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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반퇴의 정석 (28)] 이혼인 듯, 이혼 아닌 이혼 같은 ‘졸혼 시대’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dongho@joongang.co.kr
독립적인 삶 택하는 부부 늘어... 경제력 뒷받침 없이는 낭패

연예인들의 잇따른 졸혼(卒婚) 고백이 화제다. 일본에서는 수년 전부터 이혼한 건 아니지만 사실상 결혼을 끝내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60~70대 부부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한국에도 졸혼 현상이 슬슬 나타나고 있다. 결혼 상태를 사실상 끝낸다는 의미에서 해혼(解婚)이라고도 한다. 유래 없는 장수시대가 불러온 결혼생활의 신풍속도다. 한 집에서 각방을 쓰는 식으로 사실상의 졸혼 생활을 하는 부부도 있다.

이런 상황은 은퇴한 부부가 하루 종일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면서 발생하기 쉽다. 갑자기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갑갑하고 불편해질 수 있어서다. 사실 부부라도 하루에 대화 시간은 길지 않다. 아침에 집을 나와 해가 저물어 귀가하기 때문에 직장 동료와의 대화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사실 부부도 독립적 개체이기에 생활습관이나 생각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은퇴한 부부가 하루 종일 함께 지내면 이런 생활의 변화 때문에 서로 불편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졸혼은 이런 배경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부부가 이혼하지 않았지만 서로 얽매이지 않고 각자 독립적으로 생활한다는 얘기다. 아예 따로 거주하면서 평소 각자 생활을 하다 집안에 생일·결혼 같은 대소사가 있을 때만 만나거나, 한 집에 살아도 독립적으로 지내는 소극적인 졸혼도 적지 않다고 한다.

과거에는 없던 이런 현상은 백세시대가 되면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2015년 기준 한국의 기대수명은 남녀 평균 82.1세로 증가했다. 지난해 출생한 남자는 79세, 여자는 85.2세까지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대 질병이나 사고를 당하지 않으면 실제 기대수명은 훨씬 길어진다. 환갑 잔치는 거의 자취를 감췄고 칠순이나 팔순 잔치도 간략하게 치르고 오래 사시라는 의미에서 구순 잔치를 하는 집안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남녀간 기대수명 차이는 줄어드는 추세로 나타났다. 한국 남자와 여자의 기대수명 격차는 1985년 8.6세에서 지난해 6.2년으로 좁혀졌다. 부부가 말 그대로 ‘백년해로’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졸혼은 이러한 인간 생태계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형태든 결혼에 얽매이지 않게 되면 인생이 훨씬 자유로워질지도 모른다. 아예 결혼하지 않는 싱글족이나 결혼을 끝낸 돌싱도 나홀로 살기의 장점을 선택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졸혼에 직면하거나, 스스로 선택한다면 그에 맞춘 대비와 새로운 인생 설계가 필요하다. ‘쿨’해 보이지만 졸혼에 숨겨져 있는 리스크도 놓쳐선 안 된다. 노후를 더 황량하고 고독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소일거리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졸혼은 이혼과 다르기 때문에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경제적 부담은 달라질 게 없다. 나 홀로 귀농·귀촌이라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자녀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되면 졸혼보다는 백년해로가 낫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처럼 말이다. 이들 부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76년간 일생을 함께했다. 이들은 개인의 자유보다 소박한 부부의 삶이 더 행복하다는 걸 보여줬다. 어느 쪽을 택하든 장수는 노후의 결혼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백년해로든 졸혼이든 건강과 노후생활자금에 대한 준비는 빈틈이 없어야겠다.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dongho@joongang.co.kr).

1365호 (201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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