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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으로 부활 노리는 김형순 로커스 대표] 아시아의 픽사·드림웍스 부푼 꿈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통신장비업→엔터테인먼트→애니메이션... 첫 작품 2018년 개봉 예정

“10년 후 ‘아시아의 픽사(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등의 제작사)’나 ‘아시아의 드림웍스([슈렉] 등의 제작사)’가 있다면 그건 바로 한국에 있는 로커스일 것이다.” 김형순 로커스 대표가 실패한 벤처 1세대라는 오명을 딛고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화려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1990년 콜센터 장비업체 로커스를 창업해 코스닥 시가총액 2조원을 돌파하며 ‘벤처 신화’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2000년에는 최초의 기업형 엔터테인먼트사 싸이더스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부친은 DJ정부 때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김선길 전 의원이다.

김 대표의 화려한 명성은 2006년 500억원대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된 탓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07년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김 대표는 이듬해 광복절 특사로 사면됐고, 1년 만인 2009년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로커스를 만들며 재기를 노리게 됐다.

사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김 대표이기에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컴퓨터영상합성기술(CGI)을 앞세운 동명의 회사로 돌아온 것이 조금 놀랍기도 했다. 싸이더스 창업은 단지 잘 나가던 벤처기업이 사업다각화를 위해 눈을 돌린 경우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대학 시절 영화감독을 꿈 꿀 정도로 영화산업에 관심이 많았다”며 “좋아하는 일인데다 향후 전망까지 밝다는 판단이 서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로커스는 중국 투자사로부터 250억 원을 유치하는 등 콘텐트 업계에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최근 서울 성수동 로커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김 대표를 만나 그가 이끄는 새로운 로커스의 미래를 엿보고 왔다.

통신장비업에서 엔터테인먼트를 거쳐 이제는 애니메이션 제작까지 광폭 행보가 인상 깊다.

“처음 창업을 준비한 건 1989년 미국에서다. IT 분야를 들여다보며 그쪽 분야의 창업을 구상하게 됐다.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MBA)을 다니며 기술 분야 경영에 대해 공부를 했던 것이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항상 5~10년 후에 어떤 분야가 주목받을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남들이 다하는 일에는 흥미가 없다 보니 늘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일을 하려고 했다. 2000년 싸이더스를 만들 당시에는 사업을 너무 많이 벌인다는 지적도 있었다. 더구나 ‘엔터테인먼트가 하나의 산업이나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극장과 작은 제작사들이 별도로 존재했다. 싸이더스는 이전과 달리 ‘엔터테인먼트의 기업화·산업화·국제화’를 앞세웠고 그게 주효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성공했다. 사실 대학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것은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2년 반 동안 영화 공부를 하다가 경제·경영쪽으로 방향을 돌렸었다. 하지만 늘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싸이더스와 지금의 로커스를 만들게 됐다.”

애니메이션산업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매년 미국의 박스오피스 상위 20위 안에 들어가는 영화 중 대여섯편이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픽사가 디즈니의 주축이 된 시대다. 웰메이드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 가족들이 함께 보고 어른들도 감동하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학과가 100개 가까이 있고 각 나라가 이 분야를 키우기 위해 집중한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어로 된 영화를 제작할 때 예산 30억원짜리라면 관객 100만 명이 그걸 봐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만약 300억원짜리 영화를 만든다고 치면 관객 1000만이 들어야 성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예산 300억원짜리 영화는 독립영화에 속한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스타워즈] 같은 대작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스웨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흥행하기 어렵듯 우리의 정서가 해외에 통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만큼은 전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스토리와 작품성만 좋으면 자국의 배우를 기용해 모두 더빙해서 볼 수 있다. 우리가 글로벌 시장에 나갈 수 있는 문화적 상품으로는 애니메이션이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미국의 애니메이션 대작과 경쟁할 수 있을까.

“싸이더스를 운영할 때도, 통신장비업을 할 때도 그랬지만 항상 ‘왜 그걸 하니’라는 질문을 받았었다. 사람들은 항상 미래를 본다고 하면서도 지금 잘 되는 업종이 계속 잘 될 것이라는 생각만 한다. 남들이 안 하는 일은 ‘잘 안 되니까 안 하겠지’라고 단정 짓는다. 요즘 애니메이션은 굉장한 IT 기술을 필요로 한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은 엄청난 기술력을 갖고 있다. 현재 애니메이션의 강국은 일본이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2D 애니메이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본은 자국의 시장만도 1억 명 규모이기 때문에 내수로도 해결이 된다. 해외 진출의 요인이 많지 않은 것이다. 머지않아 박스오피스 1위 국가로 떠오를 중국의 경우 아직 고퀄리티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다. 결국 기술적 측면에서 할리우드를 따라잡을 수 있는 나라는 아시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탄탄한 이야기에 기술력을 갖춘다면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작품 준비만 벌써 7년째다.

“원래 첫 작품이 힘들다. 지금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토이스토리] [슈렉] [쿵푸팬더]도 처음 1탄이 나오기까지 몇 년씩 준비를 했다. 로커스를 운영하며 스토리가 완벽하게 갖춰질 때까지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처음 회사를 시작할 때 모인 인원이 30명이었는데 돈을 벌면서 제작을 준비해야 하니까 컴퓨터그래픽 기술로 광고 후처리 작업도 하고 캐릭터 상품도 개발했다. 기업은행의 애니메이션 광고 캐릭터 ‘기은센’, 에쓰오일의 캐릭터 ‘구도일’도 그 과정에서 만든 것이다. 지금은 인원이 220명 정도로 늘었다. 내부 작가들이 여러 가지 작품의 스토리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는데 첫 작품은 2010년 한국콘텐츠진 흥원에서 주최한 스토리텔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던 ‘빨간 구두와 일곱난쟁이’가 될 것 같다. 아직 중반 작업 중인데 내용을 다듬고 글로벌 감성에 맞게 손보고 예산 상황을 맞춰가며 준비하다 보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일단 공장처럼 파이프라인이 생기고 나면 픽사나 드림웍스처럼 매년 작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로커스도 매년 한 편씩 전 세계 배급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스튜디오가 될 것이다. 현재 계획으로는 첫 작품을 내년 말까지 완성해 2018년 개봉할 예정이다.”

목표가 있다면.

“목표를 세워두고 일하지 않는다. 본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해외로 진출한다는 계획 아래 그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좋은 인재도 많이 모았다. 디즈니 최초의 한국인 애니메이터로 유명한 김상진 이사도 올해 우리 회사에 왔다. 스토리가 탄탄한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 모든 연령대의 사람에게 사랑 받는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로 한국뿐 아니라 중국, 북미에서 성공하고 싶다. 10년 후에 아시아에도 픽사나 드림웍스와 같은 제작사가 분명 등장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에 있는 로커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1359호 (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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