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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덮친 트럼프 후폭풍] 유럽 전역에 포퓰리즘 득세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12월 4일 오스트리아 대통령 2차 선거,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 결과 주목

▎12월 4일 오스트리아에선 대통령 2차 선거의 재투표가 실시된다. 이번 재투표에선 무소속이지만 녹색당의 지지를 받는 알렉산데르 반데어벨렌 후보와 극우정당인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오른쪽) 후보가 대결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하면서 유럽 각국에서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힘을 얻고 있다. 유럽의 ‘트럼프 효과’다. 트럼프는 반이민과 자국민 우선주의, 반글로벌화와 자국산업 보호주의, 반개방과 보호무역을 외쳤다. 지식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이를 비난했지만 미국의 대다수 유권자는 ‘놀랍게도’ 그런 정책을 내건 트럼프를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트럼프는 포용과 화합 등 힘들지만 가치와 의미가 있어 가야할 길을 비난해왔다. 자유·평등·개방 등을 국가가 가야할 길이라고 외치는 기성 정치인을 비웃었다. 대신 대중이 원하는 달콤한 말과 기분 좋은 ‘속풀이형’ 정책을 제시해 표를 모은 것으로 분석된다. 포퓰리즘, 즉 대중영합주의의 전형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지구촌에 한 명만 있는 게 아니고, 그런 인물을 지지하는 나라가 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미 영국이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 뿐만 아니고 오스트리아·네덜란드·프랑스 등도 심상치 않다. 이탈리아는 물론 독일에서도 여러 가지 파문이 일고 있다.

유럽에서는 12월 4일에 주목한다. 이날 오스트리아에선 대통령 2차 선거의 재투표가 예정돼 있다. 이번 재투표에선 무소속이지만 녹색당의 지지를 받는 알렉산데르 반데어벨렌 후보와 극우정당인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가 대결한다. 지난 5월의 결선투표에서 반데어벨런 후보가 호퍼 후보에게 막판 역전승을 거뒀으나 개표 과정의 문제 때문에 법원으로부터 ‘무효’ 판정을 받고 다시 치르는 선거다. 현재 판세는 막상막하다. 만일 호퍼 후보가 오스트리아 대통령에 당선하면 서방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첫 극우 국가원수가 된다. 12월 4일이 유럽에 포퓰리즘 정치가 본격화하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되는 이유다.

‘오스트리아판 트럼프’ 나올까

호퍼는 유럽으로 오는 중동 난민을 막기 위해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무슬림은 입국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이미 들어와 있는 난민은 국경 밖으로 추방하는 배타적인 반난민 정책을 공약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도 공언하고 있다. 호프 후보는 인도주의를 앞세워 난민 수용에 우호적이거나 대통합과 연대라는 명분 아래 EU와의 협력 강화를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세력을 ‘기득권 세력’이라고 맹비난해왔다. 난민이나 EU에 들이는 돈을 자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며 ‘자국우선주의’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약에서 알 수 있듯 호퍼 후보는 트럼프와 판박이다. ‘오스트리아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트럼프가 거둔 의외의 대선 승리에 한껏 고무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원집정제를 채택한 오스트리아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제한적이다. 의회를 바탕으로 하는 총리가 정치적인 실권을 쥔다. 하지만 아무리 상징적인 자리라지만 명색이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자리를 극우 정치인이 차지하게 된다면 대사건이다. 더구나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일부분으로 전 범국의 굴레를 지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 극우 국가원수를 배출하는 것은 유럽 전체의 정치 지각을 뒤흔드는 중대한 결과를 빚을 수 있다.

같은 날 이탈리아에서는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진다. 세계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비대한 이탈리아 의회를 개혁하기 위한 국민투표다. 이탈리아는 상하원의 양원제를 운영하는데, 상원과 하원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고 서로 동등한 권한이 있다. 이에 따라 같은 법안을 두 개의 의회가 두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심의하고 통과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에 따라 이런 정치 시스템은 이탈리아의 고질적인 정쟁과 분열, 그리고 비효율의 근원으로 지적돼왔다. 이런 내용의 헌법 개정 필요성은 지난 30년 간 이탈리아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마테오 렌치 총리는 2014년 상원개혁법을 통과시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321명이던 상원의원을 100명으로 줄이고 상원의 입법권한을 정부신임, 개헌투표, 지방자치 관련법, 국제협약으로 제한했다. 2015년에는 선거법을 개정해 하원개혁에도 나섰다. 40% 이상을 득표한 정당에 하원 630석 중 340석을 부여해 안정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중소정당의 난립과 의회 마비를 막는 획기적인 장치다. 하지만 이는 헌법까지 고쳐야 하는 사안이라는 지적이 일자 이번에 국민투표에 부친 것이다.

마테로 렌치 총리의 이탈리아 상하원 개혁 시도

2014년 2월 총리에 오른 렌치는 강력한 개혁 정책으로 인기를 얻어왔다. 노동법 개정으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고용주가 정규직을 고용하면 첫 3년 간 세제혜택을 받으며 직원들의 근무 기간이 길어질수록 고용주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를 시행해 국민의 인기를 끌고 있다. 안정화법을 제정해 소득구간별로 급여소득세를 감면해 실질 수령액이 늘어나게 했다. 퇴직금 조기 수령을 허용해 가계소비를 촉진하는 정책을 추구했다. 기업의 생산 활동에 부과되는 지방세를 10% 줄이고, 기업에서 생산설비에 투자하면 투자금액의 50%를 돌려주는 제도를 시행해 기업의 투자심리를 북돋우는 정책도 시행했다. 공기업과 사법 개혁에도 착수했다. 이런 고용과 투자 촉진 정책에서 성공을 거둔 렌치는 이탈리아의 고질적인 고비용 행정구조를 개혁해 효율을 높이는 핵심 사안으로 의회 개혁을 위한 국민투표에 나선 것이다.

이번 국민투표에는 중도좌파로, 중도우파와 손잡고 중도파 연립정권을 이끌고 있는 렌치 총리의 정치 생명이 걸렸다.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이탈리아 정부를 ‘개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온 렌치 총리는 이번 국민투표에서 패배하면 총리직을 그만두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차기 총선은 2018년으로 예정돼 있다. 만에 하나 렌치 총리가 이번 국민투표에서 패배해 물러나면 조기총선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럴 경우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극우정당인 제1야당 오성운동의 차기 지도자로 꼽히는 루이지 디 마이오 의원이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오성운동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수도인 로마의 시장과 제4도시인 토리노의 시장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다. 이번 국민투표를 통해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이끌어 세력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탈리아 북부 부유한 지역의 분리 독립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또 다른 극우정당 ‘북부동맹’도 약진이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 등 우파 정당들도 이번 국민투표를 렌치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로 보고 그를 끌어내리기 위한 국민투표 부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민자가 국민의 일자리를 위협해 실업률이 높아졌다며 주말마다 전국 곳곳에서 집회를 여고 국민투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브렉시트 투표에 총리직을 걸었다가 국민의 포퓰리즘적인 투표로 브렉시트가 통과되면서 정계에서 은퇴한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브렉시트는 캐머런의 총리직 사퇴에 이에 이은 정계 은퇴로 끝났다. 하지만 렌치의 사퇴는 이탈리아에 극우 총리의 등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한 도박으로 평가된다.

내년 9월이나 10월에 총선을 치르는 독일도 트럼프 효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선거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4선 총리에 도전한다. 메르켈의 측근인 노르베르트 뢰트겐 전 독일 환경부 장관은 11월 15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메르켈은 자유민주주의 질서 강화에 결연히 헌신할 의지를 갖고 있다”며 “이를 위해 내년 총리직 4선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5년 처음 총리로 선출된 메르켈은 2013년 3선에 성공하며 지금까지 11년째 연임 중이다. 튼튼한 경제, 도덕적인 국가 이미지 확립 등의 치적으로 지지율이 한때 80%에 이르렀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다만 최근 들어 메르켈의 난민 수용 정책이 독일 국민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지지율이 다소 떨어지고 있다. 떨어졌다고 해도 최근 들어서는 54%가 최하선이다. 문제는 메르켈보다 메르켈의 소속 정당인 기민당(CDU)의 지지율이 29.5%까지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소속 정당보다는 메르켈의 인기가 여전히 높은 셈이다. CNN은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 등 국제 사회에서 이변이 잇따르면서 오히려 독일에선 안정 희구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메르켈의 총리 4선이 무난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포퓰리스트들이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보며 자신감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적인 트라우마가 있는 독일에선 극우 세력이 커밍아웃을 하면서 세력을 불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트럼프 효과가 그나마 독일에서는 비교적 힘이 빠지는 이유다. 이에 따라 메르켈은 ‘자유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11월14일 “‘팍스 게르마니카(독일이 주도하는 평화로운 세계)’가 밝아오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영국이 EU를 탈퇴하고 미국에선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하는 포퓰리즘의 시대에 메르켈의 가치가 더욱 돋보인다는 뜻이다. 강력한 경제와 높은 도덕성과 이상, 탄탄한 정치적 지지를 바탕으로 독일을 이끌고 있는 메르켈이 서구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최전선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내년 총선 치르는 메르켈마저 패배한다면…


▎12월 4일 이탈리아에서는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진다. 극우파 정당 등은 이번 국민투표를 렌치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로 보고 그를 끌어내리기 위한 국민투표 부결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부결이 확실해 보였던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의외의 결과를 내고 당선이 90% 이상 확실하다던 클린턴이 패배한 것처럼 독일에서도 예상을 깨는 이변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독일에선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몸집을 불려가는 속도가 만만치 않다. 3년 전인 2013년 창당한 이 정당은 반이민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로선 중앙 정계에서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지방 의회에선 약진하고 있다. 독일 전체 16개 주 가운데 10개 주에서 145개의 지방의회 의석을 차지할 정도다. 아직은 정권을 좌우할 정도의 세력은 아니지만 유권자의 숨은 분노를 자극하다 보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영국도 미국도 기성 정치인의 한계를 파고들면서 유권자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포퓰리즘 세력에게 불의의 한방을 쓰러졌는데 독일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만일 메르켈이 다음 선거에서 이런 포퓰리즘 세력에 무너진다면 이는 단순히 독일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자유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가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3월 총선이 예정된 네덜란드에서도 이변의 가능성이 조금씩 감지된다. 극우정당인 자유당이 1·2위를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스 대표는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에 고무돼 있다. EU 탈퇴를 주장하는 이 정당의 반이민· 반글로벌화 정서는 트럼프와 일맥상통한다는 평가다. 빌더스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샤이 공화당’ ‘샤이 트럼프’가 많았다는데 주목한다. 공화당이나 트럼프를 지지하면서도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하다가 투표장에서 한 표를 던져 대세를 뒤집은 유권자를 가리킨다. 빌더스는 극우사상을 지지하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이를 밝히지 못하는 ‘샤이 자유당’의 숨은 표가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

네덜란드에서도 극우정당 약진

내년 4월 23일에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5월 7일 2차 결선 투표가 예정된 프랑스에서도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 고무된 세력이 있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 대표인 마리 르펜 대표다. 지난 대선처럼 내년 대선에서도 르펜 후보의 결선투표행이 유력한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프랑스에선 ‘공화국 연대’라는 전통이 있어 르펜이 대통령이 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극우후보가 결선투표에 올라가면 1차 투표에서 탈락한 세력이 좌파든 우파든 결선투표에 오른 다른 후보에 표를 모아줘서 극우 정치인이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는 무언의 투표 성향이다. 하지만 브렉시트에 이어 트럼프의 당선을 보면서 유럽에선 르펜의 깜짝 승리가 불가능하지는 않다며 불안해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트럼프가 열어버린 ‘포퓰리즘 판도라의 상자’다.

지금 상황을 1920년대의 재현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경제는 힘들도, 대중은 기성 정치인과 사회체제에 실망하거나 분노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의 원인을 이민자나 자유 무역에 돌리는 선동적인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다. 바로 이탈리아에서 베네토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정권을 장악(1924년)하고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가 집권(1933년)한 전야와 너무도 닮은 상황이다. 민주주의가 이런 불행을 막아줄 것이라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히틀러도 바이마르 헌법 아래에서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선거로 집권해서 독재 권력을 강화하면서 야만적인 전쟁과 학살을 저질렀다. 메르켈을 비롯한 유럽의 합리적인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기성정치인과 사회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불만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고 이들을 도닥거려 영국이나 미국 같은 ‘분노조절쟁애’를 일으키지 않도록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된 이유다.

1362호 (20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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