고, 수명은 길어졌다. ‘100세 시대’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다.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하는 건 인류가 최초로 마주하는 경험이다. 50년을 살아왔고, 5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50~64세’ 인구를 지칭하는 용어도 새로 등장했다. 바로 50+다. 서울시의 50+캠퍼스는 50대 전후 시민에게 필요한 일자리, 창업·사회참여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인생 재설계를 통합 지원하는 곳이라 보면 된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50+캠퍼스를 6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1호 격인 서북 50+캠퍼스는 지난 4월 문을 열었다. 서북 50+캠퍼스의 대표 입문과정이라 할 만한 50+인생학교가 9월 7일까지 2기 수강생을 모집했다. 8월 31일 정광필(59) 50+인생학교 학장을 만났다. 노후, 건강, 제2의 인생 등을 예상했는데 정 학장은 의외로 ‘세대갈등’이란 키워드를 먼저 꺼냈다.

기왕이면 누군가에게 도움될 만한 일 찾아야

“50+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특성부터 봐야 합니다. 지금의 50대는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곳곳에서 중심 역할을 했죠. 상당한 업무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했고, 정치적으로는 세상을 바꿔본 경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대 그 어떤 50대보다 건강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단순하게 은퇴자나 노인으로 내모는 건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실이죠. 올 상반기 50+인생학교 1기 수강생들과 함께하며 저 스스로도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문제 해결 능력, 추진 속도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란 이 자산을 어떻게든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넘치는 에너지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젊은 세대를 위해 쓰자는 게 정 학장의 제안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의미 있는 일에 도전해 보자는 것이다. “등산복 입고 산에 가거나, 골프를 치거나 하겠죠. 아니면 그냥 TV 앞에 머물 거나요. 준비 없이 맞은 은퇴 이후의 삶이란 대개 그렇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니 공허함을 느끼고, 우울증에 직면합니다.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기왕이면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일로요. 1기 수강생들이 만든 여러 커뮤니티가 있지만 그중에서 연극이나 독립영화를 만드는 청년을 돕는 모임이 있습니다. 단순히 재정 지원을 하거나 시혜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아닙니다.

청년들에게 뭐가 필요한지부터 물어봅니다. 제작 과정에서의 어려움이든 행정 절차든 어떤 문제가 있겠죠. 이때 이분들이 나섭니다. 젊은 친구들이 몰라서 못 하는 문제, 힘이 없어 못 푸는 문제를 함께 고민해주고 해결책까지 찾는 거죠. 50대의 돈을 쓰라는 게 아니라, 50대의 능력을 쓰자는 겁니다. 불쌍한 노인 코스프레 말고, 어른들이 먼저 청년에게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세대갈등, 굉장히 난제 같지만 이런 작은 움직임이 쌓이면 의외의 지름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학장은 “최근 교육의 화두가 ‘입시’에서 ‘평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배움의 대상이 특정 세대인 것이 아니라 누구든 평생 배워야 하는 시대로 변했다는 의미다. “은퇴자 대부분이 쫓기듯 퇴직하죠. 그러니 뭔가 허탈합니다.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하는데 배움을 망설이면 안 되죠. 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재교육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50+캠퍼스도 그렇고요. 직장인 과정도 있고, 주말 과정도 있습니다. 기회는 많다는 거죠. 이렇게 미리 배우러 나서야 은퇴 후 부담을 덜 수 있고 그 사이 새로운 관계망도 형성할 수 있습니다. 향후 20년 동안 겪을 변화는 이전 20년 동안 겪은 변화와 비교도 못할 만큼 빠르고, 파괴적일 겁니다. 인공지능만 떠올려도 그렇죠.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50+세대도 학생의 자세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부터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학장을 맡고 있는 50+인생학교는 50+세대를 위한 대표적인 재교육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강의 중심인 보통의 재교육과 다르다. 10주 동안의 교육기간 중 강의는 단 두 번뿐. 대신 수강생이 직접 머리와 몸을 쓰는 워크숍 중심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수강생들이 개별 커뮤니티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활동한다.

1기 수강생들은 각종 네트워크를 연결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가치은행 커뮤니티’ ‘뇌운동 활성화 커뮤니티’ 등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어딜 가나 교양강좌가 넘치고,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가르쳐 주는 강연도 많습니다. 훌륭한 사람의 강연을 들으면 도움은 되겠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체화하고, 실제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50+인생학교는 입문과정입니다. 서북 50+캠퍼스 내엔 다른 좋은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이 인생학교에서 얻어야 할 건 작지만 의미 있는, 조금은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인생 후반전을 함께할 든든한 동료를 만나고, 그들과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게 좋죠. 편한 마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사실 그는 ‘학장’보다 ‘교장선생님’이란 호칭에 더 익숙하다. 20~30대 시절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감방을 오갔던 정 학장이 ‘교육’에 눈 뜬 건 마흔살 즈음, ‘입시지옥’과 ‘사교육’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1990년대 중반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아이들의 비명을 외면할 수 없었고, 학교가 의미 있는 공간이라는 걸 입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정 학장이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2003년 설립한 게 도심형 대안학교로 잘 알려진 ‘이우학교’다. 그는 초대·2대 교장을 맡아 개교 초기 기틀을 닦았다. 그런 그가 중장년의 삶으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혁신학교 전도사가 평생 교육 길잡이로

“올해 초 방영된 SBS 다큐멘터리 [바람의 학교]에 출연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논의하는데, 기획 단계에서 가만히 보니 프로그램을 만드는 40~50대 관계자들이 더 관심을 갖는 겁니다. 예를 들면 ‘나는 무엇인가?’ ‘피할 수 없는 진실에 어떻게 대면하나?’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요. 생각하니 이 세대는 학교에서도 이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살면서도 못한 겁니다. 조직이나 가정에서의 역할, 생존의 방식 등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았으니까요. 그 때 인생학교에 관한 구상을 떠올렸죠.”

서울시의 50+캠퍼스는 최근 다른 지자체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중장년층의 재취업, 활력의 문제가 서울시만의 고민은 아니니까요. 최근 부쩍 강연 요청이 많습니다. 결국 모델의 문제겠지요. 아주 작은 염분이 바닷물 전체를 짜게 만들 듯 50+ 인생학교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세대 전체, 나라 전체로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1352호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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