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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의 ‘노벨경제학자의 은밀한 향기’ (34)] 빚에 짓눌린 현대인 쿼바디스 가계경제 

 

조원경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
모디글리아니의 생애주기가설... 평생 벌 소득에 맞춰 합리적으로 소비해야

샐러리맨의 삶은 고달프다. 늘 돈에 쫓긴다. 소수의 샐러리맨을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비슷한 구조다. 그래서 이른바 신용, 쉬운 말로 빚이란 걸 이용한다. 한국에서 가계빚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물론 빚으로 무언가 투자도 하고 자산도 증가한다면 문제는 다르다. 특히 빚이란 게 경제가 제대로 성장할 때는 증가하는 경향이 있어 큰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빚 이상으로 소득이나 이득을 번다면 말이다. 문제는 생존을 위해 만성적으로 빚을 지는 구조다. 빚이 빚을 부르는 경우다. 빚 안 지고 살아가는 일은 개인에게도 중요하지만 사회에도 무척 중요하다. 역사 속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분수를 지키지 않고 빚 때문에 낭패를 당하는 공동체와 개인이 자주 등장한다.

빚을 부추기는 사회

통상적인 현대인의 모습은 어떠한가? 현대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욕망을 빚으로 해결하는 데 너무나도 익숙하다. 카드 긁어 다음 달 수입을 댕겨 쓰고 월급날에 카드빚 청산으로 쩔쩔맨다. 미국 사회는 이를 부추기기도 한다. 현금만 쓰고 카드 같은 신용거래를 하지 않으면 신용등급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국가가 빚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도 2000년대 초 정부가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 카드를 무분별하게 남발해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부자도 때로 빚을 너무 져서 잘못된 삶을 살기도 한다. 2008년 8월 50세의 영국 자산가 크리스토퍼 포스터는 딸과 아내를 총으로 죽이고 집을 불태우고 자살한다. 오일 관련 기술로 잘나가던 그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늘 재정적인 문제에 쫓겼다. 그는 죽을 당시 620만 달러의 빚을 진 것으로 밝혀졌다.

부자도 그런데 우리네 일반인의 삶은 어떤가? 한국인 상당수는 집을 사기 위해 빚을 진다. 은행에서 담보로 산 아파트는 소유자만 본인이지 가격이 하락하거나 제때 돈을 갚지 못하다면 언제든지 은행 것이 된다. 집이 본인 소유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은행 것이라는 말이 들리는 이유다. 우리는 무분별한 주택 구입이 낳은 빚의 무서움을 미국발 금융위기로 목도했다. 미국의 중산층을 보자.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집과 차는 화려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빚으로 사는 빚쟁이가 적지 않다. 당장 구할 수 없는 집을 모기지를 통해 구입하고 평생 빚을 갚기 위해 고단하게 산다. 모기지(mortgage)는 라틴어로 죽음을 말하는 ‘모르트(mort)’와 약속을 말하는 ‘게이지(gage)’가 합쳐진 것이다. 바로 ‘죽음의 약속’이다. 결국 자신의 경제 범위를 벗어난 생활을 할 경우 위기를 각오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준다. 참 묘한 여운이 느껴지는 섬뜩한 말이다.

제네바에서 1시간가량 차를 타고 레만호가 내려 보이면서 아기자기한 포도밭이 너무나 예쁜 브베로 가보자. 미국 배우 찰리 채플린의 동상에 기대어 한 컷의 사진을 찍고 생각에 잠겨 보자. 그는 말한다.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러므로 나는 멀리 보려고 노력한다.”

그의 말이 가슴 깊이 다가온다. 빚에 허덕여 절망감에 빠진 인물들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멀리 보고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할 것이다. 나라 잃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던 폴란드 국민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 부은 작가 헨릭 시엔키에비츠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쿼바디스(Quo vadis,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썼다. 작가는 마지막을 브베에서 보냈다.

빚이란 게 뜻하지 않은 국제시장 환경에서 화근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몇 년 전 국가 부채 문제에서 비롯한 유럽의 재정위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스위스 중앙은행은 불안한 유로화와 연계된 최저 환율제를 폐지했다. 그 결과 유로당 1.2프랑이 1.0프랑 수준으로 떨어져(스위스프랑의 가치 상승) 스위스 프랑으로 대출받은 다른 나라들의 채무가 자국 화폐로 표시할 경우 엄청난 증가로 나타나게 됐다. 유럽 국가들은 대출을 받을 때 유로나 스위스프랑으로 표시해 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 [쿼바디스] 작가의 고국인 폴란드의 경우 가계부채의 37%가 스위스프랑으로 표시한 부채인 것으로 추정돼 가계의 불만이 커졌다. 폴란드의 약 55만 가구는 갚아야 할 빚이 난데없이 늘어난 것이다. 크로아티아와 폴란드, 체코 등은 스위스프랑의 가치가 안정돼 있고 금리도 낮아 얼마 동안 스위스 은행들로부터 대출을 받아 주로 부동산에 투자했으나 스위스프랑의 가치 상승으로 자국 화폐로 표시한 채무가 증가해 곤란을 겪게 된 것이다.

세계화 시대 통화가치의 변화가 빚을 줄이기도 늘리기도 한다. 빚으로 채워진 욕망이 세계와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의 상태는 ‘쿼바디스’다. 세계적으로 과다한 빚 문제를 해결하려면 구조적으로 얽힌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그 과정은 마치 길을 잃은 고통이 될 수도 있다. 2008년 금융위기도 정체된 가계의 실질소득이 부풀어 오른 가계부채를 감당하기 부족한 상황에서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는 이름의 가계부채에 투자한 금융회사의 파산으로 세계에 공황장애를 일으켰다. 그래서 2008년 금융위기는 1970년대 이후 증가 일로에 있던 소비자 신용의 한계와 위험성을 경고한다.

가구당 순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빚 비중 1위는 덴마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가구당 순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빚의 비중을 보면 덴마크가 1위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금리에 치솟은 높은 집값이 원인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집값 상승은 가히 가공할 만하다. 한국도 전세보증금을 합치면 가계 빚은 증가한다. 스위스와 스칸디나비아의 부동산 붐은 초저금리 때문이다. 그러나 이자율이 오름세로 전환할 경우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가계부채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올 수 있다. 미국·일본·독일·영국 등 주요 선진국의 가계부채가 감소세로 전환한 반면 한국의 경우 가계부채의 질이 양호하다지만 양은 늘고 있다. 개인소득 중 소비·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을 뜻하는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빚이 빠르게 늘고 있어 경고등이 깜박인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OECD 국가 평균을 상회한다. 이 같은 부채 증가 속에서도 가계가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유례없이 낮은 이자 덕이다. 가처분소득의 상당 부분을 원리금 갚는 데 사용하는 상황에서 살림이 쪼그라들고 소비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민간소비 부진이 세계 경제가 나빠 발생하는 경기적 요인인지, 원리금 상환 부담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인지가 그래서 논란거리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 어지러운 생각에 빠진 우리에게 묻고 있다. 쿼바디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압도적으로 높다. 이와 달리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최하위권 수준이다, 높은 노인 빈곤율은 높은 노인 자살률로 이어진다. 고령화로 실버산업이 유망하다지만 노인들의 텅 빈 주머니를 생각하면 과연 그럴까 싶다. 고독사가 많은 일본에서 편의점에서 일하는 노인의 삶이 고달프게 조명되곤 하지만 엄연히 일본 노인들의 주머니는 우리나라보다 두둑하고 노인 복지 수준도 높다.

이러한 빚에 허덕이는 삶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경제학자를 모셔보자. 미국의 경제학자 모디글리아니는 생애주기가설(평생소득 가설)을 수립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 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현재 소득에 맞춰 소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평생의 소득을 고려해 지금의 소비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과연 사람들이 그렇게 합리적으로 소비행위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모방소비가 만연하고 빚을 얻어 분수에 넘치는 소비를 하는 경우도 흔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엄마의 마음도 합리적인 것 같지는 않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돈을 버는 시간은 한정돼 있지만 돈을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없다. 모디글리아니에 따르면 나이가 들어 소득이 없을 때도 생활의 질을 유지하려면 장기적인 시각에서 소비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의 이론과 무척 다르다. 40대 가구의 가계소득은 2003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주머니가 텅 빈 우리 어르신들의 슬픈 자화상은 또 어떤가. 높은 주거비와 자식에 대한 과도한 교육열이 조기 은퇴와 더불어 빈 주머니의 원인이 아닌지 곱씹을 필요가 있겠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부를

빚으로 일군 세계를 향해 모디글리아니는 경고하고 있다. 제대로 된 생애주기에 걸맞은 소비가 답이라고 말이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먼 미래까지 바라보고 소비를 결정하는 것이 옳다. 삶의 더 큰 효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물론 소비자의 합리성을 떠나서도 모디글리아니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다. 예를 들면 이달에 300만원을 쓰고 다음 달에 한 푼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이달과 다음 달에 각각 150만원을 쓰는 것이 훨씬 만족스러울 수 있다. 생애주기별 소득을 감안한다면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시기에 저축을 해서 소비를 뒤로 미뤄둘 필요가 있다. 노동소득이 증가하는 청년기나 장년기에는 소득 이하로 소비를 억제해 차액을 저축해 자산을 축적하고, 노년기에 들어 소득이 줄어들면 저축을 소비해 소비수준을 유지하는 게 정상이다. 이와 같이 개인의 소비행동은 단순히 그때그때의 소득수준을 바탕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평생 동안 벌어들인 소득, 즉 ‘평생소득’을 바탕으로 평생 동안의 소비 흐름에서 얻어지는 효용이 최대가 되도록 결정된다는 것이 모디글리아니의 주장이다. ‘노후를 위한 저축’은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어야 할 세대를 위한 불가피한, 운명 같은 보험이다.

생애소득가설은 케인스가 주장한 소비가 현재의 절대소득의 함수라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구상한 것이다. 케인스의 절대소득가설의 핵심은 당기 소득의 절대적 수준이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실생활에서 이러한 예는 많지는 않다. 실제 생활에서 소비가 당기 소득의 절대수준에 영향을 많이 받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날 벌어 그 날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보자. 일용직 노동자들은 그 날 돈을 많이 벌면 그 날 소비를 많이 하고 그 날 돈을 많이 못 벌면 소비를 줄이는 성향을 가져 케인스의 절대소득가설에 부합한다. 그러나 일용직 노동자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케인스의 절대소득가설에 부합하지 않는다. 모디글리아니는 사람들의 생애를 통해 소득이 높은 시기에서 낮은 시기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생 동안 소득이 변화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은퇴다. 물론 도중에 실직하는 경우도 있고 요즘 같이 구직이 어려운 청년의 경우는 캥거루족으로 살아가는 기간이 길 수밖에 없다. 저축을 하기는커녕 부모 돈에 의존하게 된다. 여하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퇴 후에는 소득이 감소하리라 예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비 측면에서 보았을 때 생활수준을 대폭 낮추기를 바라지 않는다. 은퇴 후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직업을 갖고 있는 동안 저축을 하고 올바른 재무설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게 모디글리아니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지혜로운 삶의 향기이다. 우리는 점점 현재의 직장에 계속 다닐 수 있다는 기대를 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정년이 보장되는 박봉의 공무원 시험에 무수한 젊은이가 몰리고 넘쳐나는 수의 50대 이상이 저임금 일자리를 찾아 전전하는 모습에서 재무설계가 과연 가능할까란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더 나은 행복과 자존감을 위해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재무설계의 중요성은 강조될 수밖에 없다.

초저금리에 취해 현재의 만족 중시

우리가 제대로 된 재무설계를 하고 있지 않음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보자.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한국 40대의 월평균 소득의 지출비율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비율인 80%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어느 연령대보다 저축을 위한 여유자금이 적다는 말이기도 하다. 40대는 노후 저축이 가장 미흡한 연령대다.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40 대 비(非)은퇴자 가구의 월 생활비에서 자녀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는다. 이와 달리 노후를 위한 저축은 자녀 교육비에 투자하는 금액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지출 우선순위에서도 노후 저축은 여행·외식 등의 여가 비용보다 처진다. 노후 저축에 뛰어드는 시기 또한 너무 늦다. 많은 사람이 노후 준비를 시작하는 이상적인 시기를 ‘취업 직후부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70%가 넘는 대다수의 은퇴자가 ‘자녀 교육이 끝나면서’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 자녀 교육이 끝나는 시기는 퇴직과 함께 소득이 하락하는 시기로 노후 저축을 하고 싶어도 여력이 없을 확률이 높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현재의 만족을 내일의 희망보다 중시하게 됐다. 치열해진 경쟁 속에 낙오된 실패자의 모습이 싫어 현재의 모습을 부풀리기도 하고 부풀려진 모습에 스스로 도취되기도 한다. 지금 받을 수 있는 적은 액수의 현금을 언젠가의 많은 돈보다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현재에 중독돼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오늘 저축하고 내일 소비하는 것’보다 ‘오늘 쓰고 내일 갚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현재 쓰는 것이 쉬워진다면 오늘 쓰고 내일 쓰고 모레까지 쓰고 결국 갚으라고 할 때까지 쓸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가설에 따르면 현재의 자신은 모든 즐거운 일은 현재에 하고 모든 괴로운 일은 미래로 떠넘기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재무상태를 망치면서도 버틸 때까지 버티는 벼랑 끝 전술로 부채를 사용한다. 현재의 달콤함의 유혹이 너무나 강력하고 미래의 든든함은 그리 큰 유인이 되지 못해 안타깝다. 그동안 정책적으로 유지된 낮은 이자와 ‘부동산 불패’, 자산가격 상승 기대에 우리는 가계의 재무건전성이 얼마나 위험에 처했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이 순간 금리가 올라간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자. 제대로 된 재무관리 하지 않고 남을 탓해 봤자 소용없다. 뒤늦은 후회다. ‘나는 소망 한다 내게 금지된 부를’이라고 부르짖어도 자괴감으로 자존감을 낮추는 결과만 부를 뿐이다. 물론 높은 학자금 대출, 주거비, 결혼비용, 모든 게 어려워진 현실을 도외시하자는 건 아니다.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늘어난 수명에 맞게 생애주기가설에 맞는 소비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자기 삶의 주인인 자의 1차적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쿼바디스 가계경제여.

프란코 모디글리아니(1918년 6월~2003년 9월) - 198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케인스학파의 석학으로 이탈리아 로마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8년 무솔리니 정권의 반유대인 정책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1939년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미국으로 이주했다. 모딜리아니의 연구활동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비이론인 ‘라이프사이클 가설’이다. 소비는 전 생애에 걸쳐 일정하거나 혹은 서서히 증가하는 형태를 보이지만 소득은 일반적으로 중년기 때 가장 높고 유년기와 노년기에는 낮다. 당연히 저축률은 중년기에 높고 유년기나 노년기에는 저축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마이너스 저축까지 하게 된다.

조원경 -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 물가, 복지, 소비자, 국제금융, 통상, 대외경제 분야에서 일했다. 미주개발은행 이사실에서 한국 대표로 근무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이 있다.

1363호 (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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