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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노트7 사태에서 삼성이 놓친 점은] 이재용 부회장이 소비자 불안부터 달랬어야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도요타 리콜, 애플 안테나 결함 때 최고 책임자 전면에 나서... 속도 제일주의 조직문화 헛점도 드러나

▎갤럭시 노트7의 환불과 교환이 시작된 10월 13일 서울 서교동 SK 텔레콤 대리점에 반납 받은 갤럭시 노트7이 놓여 있다. / 사진:김성룡 기자
갤럭시 노트7은 단종됐지만 ‘노트7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시장은 이번 사태를 ‘제품 개발의 실패’로 국한해 해석하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조직 문화와 위기 대응 능력에까지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가 미국 시장의 의사소통 방식을 제대로 읽지 못해 위기 대처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외신과 국내외 전문가들로부터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9월 실시한 첫 리콜 대처는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전격적인 전량 리콜 발표에 대해 미국 경제지 포춘은 ‘삼성전자는 위기를 잘 대처했다. 한달 정도면 삼성전자의 평판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콜 당시 밝혔던 발화 원인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 드러나며 보다 근본적인 치부를 드러내는 꼴이 돼 버렸다.


일방통행식 의사소통 방식 고수해 불신·불안감 증폭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소비자에게 충분히 상황을 알리고 해명하지 않았다고 꼬집는다. 특히 이들은 배터리 발화 사고가 처음 보고된 8월 24일부터 전량 리콜이 전격 발표된 9월 2일까지의 9일, 교환한 신제품에서의 발화가 알려진 10월 5일부터 생산 중단이 발표된 11일까지의 6일 간의 간격에 주목한다. 이 기간 삼성전자는 “구체적인 원인을 조사 중”이라는 공식 입장만 밝힌 채 사실상 침묵했다. 그동안 배터리 발화 사고는 인터넷에 급속히 퍼져 삼성전자의 제품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은 빠르게 자라났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전형적인 고맥락 사회의 의사소통 방식”이라고 규정하고 “저맥락 사회인 미국의 소비자들은 삼성전자가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여겼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고맥락·저맥락 사회는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소개한 개념이다. 고맥락 사회의 구성원들은 오랜 기간 같은 역사를 공유해왔다. 굳이 많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상황을 이해한다. “원인을 조사 중”이라는 한마디에 대해 대부분의 한국 소비자들은 이렇게 이해했을 수 있다. ‘삼성전자가 일류 기업답게 신속히 사고 조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일단 기다려보자.’ 하지만 미국의 소비자들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니, 처음 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도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만 있다는 거야.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왜 밝혀지지 않는지, 그 기간 동안 스마트폰은 어떻게 사용하라든지에 대한 설명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는 2009년 도요타의 렉서스 급발진 사태 때도 문제로 지적됐다. 폴 아르젠티 다트머스대 경영대학 교수도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는) 실수를 인정하고 실수가 무엇인지 안다면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 문제는 고맥락 사회인 한국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명확한 답을 얻어야 이를 밝힌다는 것인데 미국서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라고 언급했다. 정용민 대표는 “저맥락 사회에선 선제적이고도 구체적인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며 “원인이 밝혀지면 그때 소통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원인을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철저히 밝혀낼 것이며, 누가 책임을 지고 문제를 개선해나가겠다고 투명하게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태를 해명하고 수습 방안을 설명하기에 앞서 소비자의 불안을 달래는 감정적 의사소통도 필요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프랑스 광고회사 하바스에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는 이브스 로버트 폴 대표는 최근 AFP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의 9월 리콜 발표는 모든 감정을 배제한 실용적인 대응이었을 뿐”이라며 “사건을 산업적 재해로 대했을 뿐 소비자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위기상황에서 리더가 전면에 나서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미국 사회에선 삼성전자의 특정인이 이 사태를 설명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도 의아하게 여기는 대목이다. 미국 경제뉴스 채널 CNBC에서 한 패널은 “누구나 애플엔 팀 쿡이 있다는 걸 아는데, 누가 삼성전자를 대변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게 가장 큰 문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이번 사태를 두고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빌 조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CNBC에 출연해 “이 부회장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미국 의회에 출석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폴크스바겐 같은 오류를 범해 삼성이라는 훌륭한 브랜드를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기업에서 이런 품질 문제가 불거질 땐 거의 예외 없이 최고경영자(CEO)가 사태 해명에 나선다.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장난감 회사 마텔의 2008년 납 성분 검출 파동이 좋은 예다. 로버트 애커트 CEO는 직접 방송 뉴스에 출연해 어떻게 장난감을 수거할 것인지 설명했다. 또 다시는 납 성분이 장난감에 들어가지 않도록 3단계 조치를 추가했다고 소개하며 사과했다. 4명의 일가족이 숨진 사고를 야기한 도요타의 렉서스 급발진 사고 역시 6개월의 공방 끝에 도요타 아키오 사장이 직접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 후에야 소비자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애플의 아이폰4에서 안테나를 특정 각도로 잡으면 수신률이 떨어진다는 결함이 발견되자 기자회견에 나선 이도 스티브 잡스 당시 CEO였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노트7과 관련해 삼성전자를 비판하는 이들은 노트7에 결함이 발견됐다는 사실 자체보다 소비자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 삼성전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데 주목한다”며 “정서적인 반감을 잠재우려면 최고 책임자가 전면에 나서 사태를 수습하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수평적 조직문화 정착은 요원한 과제

회사의 조직문화에 대한 시장의 의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도 삼성전자가 직면한 큰 숙제다. 시장은 노트7이 발화 사고를 일으킨 배경, 발화 사고가 배터리의 결함이라고 성급히 발표한 이면에 ‘속도 제일주의’와 ‘수직적 군대문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기사를 통해 삼성전자 조직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삼성전자는) 수백 명의 직원에게 문제를 빨리 진단하라고 재촉했다. 누구도 폭발을 재연해내지 못했다. 시간에 쫓기던 엔지니어들은 초기 결함이 부품사로부터 공급받은 배터리 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며 하향식 군대 문화가 이 사태를 불렀다고 분석했다. 빌 조지 하버드대 교수는 “삼성의 문화는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라며 “의사 결정자들이 모두 한국인이기 때문에 미국 소비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량 제품의 여파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올 3월 ‘스타트업 컬처 혁신 선포식’을 열 정도로 수평적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성과주의, 속도 제일주의가 남아있는 한 삼성전자 조직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을 거란 지적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동안 그룹 계열사의 사업구조 개편에 주력했던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좀 더 챙겨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1356호 (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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