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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주체로 떠오르는 1인 가구] 세 집 건너 한 집 ‘솔로’ ‘나’ 위한 지출엔 화끈 

1인 가구의 35%는 소비 주도하는 2030세대... 유통·서비스 업계 변화 이끌어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나 혼자 산다’.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세 집 건너 한 집은 1인 가구다. 가구 유형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27.2%)을 차지한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비율은 30%를 넘어설 전망이다. 1인 가구는 2인 이상 가구와 사는 모습부터 다르다. 혼자 먹고, 입고, 즐기다 보니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라는 산업사회의 기본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특히 1인 가구의 35%는 소비를 주도하는 2030세대다. 나를 위한 소비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들의 취향을 저격할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가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홀로족’에서 ‘파워 솔로’로의 진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핵가족도 많다. 혼자면 족하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통계청이 9월 7일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는 520만 가구에 달했다. 2010년 422만 가구에서 5년 만에 99만 가구가 늘었다. 전체 1911만 가구 가운데 27.2%로 가장 높은 비율이다. 1990년에서 2005년까지는 4인 가구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는 2인 가구가 주된 가구였다. 그런데 지난해 처음으로 1인 가구가 주된 가구가 된 것이다.

2인 가구 비율은 26.1%로, 1인 가구와 2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율(50%) 역시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 이어 3인 가구(21.5%), 4인 가구(18.8%) 순이었다. 이와 달리 1990년 전체 가구 중 28.7%를 차지한 5인 이상 가구 비율은 6.4%로 내려앉았다. 불과 25년 새 이뤄진 급격한 변화다.

고령화·경제난에 1인 가구 비율 27%로 1위

통계청과 학계는 2020년 이후에나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 가운데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지만 5년 앞서 현실이 됐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고령화와 청년층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의 증가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며 이혼·사별 등의 이유로 홀로 사는 노인이 급증했다. 경제난에 결혼을 미루고 혼자 사는 나홀로족도 많아졌다. 실제 1인 가구 가운데 가장 많은 18.3%는 30대였다. 다음은 70세 이상(17.5%), 20대(17%) 순이었다.

1인 가구의 약 35%가 소비력이 높은 20~30대 젊은층에 집중된 까닭에 씀씀이도 2인 이상 가구에 비해 크다. 통계청이 2014년 조사한 가구별 소비성향을 살펴보면, 1인 가구의 소비 성향은 80.5%로 전체 평균(73.6%)을 앞섰다. 가구원수별 1인 당 소비 규모 역시 1인 가구가 92만원으로 월등히 높다. 이른바 ‘파워 솔로’의 저력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16조원(전체 민간소비의 3.3%)에 불과하던 1인 가구의 소비지출 규모는 2010년 60조원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그 규모가 2030년경 194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는 전체 민간소비의 2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한슬기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고령화와 저출산, 혼인 연령 증가 등으로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했다”며 “기업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을 개발·판매하는데 집중하며 관련 산업 역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형 주택과 가전, 소용량·소포장 식품부터 1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업까지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파워 솔로 소비지출 2030년 194조원 전망

한슬기 연구원은 파워솔로의 소비 특징으로 ‘4S’를 꼽았다. 가구와 가전 등은 작고(Small), 똑똑한(Smart) 제품을 선호한다. 간편하고, 한번에 해결하려는 원스톱 소비경향이 강해 새로운 유형의 서비스(Service)와 제품을 찾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Selfish)을 위한 소비 행위가 주를 이루며 ‘포미족(개인적으로 가치를 둔 제품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사람)’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 ‘싱글슈머(1인 가구 형태로 살며 개인의 생활패턴에 따라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소비자)’ 등 신조어를 만들며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올랐다는 설명이다.

파워 솔로의 등장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은 편의점이다. 1인 가구의 소비 트렌드를 발 빠르게 파악해 이들에 특화된 상품들을 잇따라 출시하며 경쟁력을 갖춘 점이 주효했다. 지난해 백화점·대형마트 등 주요 유통 업체의 매출이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반면 편의점은 26.5% 성장하며 ‘나홀로 질주’를 이어갔다.

과거 편의점은 점포가 많아 접근성이 좋은 이점이 있지만 대형마트에 비해 비싸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1+1, 2+1 등 각종 행사와 통신사 멤버십 할인 혜택, 소액 상품권이나 상품 교환권을 적극 활용하며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했다는 평가다. 대량 구매가 필요없는 1인 가구의 발길을 끈 비결이다. 1인 가구의 약 35%를 차지하는 2030세대가 상품 교환권과 소액 상품권 구매·사용에 적극적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백화점·대형마트 부진 속 편의점 나홀로 질주

‘파워 컨슈머’로 부상한 1인 가구는 편의점뿐만 아니라 식품 업계, 가전·가구 업계에도 새 바람을 일으켰다. 식품 업계에선 가정간편식(HMR) 판매가 급증했다. 농식품유통교육원에 따르면 국내 HMR 시장 규모는 2014년 기준 약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는 1조5000억원을 거뜬히 돌파했고, 올해는 2조원대로 치솟으리란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식품소비 트렌드를 두고 1990년대 일본과 흡사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1990년대 일본은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와 장기 불황의 여파로 HMR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에서는 1990년 대 저성장에도 HMR 시장이 연평균 8.4%씩 성장했다”며 “소득수준의 향상, 라이프스타일의 서구화,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증가, 가구당 평균 구성원 감소, 노령화 사회 진입 등 일본의 1990년 경제지표와 2011년 이후의 우리나라 경제지표가 매우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HMR 시장이 대폭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고 각 업체마다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는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올해는 HMR 시대가 본격화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5년 간 HMR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1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식품 업계는 물론 유통 업계까지 HMR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마트의 PB브랜드 ‘피코크’는 최근 HMR 인기몰이를 주도하는 대표 브랜드로 급성장했다. 2013년 280개에 그쳤던 품목은 지난해 900여 개로 확대됐으며, 매출 역시 1500억원을 넘어섰다. 이마트에서 피코크가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늘어나며 기존 HMR 시장을 주도하던 오뚜기·CJ제일제당·대상·풀무원 등 식품 업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롯데마트 역시 지난해 말 HMR PB브랜드 ‘요리하다’를 론칭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롯데마트의 PB브랜드는 기존 HMR과 달리 간편식과 요리 재료, 조리 준비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선보여 차별화를 꾀했다는 분석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식생활 전반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밀 솔루션(Meal Solution)을 지향한다”며 “채소를 다듬거나 볶는 등 간단하지만 별도 요리 과정이 필요한 반조리 상품을 전체 20% 정도로 구성했고 앞으로 메뉴와 어울리는 그릇과 수저 등의 상품도 추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마트는 매해 분기별로 새로운 주제의 상품도 선보이는 등 연내 200개, 2017년까지 500개로 상품수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가정간편식, 1인용 서비스업 수요 커져

파워 솔로가 몰고온 변화는 식품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인 가구의 소비행동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인 가구는 ‘나를 위한 자기지향성 소비’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여행이나 자기계발·레저·건강 등에는 향후 지출을 늘릴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외식·통신·의류·식품 등에는 지출을 줄이고 싶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각종 문화·서비스도 변화하고 있다. 혼자 즐기는 여가가 기껏해야 영화나 공연을 관람하는 일이었다면 이젠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일이 예사가 됐다. 업계는 혼자인 것에 익숙하고 효율을 중요시 여기는 파워 솔로를 겨냥한 1인용 식당, 호텔, 노래방, 여행 상품 등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파워 솔로의 급격한 증가는 산업별 소비구조 변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연구원 한정민 연구원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미용서비스업, 오락·문화산업, 통신서비스업의 성장이 예상되고 고령층에서는 보건·의료 서비스업, 복지시설 산업의 큰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며 “이 밖에 전반적으로 가공식품 및 외식산업과 여성과 노인을 위한 방범·치안 서비스업의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353호 (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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