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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 경제장관-경제 5단체장 간담회에서 무슨 일이] “경제인이 무슨 잘못이냐, 모두 정치가 문제 아니냐” 

 

김유경·염지현 기자 neo3@joongang.co.kr
정부·정치권 성토장으로 변해... 임종룡 금융위원장, “기업도 달라져야” 질타

▎지난 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경제장관-경제 5단체장 간담회. 왼쪽부터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차영환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유 부총리, 주형환 산업자원부 장관.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다음 날인 10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오전 11시 열린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대내외 불안이 과도한 심리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며 경제문제를 서두에 꺼냈다. 회의 직후인 12시 30분,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5단체장을 대한상공회의소로 불러모았다. 간담회는 비공개로 열렸다. 회의 직후 기획재정부는 간략한 보도자료를 냈다. 유 부총리가 “정부를 믿고 차질 없이 투자와 고용을 유지해달라”고 했고 경제계는 “경제의 활력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 “대기업 수사받으면 피해 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가 간담회에 참석한 복수의 관계자를 취재한 결과 경제 5단체장은 정부와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규제 완화를 강도 높게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원한 한 간담회 참석자는 “재계 단체장들이 정치문제는 정치로, 경제문제는 경제로 풀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기업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인호 무역협회장과 박병원 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이 참석했다. 정부 측에서는 유 부총리와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자리했다.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날 김인호 무역협회장은 “정치권에 경제인들이 할 말을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한다”며 “당신(정치인)들이 와서 경제를 해보라는 정도의 메시지는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날 행사에 불참하면서 경제 5단체의 좌장 역할을 맡았다. 또한 박병원 경총 회장은 “국민은 며칠만 지나면 정치와 경제는 별개라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고 한다. 강호갑 중견련 회장은 “대통령 탄핵과 사드 배치 문제 등 정치적 문제가 기업을 옥죌 가능성이 있다”며 “경제인이 무슨 잘못이냐, 모두 정치가 문제 아니냐”고 지적했다. 유 부총리는 이런 의견에 대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질서 있게 수습해야 하며, 이런 의견을 호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가 요구하는 법안 처리가 국회의 문턱을 못 넘는 데 대한 비판도 있었다. 박 회장은 “여러 부문별 정부 추진 사업 중에 실천된 것이 있느냐”며 케이블카와 호텔 설립 관련 규제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그는 또 영리병원과 관련해 “현재 제도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치료는 의사가, MRI(자기공명영상) 등의 서비스는 펀드 등 투자자가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는 전언이다.

직무성과급제 도입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다른 참석자는 “현실적으로 국회 통과가 어렵다면 현행법과 예산의 틀 안에서 가능한 부분을 찾아달라”는 박 회장의 발언을, “탄핵이란 큰 흐름을 놓치지 말고 경제단체가 힘을 모아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마련해야 한다”는 강 회장의 주장을 전했다. 박 회장은 “제조업과 수출만으로는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보건복지부·문화체육관광부까지 고용을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특히 최순실 사태로 문화·체육 분야의 고용이 줄어들지 않도록 힘을 써 달라”고 덧붙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임종룡 질타에 분위기 싸늘해지기도

최순실 사태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대기업을 사법당국이 처벌하겠다고 나서면서, 국제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은 국회에서 법인세 인상 논의가 사그라진 데 대해 안도감을 표하면서도 “대기업이 수사를 받으면서 피해가 클 수 있다”며 “친기업 환경을 조성할 정책을 추진해 달라”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미르재단에 낼 돈은 있으면서 법인세를 깎아달라고 하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책 때문에 국회에 갈 수가 없다”며 “언론이든 특검이든 정부 측이든 기술적으로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런 경재계의 성토에 정부 측 참석자들은 1시간 내내 수세적인 입장이었다. 다만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요즘 야당 의원들이 장관도 만나주지 않는다”며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국민은 기업에서 어떻게 돈이 나가는지 다 알게 됐을 것”이라며 기업의 책임을 지적했다고 한다. 임 위원장은 “시행령으로는 한계가 있다. 법을 올바르게 집행하려면 의원입법으로 가야 한다”며 “(경제 5단체가) 아무리 성명을 내고, 언론에 얘기를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했다. 또한 “(재계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의 대정부·국회 로비 방식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토론회 참석자는 “임 위원장의 말을 들은 김인호 회장 등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라는 것이냐고 받아쳐 분위기가 냉랭해졌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유 부총리가 임 위원장에게 “그리 말하면 되겠느냐”고 다그쳐 분위기 악화를 막았다는 후문이다.

한편 최근의 정치권 문제가 사회의 권위주의적인 문화에서 비롯됐으며, 이에 대해 기업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박성택 중기중앙회 회장은 “최근 자영업자의 파산이 서서히 나타나는 등 좋지 않은 조짐이 보인다”며 “정치권의 권위주의가 혹시 기업에도 물들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인호 회장도“(기업이) 투명하지 않았던 점이 있지 않았나 스스로 깊이 반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글로벌 기업가 정신으로 경기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1365호 (201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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