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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열풍의 함정] 감량 효과 없고 심혈관질환 무기력증 우려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대한내분비학회·대한당뇨병학회 등 강력 경고... 주요 영양소 고르게 섭취해야

정말 지방은 억울한 것일까? 9월 19일 방송한 MBC 프로그램 [지방의 누명]이 화제다. 일단 내용부터 파격적이었다. 방송은 비만의 주범으로 탄수화물을 지목했다. 그리고 지방에 면죄부를 내렸다. 지방을 마음껏 먹어도 좋다는 것이다. 9월 말 불기 시작한 저탄수화물·고지방 다이어트 열풍의 시발점이다. 말 그대로 탄수화물을 줄이고 지방을 늘리는 방식이다. 밥·빵류 탄수화물은 식단의 10~15% 이하로만 먹고, 고기나 버터 같은 지방 섭취를 70% 수준으로 권한다. 이대로 하면 체중이 준다는 내용이다. 설탕을 비롯한 과일 등 당도 피해야 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탄수화물이 많은 식품으로 쌀·밀가루·과일 등이 있다. 이를 줄이면 신체는 대체 에너지원을 찾는다. 이때 체내에 쌓인 지방을 찾아 소비한다. 지방을 마음껏 먹어도 되는 이유도 있다. 먹는 지방은 체내에 쌓이지 않는다. 여기에 탄수화물 섭취량이 줄면 체내에 캐톤산이 늘며 근육과 지방조직 분해가 진행되며 체중이 감소한다.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혈당이 급격히 올라가고, 인슐린 분비가 늘어난다. 소화 안 된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축적돼 살이 찐다. 그러니 탄수화물을 제한하고,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지 않는 지방을 많이 먹으면 체중이 준다는 원리다. 탄수화물을 줄이면 당뇨 위험도 감소한다.

저탄수화물·고지방 다이어트의 효과는 빠르다. 한두 달이면 체중감소 효과가 나타난다. 저탄수화물·고지방 다이어트가 빠른 시간에 수많은 추종자를 만든 배경이다. 다이어트 방법은 미국 여성 과학자인 니나 타이숄스가 고안했다. 예일대 출신의 타이숄스는 지방을 비만의 주범으로 몰아온 영양학에 반발해 책을 저술했다. 그의 저서 [지방의 역설]은 4월 국내 출판됐고, 이를 토대로 제작한 게 MBC [지방의 누명]이다.

여성 과학자 니나 타이숄스가 고안


방송은 다이어트 업계를 강타하며 저탄수화물·고지방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변화는 시장에서 나타났다. 9월 중순 이마트와 롯데마트, 쿠팡과 11번가에서 삼겹살과 버터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9월19일부터 10월12일까지 이마트의 버터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41.4%, 치즈는 10.3%, 삼겹살은 7.6% 늘어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버터가 동나기도 했다. 다이어트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수많은 체험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탄수화물만 안 먹고 한달 버티니 2kg가 빠졌다’ ‘삽겹살은 마음껏 먹고 나중에 공기밥만 피하면 된다’ ‘점심·저녁을 스테이크·삽겹살·곱창만 먹고 살을 뺐다’ ‘풀만 먹은 돼지·소가 더 효과가 좋다’ 등의 글이 인터넷에 넘쳤다.

거침없던 저탄수화물·고지방 다이어트에 제동을 걸고 나선 이들이 있다. 바로 의사들이다. 10월 26일 대한내분비학회·대한 당뇨병학회·대한비만학회·한국영양학회·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의사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5개 단체 공동 기자회견은 단체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쌀밥과 면 같은 탄수화물 섭취를 대폭 줄이고 삼겹살과 버터 등 지방 섭취를 늘리는 ‘저탄수화물·고지방 다이어트’ 열풍이 국민 건강을 해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공동 성명서에는 “고지방·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체중 감량 효과에 대한 검증이 안 됐을 뿐 아니라 심혈관질환·무기력 증 등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이 고르게 균형 잡힌 식단과 활동량 증대를 통해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비만·당뇨병·심혈관질환 등의 예방과 관리에 필수 조건”이라고 밝혔다. 단체 관계자는 “2000년대 이후 탄수화물·지방 비율을 달리한 식사를 통한 체중 감량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됐지만,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저탄수화물·고지방 다이어트는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곳곳에 함정이 있다. 단기간 효과를 볼 수 있으나 오랫동안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지난 50년 간 다이어트 연구자들은 탄수화물과 지방 비율을 놓고 다양한 실험을 진행해왔다. 각각 다른 비율이었지만 장기적으론 별 차이가 없었다. 부작용도 주의해야 한다. 뇌와 콩팥 같은 장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포도당이 필요하다. 포도당은 탄수화물의 부산물이다. 탄수화물이 필수영양소인 이유다. 줄이면 신진대사에 무리가 온다.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면 신체엔 케톤산이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두통·변비가 찾아오고 쉽게 지친다. 과도한 지방 섭취는 고지혈증·심혈관질환 위험성을 높인다. 장내 미생물 변화로 산화 스트레스가 늘어 신체에서 염증 반응이 늘게 된다. 많은 의사가 방송에서 분노한 이유는 상태가 악화된 환자가 갑자기 늘어서다. 특히 심장이나 콩팥, 당뇨병 환자는 저탄수화물·고지방 다이어트를 피해야 한다. 당뇨병 약물을 사용하는 환자가 갑자기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면 저혈당 증상이 나타난다. 고콜레스테롤 혈증도 위험하다.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 심혈관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적당한 운동 병행해야

이번 논란에서 비만의 원인으로 지목된 탄수화물도 억울하다. 전문가들은 이 역시 편견이라고 말한다. 어떤 음식이든 많이 섭취하면 살이 찐다. 탄수화물뿐 아니라 대부분의 영양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탄수화물은 오히려 체중 감량에 기여해온 영양소다. 체중 조절에는 식이섬유의 영향이 크다. 탄수화물을 제공하는 식품 대부분 식이섬유 함량이 높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흰쌀이나 흰밀을 피하고 통곡물과 현미 같은 식이섬유 함량이 높은 곡물의 섭취를 늘리면 체중이 오히려 줄어든다. 식이섬유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정하는 역할도 한다. 한국인은 밥·면 위주 식단을 즐긴다. 탄수화물 섭취가 많은 편이다. 대한영양사협회는 당뇨병 위험을 낮추기 위해 탄수화물을 식단의 50% 정도로 줄이라고 권한다. 하지만 5~10% 수준으로 낮추면 신진대사에 문제가 생겨 결국 건강을 해친다고 경고했다.

저탄수화물·고지방 다이어트의 전신은 7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앳킨스 다이어트다.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혈당이 급격히 올라가고, 결국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축적돼 살이 찐다는 주장이었다.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지 않는 지방을 많이 먹으면 체중이 준다는 내용이다. 다이어트의 혁명이라며 고기 위주 식사법을 전파한 미국 의사 로버트 앳킨스는 심부전과 심장마비로 72세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몸무게는 120㎏이었다. 대한비만학회 이사인 오상우 동국대 의대 교수는 “과장된 식이법의 유행이 많은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며 “음식을 골고루 먹되 적게 먹고, 운동을 병행해야 건강한 다이어트가 가능하다”고 당부했다.

1359호 (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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