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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의 이슈의 이면 (1) | 성과연봉제가 산으로 가는 이유] 계약 본질보다 도입 성과에 집착한 정부의 패착 

 

나현철 중앙일보 논설위원(tigerace@joongang.co.kr).
경제혁신의 상징으로 밀어붙여... ‘저성과자 퇴출이 목표 아니다’ 모순된 주장

▎박근혜 대통령(왼쪽)은 지난 4월 22일 성과연봉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그 후 정부에서 성과연봉제 도입률을 높이기 위해 서두르는 과정에서 노사합의가 간과되고 노조의 반발이 거세졌다. / 사진:중앙포토
올리버 하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핀란드 출신의 벵트 홀름스트룀 MIT 교수가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함께 받았다. 계약이론 정립에 공헌한 공로다. 계약 내용과 인센티브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당사자들의 행동과 조직의 효율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단기 성과에 근거해 보수를 받는 경영자는 장기적 기술 개발이나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덜 고려하게 된다. 몇 가지 정량 평가에 큰 비중을 두면 근로자들은 전체 업무의 효율보다 평가 항목에만 신경을 쓴다.

이 두 사람이 연구해볼 만한 일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때아닌 추투(秋鬪) 얘기다. 9월부터 은행을 비롯한 금융산업노조, 철도와 지하철을 운행하는 공공운수노조, 종합병원 중심의 보건의료노조가 잇따라 파업을 했다. 금속노조와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노조도 비슷한 시기에 파업에 동참했다. 대개 파업을 비롯한 쟁의행위는 임금 협상 시즌인 봄과 여름에 주로 벌어진다. 그래서 춘투(春鬪)·하투(夏鬪)가 시끄러운 노사관계를 표현하는 단어가 돼왔다. 하지만 올해엔 가을에 파업이 집중되고 있다. 공공기관들이 파업의 진앙이라는 점도 예전과 다소 다른 모습이다.

노조는 ‘추투’로 기득권 지키기

갈등의 핵심엔 ‘성과연봉제’가 자리잡고 있다. 성과연봉제는 정부가 공공부문 혁신을 명분으로 도입하려 하는 제도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같은 연차면 같은 임금을 받는 호봉제를 성과 연동형 임금체계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른바 ‘철밥통’을 깨뜨려 경쟁적 요소를 도입하면 전체 공공부문의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전체의 7%가량인 고위직에 적용해왔던 걸 4급 이상인 전체의 70%로 확대했다. 고성과자와 저성과자 간의 임금 인상률도 현재 기본급의 2%에서 3%로 확대했다. 민간으로 가면 차이는 더 커진다. 은행연합회는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에서 같은 직급에서도 최대 40%까지 격차를 둘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지난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천명했고, 올 1월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전체 공공기관으로의 전면 확대를 주문했다. 현재 120개 공공기관, 90개 준정부기관, 143개 지방 공기업 대부분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것으로 집계된다. 반년도 안돼 거둔 ‘성과’ 치곤 꽤 짭짤하다.

노동계가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다. 그 결과가 대규모 파업이다. ‘공공기관의 성과주의는 공공이익을 침해해 오히려 국민 피해를 초래한다’는 게 노조의 명분이다. 성과연봉제가 민영화나 쉬운 해고의 물꼬를 열기 위한 제도라는 의구심도 강하다. 노사 합의 없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주장도 내놓는다. 실제로 상당수 기관은 정부 독촉에 못 이겨 노사합의가 아닌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한다고 근로조건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되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였다. 당연히 근로자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고, 이사회 의결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면 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파업으로 제동이 걸렸다. 우선 지하철을 포함한 서울시 지방공기업 노사가 성과연봉제를 노사 합의로 도입하기로 하고 사흘 만에 파업을 끝냈다. 합의안엔 성과와 고용을 연계하지 않기로 하는 등 노조 측의 주장이 대폭 수용됐다. 먼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부작용은 나중에 해결한다는 정부 방침이 힘을 잃게 됐다. 철도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해 성과연봉제 반대론을 잠재우려던 시도에도 차질이 생겼다.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정부의 입장과는 반대로 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9월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재흥 중노위 사무처장은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질의에 대해 ‘성과 연봉제를 둘러싼 철도노사의 쟁의는 근로자의 이익과 관련한 정당한 조정 대상이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총리실 주재 파업대책회의에서 법무부와 고용노동부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상황이 꼬인 데엔 정부의 조급증이 한몫을 한 것으로 지적된다. 당초부터 성과연봉제엔 정치적 배경이 작용했다. 경제혁신의 상징으로 정부가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동 4법’을 비롯한 다른 개혁이 지지부진한 만큼 성과연봉제는 더 부각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22일 성과연봉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밝힌 후 도입 속도가 급속히 빨라진 게 그 방증이다. 대통령도 관심을 갖는 역점 시책의 도입률을 서둘러 높이려다 보니 노사합의가 간과되고 반발은 거세졌다.

정부 스스로 성과연봉제를 퇴색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많은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들은 여러 차례 “성과연봉제의 목표는 저성과자 퇴출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노조를 달래려 한 발언이었지만 제3자인 국민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성과자를 퇴출시키지 못하면 성과연봉제를 왜 하고 효율성은 어떻게 높이느냐’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됐다. 당사자인 공공기관 임직원들도 “저성과자를 걸러내지 않고 직원들을 경쟁시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계약의 내용보다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성과연봉제라는 계약의 본질보다 도입률과 같은 숫자로 개혁 성과를 과시하려 한다는 오해를 불식하기 어렵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명분도 중장년이 대다수인 노조원들에게 ‘결국 우리를 자르려고 도입한다는 말이냐’는 불안감을 심어줬다.

보다 본질적인 의문도 있다. 성과를 어떻게 규정하고 평가할 것이냐는 문제다. ‘성과란 무엇인가’는 경영학이 풀지 못한 영원한 숙제 중 하나다. 대부분 조직은 한두 가지 목적만 갖고 움직이지 않는다. 그럴 경우 오래 가지도 못한다. 기업을 움직이는 힘도 이윤이라는 한 가지 목표가 아니다. 평판과 신뢰, 사회공헌 같은 다른 목표가 병존한다. 이윤 극대화에만 매몰됐다간 제품 결함이나 소비자 신뢰 문제가 터졌을 때 ‘한 방에 훅 가기’ 십상이다. 기업이 커질수록 양극화 해소나 환경 등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의 책임을 확장하는 경우가 많다.

‘성과란 무엇인가’는 경영학의 영원한 숙제

공기업은 더 복잡하다. 모든 공기업의 목표는 전체 사회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효용을 어떻게 정의 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지하철공사를 예로 들어보자. 공공요금이니 가격이 높아선 안 된다. 시민 안전이 위협받아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시나 정부 재정에 과도하게 부담을 줘서도 안 된다. 가격과 안전, 이윤은 서로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게 우선인지는 정답이 없다. 시대와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해마다 정부의 공기업 평가가 발표될 때마다 논란이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엔 4대강 사업과 해외 자원개발에 앞장선 기관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대개 꼴찌를 다투고 있다. 올 평가에서 한국전력은 A등급을 받아 임직원들이 240%의 성과급을 받게 됐다. ‘냉방요금 폭탄’에 기겁한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다. 이렇듯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평가기준과 결과가 좌우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공기업 평가를 두고 직원들에게 성과연봉제를 받아들이라고 설득하긴 쉽지 않다. 공기업을 개혁한다며 낙하산 인사를 무차별 살포하는 것도 큰 걸림돌이다. 공기업 경영을 단숨에 들어먹는 건 다수의 임직원이 아니라 정권에 충성하는 사장 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성과연봉제는 이 상태라면 생색내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정권이 모범을 보이는 게 관건이다. 사장 임명을 포함해 공기업 운영을 비정치화해야 한다. 공기업 평가도 비슷한 수준의 해외 공기업과 비교해 성과와 효율성을 측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tigerace@joongang.co.kr).

1356호 (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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