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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경제 전망 | 신흥국 경기 반등할까] ‘님아, 그 돈을 빼지 마오’ 신흥국, 美 금리인상 전전긍긍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트럼프 당선 후 비관론 확산 … 러시아·인도는 전망 밝아

▎미국 캘리포니아와 멕시코 사이에 있는 국경 지역의 모습.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등장으로 멕시코 같은 신흥국들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 사진:중앙포토
2017년은 신흥국 시장은 험난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행정부의 등장에 직격탄을 맞는 첫 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당선 직후 심층 분석에서 “신흥국일수록 트럼프 행정부가 펼칠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악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며 그 대상으로 멕시코·칠레·터키·필리핀 등을 지목했다. 짧게는 4년(트럼프 단임), 길게는 8년(재선 성공)인 ‘트럼프 시대’엔 일부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신흥국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들 신흥국이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해외 투자자들이 트럼프 리스크에 부담을 느껴 발을 빼는 경우, 즉 자본 유출이다.

트럼프 당선 직후 열흘 동안 110억 달러 유출


실제 트럼프 당선 직후, 주요 신흥시장의 자본 유출 러시가 시작되면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 직후 열흘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아시아의 신흥국에서 빠져나간 자금만 110억 달러(약 13조원)에 달했다. 중남미의 금융시장도 요동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트럼프의 당선 이전까지만 해도 신흥국에 대한 2017년 시장 전망은 우호적인 편이었다. 연초 이후 소비재 가격의 안정세에 신흥국 통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대규모 자금이 신흥국에 유입됐다. 여기에 신흥국들은 세계적인 저성장 추세 속에서도 더 성장할 잠재력을 갖췄다는 평이 대세였다. 또한 신흥국 정부들은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세간의 기대에 부응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하면서 이 모든 전망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트럼프는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로 미국의 이익 극대화를 노린다. 외교적으로 관계가 전보다 악화하더라도 별 위협이 못 되는 대부분의 신흥국들이 최우선 타깃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프랑스 은행인 소시에테제네랄은 2016년 11월 보고서에서 “신흥국들이 자본 유출 압박에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대대적인 긴축에 돌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의 당선이 종전까지 신흥국들 사이에 흐르던 통화 완화의 기조 대신 긴축 기조를 유발했다는 얘기다.

긴축 맞대응에도 신흥국들은 한동안 자본 유출 쓰나미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니라지 세스 아시아채권운용 책임자는 ‘2017년 아시아 투자 전망’ 보고서에서 “예상보다 빠른 미국의 정책적인 움직임과 달러화 강세로 신흥시장에서 자본유출 압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긴축이 근본적으로 자본 유출 러시를 막을 순 없다는 것이다. 일본 미즈호은행에서 신흥시장을 전담하는 후카야 마사카쓰 트레이더는 “트럼프의 경기 부양과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상당수는 달러화 강세로 이어져 신흥국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비관론을 내놓는 데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공약만 작용한 것이 아니다. 트럼프가 내놓은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공약도 한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이 공약으로 미국 경기의 회복 기간이 연장되면서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고, 그 과정에서 글로벌 투자 자금이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신흥시장 자본 유출이 계속되는 현상이 도미노처럼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신흥시장에 부정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일반적으로 신흥국의 경제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펴낸 ‘해외 및 국내 통화정책 충격이 신흥시장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신흥국 금리는 0.05%포인트 정도 연쇄적으로 오른다. 보고서는 “신흥국 경제는 자국의 금리 인상보다는 미국의 금리 인상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가이 스티어 소시에테제네랄 신흥시장전략 책임자는 “많은 투자자가 신흥국에 투자하는 것을 비관적으로 보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했다. 바쿰 전략가도 “그간 선진국의 자본 흐름이 신흥국의 경기 개선을 주도해왔다”며 “신흥시장 전망을 낙관할 수 없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그는 “신흥국은 이미 자본 유출로 금리가 뛰어오르고 있다. 앞서 신흥국의 통화·채권·주식에 대해 ‘비중확대’ 의견을 낸 바 있지만, 이젠 모든 신흥국 자산에 대해 비중 축소 의견을 내야 할 차례”라고 지적했다.

신흥국의 미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대체로 높다는 점도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오온수 현대증권 연구원은 “베트남처럼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크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 흑자 비중이 큰 나라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재정 상태가 열악한 신흥국은 예외 없이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고디언 키멘 모건스탠리 통화전략가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전망이 어두운 나라로 꼽았다. 그는 “두 나라는 다른 신흥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재정 상태가 안 좋다”며 “국채 시장이 미국의 금리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투자자들이 외면하면서 자본 유출 쓰나미를 맞을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신흥국에 암운이 드리운 것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이 오히려 호재로 여겨지는 나라도 있다.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후보자 시절부터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좋은 지도자’로 치켜세우면서 유독 호의를 보였다. 당선 후에도 “집권하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우선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푸틴에게 인간적 호감을 가졌든, 혹은 러시아와 전략적으로 친해져서 국제 질서를 바라는 대로 재편하려는 것이든, 어느 쪽이 됐든 러시아엔 호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분석 기사에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러시아 경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향후 미국이 (트럼프의 공약대로) 고 립주의 노 선을 걸으면서 북 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힘을 잃으면 러시아의 영향력도 지금보다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유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한 요인이다.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가 정부 수입의 40% 비중을 차지한다. 저유가 추세가 잦아들면 반등할 여지가 생긴다.

신흥국 간 희비 갈려

트럼프 당선 직후 대규모 자본 유출에 시달리긴 했지만, 인도도 전망이 썩 어둡지는 않은 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보고서에서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2020년까지 연평균 7.6%로 주요 신흥국 중 상황이 가장 낙관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인도는 2009년 이후 매년 5%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인도 정부가 시장 친화적인 정책으로 해외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인도는 또 내수 시장 비중이 크고 교역 대상국이 분산돼 미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이 밖에 브라질의 경우는 다소 유보적이다. ‘경제 기초여건(펀더멘털) 회복과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는 낙관론과 ‘정세가 여전히 불안정해 투자자들이 크게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팽팽히 맞선다. 트럼프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2017년, 웃는 신흥국과 우는 신흥국은 각각 어디일까.

1366호 (2017.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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