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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 봅시다 | 끊이지 않는 거시경제모형 무용론] 돼지 입술에 립스틱 바른 꼴이다 

 

백우진 한화증권 편집위원 woojinb@hanwhawm.com
폴 로머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맹비난 … 현실 세계에 대한 설명력 떨어져

▎저명한 거시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온 폴 로머는 현대 거시경제모형은 ‘탈(脫) 현실 모델(Post-Real Models)’이라고 꼬집었다.
‘돼지 입술에 립스틱을 바른 꼴이다.’ 현대 거시경제학에 대한 이토록 신랄한 비판은 전에 없었다. 폴 로머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대 거시경제모형은 ‘탈(脫) 현실 모델(Post-Real Models)’이라고 꼬집었다. 거시경제모형이 실제 경제현상과 주요 변수의 관계에서 벗어났다는 말이다. 이렇듯 거침없는 표현의 글을 로머는 9월 자신의 블로그(http://paulromer.net)에 올렸다. 제목은 ‘거시경제학의 문제(The Trouble with Macroeconomics)’다.

이 글에서 로머는 거시경제모형을 해체해 주요 구성요소(변수)가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보여준다. 그는 이 대목에서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변수가 버젓이 거시모형에 자리잡게 됐다며 그런 변수를 ‘트롤’이나 ‘그렘린’이라고 부른다. 이어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몇몇 변수도 실은 유사과학적이라며 그런 변수를 ‘플로지스톤’이나 ‘에테르’라고 명명한다. 플로지스톤은 연소 과정이 규명되기 전 나와 통용되던 개념으로 물질 속의 가연성 성분을 가리켰다. 에테르는 빛이나 전자기파의 전달을 매개한다고 여겨진 가상 물질이었다.

명망 있는 거시경제학자의 정면 공격

그처럼 주류 경제학계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명성을 쌓은 인물이 경제학을 정면으로 공격한 일도 없었다. 로머는 올해 7월 세계은행으로 옮기기 전 뉴욕대학·스탠퍼드대학·시카고대학 등에서 연구·강의했다. 로머는 1980년대에 '내성적 성장 이론'을 내놓았는데, 이 이론은 기술 변화가 연구·개발 같은 의도적인 행위의 결과라는 주장을 수학적으로 보여준 데서 출발했다. 그는 시카고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머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왔다.

로머의 거시경제모형 분석을 이해하는 데엔 간단한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 거시경제모형은 여러 개의 수식으로 구성된다. 각 수식은 경제성장률,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수출, 수입, 세계경제성장률, 유가, 물가상승률, 금리, 실업률 등 변수의 관계를 나타낸다. 경제모형의 변수는 외생변수와 정책변수, 내생변수로 구분된다. 외생변수에는 세계 경제성장률과 유가 등이 포함된다. 정부지출과 금리 등이 정책변수다. 외생변수와 정책변수의 영향을 받는 경제성장률·실업률 등이 내생변수다.

거시모형은 두 가지 용도로 쓰인다. 우선 한 변수의 변화가 다른 변수에 어떤 영향을 어느 정도 미치는지 분석하는 데 활용된다. 예를 들어 일정 기간 경제성장률의 변화가 소비와 투자, 정부지출 등으로부터 각각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추정한다. 또 일정 기간 이후 경제가 어떤 상태가 될지 예측하기 위해 거시모형을 돌린다.

로머는 첫째 용도에서 거시모형을 뜯어본다. 그는 1982년에 발표된 ‘리얼 비즈니스 사이클(RBC)’ 모형부터 거론한다. 이 모델은 경기변동을 뭔지 모를 외생변수의 변화로 설명한다. 말하자면 기존 모형으로 잡히지 않은 변화가 나타났을 때 이를 설명하는 변수를 하나 만들어 모형에 추가한 식이다. 이 변수는 따라서 경제학자의 ‘무지를 측정한 것’이다. 로머가 ‘플로지스톤’이라고 비아냥댄 대상이 바로 이런 변수다.

로머가 글에서 비판하는 대상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가 거시 모형이고 둘째는 거시모형을 통해 내린 결론이며 셋째는 오류를 오류라고 말하지 않는 경제학자들의 행태다. 이 가운데 셋째는 박스기사에서 전한다. 둘째와 관련해 로머는 현대 거시모형이 통화정책의 영향력을 무시하거나 간과한다고 지적했다. RBC 모형은 물론이요 이 모형에 비해서는 통화정책 변수를 더 고려한 동적확률일반균형(DSGE) 모형 역시 통화정책을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돼지에 립스틱’이라는 조롱을 쓴 대목이 바로 여기다. 그는 “경험적인 DSGE 모형은 끈끈한 가격이라는 립스틱을 RBC 돼지에게 칠한다”고 말했다.

경제학계에서는 별 반응 보이지 않아

로머는 거시모형에 ‘플로지스톤’처럼 들어간 다른 변수로 ‘주어진 투입으로 만든 소비재의 증가’ ‘주어진 투입을 통한 자본재의 증산’ ‘모든 노동자에게 지불된 임금의 무작위적인 변화’ ’ 투자자의 리스크 프리미엄 변화’ ‘여가를 덜 원하는 성향’ 등을 들었다. 그가 트롤이나 그렘린 같은 이름을 붙인 변수들이다. 이 가운데 소비재나 자본재 생산량 변화는 부정확하게나마 측정이 가능하지만, 리스크 프리미엄이나 여가선호 성향 등은 수치로 잡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측정하지 못하는 변수로는 관계를 파악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런 가상의 변수를 넣은 이유는 뭘까. 로머는 이 대목은 설명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거시모형이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커버하기 위해서가 첫째 이유고, 둘째는 거시모형을 돌려서 나온 결과가 예상과 상당히 다를 경우 그 차이를 ‘마사지’하기 위해서라고 필자는 추측한다.

로머의 ‘작심 발언’에도 경제학계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DSGE 모형은 심각한 결함이 있지만 도움이 된다”는 원론적 대응이 나왔다. 다만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DSGE를 활용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경제현상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동조했다.

거시모형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아니지만,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이 OECD 홈페이지의 인사이트 코너에 올린 글이 참고가 된다. 구리아 사무총장은 ‘경제가 통제될 수 있다는 척하지 말라(Stop pretending that an economy can be controlled)’라는 제목의 글에서 “경제는 많은 변수가 상호작용해 비선형적이며 예측 영역에서 벗어나는 복잡계라는 점을 경제학자들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잡계 경제학’은 연구된 지 한참 지났지만 어떤 성과를 낼 지 아직도 의문인 상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변수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전개돼 얼마나 큰 결과로 나타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복잡계 경제학의 전제다. 이 전제에 비추어 볼 때, 거시모형은 기본적인 관계 외에는 설명력이 약하다. ‘경제학자들은 그 일을 모델과 한다(Economists do it with models)’는 우스개가 있다. 거시모델과 하는 작업은 점차 외면될 공산이 크다.

[박스기사] 경제학자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루카스는 프레스콧을 지지하고, 사전트는 루카스를 지지하며, 그들이 쌓은 명성과 권위를 맹종하는 다른 경제학자들은 아무도 그들의 오류를 거론하지 않는다.’ ‘임금이 벌거벗었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거시경제 학계에 대한 폴 로머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은 위와 같이 요약된다. 로버트 루카스 교수의 오류는 무엇인가. 루카스 교수는 2003년 논문에서 “거시경제학은 그 원래 의미에서 성공했다”며 “모든 실질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기 침체를 막는다는 중심 과제는 풀렸고 지난 수십 년 동안 해결돼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로머는 “세계 경제의 생산을 기준으로 해 2008~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를 살펴볼 때 루카스의 이 같은 주장은 심각한 오류이며, 그가 비판한 케인시안 모델보다 더 크게 틀렸다”고 반박했다. 로머는 이어 따라서 루카스 등이 케인시안 거시경제모델을 비판하며 한 “크게 틀렸고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것은 단순한 사실”이라는 구절은 “온전히 그들의 탈 현실(post-real) 거시 경제형과 이 모형을 낳은 프로그램에 적용된다”고 논평했다.

똑똑하다는 경제학자들이 내부 토론을 통해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로머는 업적을 쌓은 교수는 권위를 얻고 존경을 불러일으키고, 제자는 교수가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대로 논문을 쓰게 되며, 이 과정에서 이론적 비전과 어긋나는 사실은 경시된다고 전한다. 루카스 교수는 ‘합리적 기대이론’으로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으며 로머의 시카고대학 은사이기도 하다. 로머는 ‘내게는 내 나라보다 내 친구들이 더 중요하다’는 영국 소설가 E.M. 포스터의 경구를 비틀어 다음과 같은 경제학계 비판의 변을 내놓는다. “과학을 배반하는 것과 친구를 배신하는 것 사이에 선택해야만 한다면 나는 내 친구를 배반하는 용기가 있기를 희망한다.”

1357호 (2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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