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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의 한국 철강산업] 밖에선 무역장벽, 안에선 수요 감소에 고전 

미국·인도, 반덤핑 관세로 수입 규제 … 조선·건설업 침체, 중국산 밀어내기 공세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한국 철강산업이 몸살을 앓고 있다. 해외에선 한국산 철강에 대한 집중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철강 파워게임 틈에서 징벌적 관세폭탄을 맞는 처지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최근 포스코의 열연·냉연 제품에 대해 미국 상무부가 부과한 61%의 반덤핑 관세와 64.7%의 상계관세를 확정했다. 앞서 지난 7월엔 현대제철 도금 제품에 48% 반덤핑 관세를 매겼다. 거의 모든 한국 주요 철강 제품에 미국이 관세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도는 지난 3월 한국산 열연강판에 대해 추가 관세 20%를 물리는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치)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지난 4월엔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인도는 열연 제품뿐 아니라 냉연·후판 등 전방위적으로 수입 규제를 확대하고 있다.

국내 상황도 만만치 않다. 철강재의 대부분이 쓰이는 조선·건설업이 고전하면서 수요는 줄었는데 중국산 철강의 물량 밀어내기식 공세는 거세다. 여기에 공급 조절을 위해 국내 생산 물량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일면서 철강 업계는 안팎으로 뒤숭숭하다.

공급 과잉이 부른 신보호무역주의 장벽


세계 철강 업체들은 과잉 생산설비 때문에 고민이다. 필요한 철강은 연 15억t인데 생산용량은 22억t이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해는 약 8억1100만t 정도가 초과될 전망이다. 철강이 남아도니 각국은 자국산 철강재를 보호하느라 무역장벽을 높였다. 지난 한 해 반덤핑 등에 대한 조사가 41건이 개시됐는데, 이는 지난 25년 만에 최대치다. 선진국·신흥국 할 것 없이 공급 과잉의 주범인 중국산은 물론 한국산에 대해서까지 무역 보복 조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연간 수출 물량이 3100만t(2015년 기준)에 불과한 한국이 세계 공급 과잉 물량의 70% 정도를 책임져야 하는 중국과 함께 덩달아 당하는 모양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6월 “한국도 공급 과잉의 원인으로 수요 이상을 생산하고 있고 정부 지원으로 증설하고 있어 수입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도는 “한국은 자국보다 35% 저가로 덤핑수출을 하고 있어 강력한 수입 억제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이 나서 “중국의 철강 수출 비중은 생산의 10%지만 한국과 일본은 40%가 넘어 세계 공급 과잉은 한·중일·의 공동책임”이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포스코 철강재에 대한 관세를 매기면서 제출된 소명 자료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료를 불성실하게 제출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결정이 가능한 것은 미국 철강 업체의 강력한 로비로 지난해 개정된 미국 관세법 776조(b)항 때문이다. 이 조항은 조사기관의 재량권을 넓히고 조사대상 업체가 최선을 다해 조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불리한 정보를 이용해 관세율을 매길 수 있도록 한다. 사실에 부합하는 자료를 고려해야 할 의무를 무시하고 합리적 고려없이 가장 높은 관세율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하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 조항이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협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고 본다.

이 때문에 우리도 적극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유럽·인도 등은 반덤핑·상계관세, 자국 제품 우선 구매제, 수입 제품 감시 제도 등을 통해 자국 철강재를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보호 조치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포스코경영연구원 이윤희 상무는 “철강산업은 글로벌 공급 과잉과 수익 악화에 정치 이슈까지 겹쳐 보호무역주의의 최대 격전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속에서 한국은 집중 공격 대상이다. 이 상무는 “수입재 대응을 위한 건축물 원산지 표기제 도입과 국산 철강재 우선구매제도 도입 등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은 산업 전후방연관효과가 높다. 산업 발전을 위해 각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육성해온 부문이다. 한국 철강은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어 상당 부분을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매년 2000만t을 수입한다. 수입비율은 내수 대비 41%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올해만 중국산 철강 1491만t을 수입할 전망인데, 이는 2008년 이후 최고치다. 중국산이 국내로 침투하면서 후판·철근·파이프 등 상당수 범용 제품은 가격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와 달리 중국과 일본은 각각 철강 수출 1, 2위국이지만 철강 수입 물량은 10위권 밖에 있다. 일본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철강은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2014년 이후 세계 철강산업은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세계 철강 수요 증가를 이끌어온 중국 수요가 정점에 달했고 인도 등 신흥시장의 수요도 제자리걸음이다. 세계 철강산업의 성장 엔진이 꺼져가고 있는 것이다. 건설과 조선·자동차 등 전방산업의 부진이 철강 수요 둔화의 요인이기도 하다.

세계 철강산업 문제의 원인과 해법은 모두 중국에 달려 있다. 중국도 이를 잘 안다. 이 때문에 2020년까지 1억~1억5000만t을 감축을 목표로 구조재편을 선언했다. 중국 허베이강철과 서우드 강철, 바오산강철과 우한강철을 합병해 수급 조절과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들이 합병해 실질적인 물량 조절이 이뤄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또 계획대로 중국이 물량을 감축한다 치더라도 여전히 6억5000만~7억t이 남아돈다.

국내 철강 유통 시장은 후진적으로 단기적 거래 위주로 형성돼 있어 취약하다. 불법·편법 유통이 빈번하고, 수입산이 한국산으로 둔갑해 팔리는 사례도 있다. 중국에서 비정상적으로 들어오는 철강은 표준 규격에 맞지 않아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표준 규격에 맞지 않아 KS인증을 취소해도 중국 업체는 다른 철강사를 인수해 인증 자격을 재취득한다. 이런 부정행위는 법망을 피해간다. 전문가들은 수입재 방어를 위한 제도 개선과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철강협회 이병우 전무는 “WTO 미가입국인 중국의 철강이 한국에서는 혜택을 누리며 거래되고 있다”며 “국산이 중국산과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불량 철강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산 철강재 우선구매제도 업계 요구사항 중 하나다.

BCG 보고서 “후판 공장 7개 중 3개 줄여라”

하지만 이런 조치와는 별개로 한국 철강사도 초과 물량을 감축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국내 철강 소비량은 5600만t에서 정체돼 있고 소비량은 계속 감소 중이다. 더군다나 내년엔 조선산업 수주절벽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정부 발주로 철강업 컨설팅을 맡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중간보고서 내용이 최근 일부 공개되면서 업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금씩 흘러나온 내용에 따르면, 국내 철강사의 후판 설비 공장 7개 가운데 3개를 단계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게 골자다. 국내에서 후판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은 포스코(4개)·현대제철(2개)·동국제강(1개)이다. 이들 공장의 후판 생산 능력은 모두 1200만t으로, BCG 예측을 근거로 하면 2020년에는 생산 여력이 500만t이나 된다. 올해 안으로 후판 공장 1개를 줄이고, 나머지 2개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라는 안이 권고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전망에 업계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후판 공장 3개를 닫으면 대규모 인력 감원 등 후폭풍이 거셀 수 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이 대외적으로 밝힌 대로 물량을 조절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공급 과잉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세계 시장에서 한국산 철강의 경쟁력만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1353호 (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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