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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경제 전망 | 세계경제 5대 관전 포인트 - 보호무역] 이웃 나라의 가난 우리 나라의 행복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자국 우선주의 내세우는 정치인 득세... 한국, 보호무역 직격탄 맞을 수도

▎사진:중앙포토
“나는 추수감사절임에도 캐리어가 미국(인디애나주)에 남아있도록 하는 작업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작업이 진척을 보이고 있다. 곧 결과를 알게 될 것이다.”

지난 11월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캐리어는 미국 인디애나의 일부 노후화된 공장을 닫고 2019년까지 멕시코로 1000여 개 일자리를 옮기려 했던 에어컨 제조회사다. 차기 대통령의 적극적인 개입 때문에 캐리어는 공장 이전 계획을 철회했다. 대신 약 10년간 700만 달러(약 82억원) 규모의 세금 혜택을 받기로 했다. 트럼프는 앞서 포드의 공장 이전을 힘으로 누른 데 이어 캐리어의 이전도 무산시켰다. 그는 “만약 미국 기업이 해외로 옮긴 다음 미국에 역수출을 하려 한다면 35% 관세를 내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저성장이 낳은 보호무역


2017년 세계 경제·무역의 화두는 ‘보호무역’이 될 전망이다. 보호무역 기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계속 심화하고 있다. 선진국의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각국의 반덤핑 제소 등 보호무역적인 조치는 계속 증가했다. 중국 경제가 과거의 고속 성장 시대를 지나 연 6~7%대 중속 성장 기조로 접어드는 등 성장이 정체되면서 금융위기 전 불어난 설비투자가 계속 공급과잉 상태에 머물러 있다. 철강·조선 등이 대표적이다.

공급 과잉 산업에서는 밀어내기 식의 수출이 계속 늘어났다. 생산원가 수준, 때로는 생산원가를 밑도는 가격의 제품이 수입돼 자국 산업이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는 보호무역적인 카드를 자꾸 사용한다. 이런 양상이 경쟁적으로 진행되면서 정치인들은 점점 더 보호무역 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6년 한 해 동안 주요국의 정치 구도가 급변하면서 보호무역 기조는 더욱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일자리 문제가 제일 관건이다. 자유무역으로 소비자가 혜택을 좀 보는 것보다 일자리가 없어지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논리가 득세하고 있다. 트럼프는 자유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자유무역협정(FTA) 등이 미국에 불리했다며 손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폐기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 협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한 미국 내 일자리 감소 등 모든 문제의 원인을 중국으로 돌리고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거나 중국 위안화가 평가절하돼 있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관세(45%)를 물려야 한다고 위협하는 등 ‘중국 때리기’를 하는 중이다. 과거 로널드 레이건 미국 정부가 경제 문제의 원인을 일본에 돌리며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낸 것과 유사한 흐름이다.

유럽에서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기점으로 EU의 분열과 자국 우선주의 경향이 강화되면서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비주류’에서 ‘주류’로 약진하고 있다. EU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은 단일 통화를 쓰기 때문에 통화가치를 평가 절하해 자국 산업 경쟁력을 향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성장이 더뎌지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EU 혹은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정치 세력이 늘어나는 것은 이런 구조적인 모순 때문이다. 이탈리아 제1 야당으로 성장한 오성운동(five-star movement)은 국민투표를 부결시켜 마테오 렌치 총리 퇴진을 이끌어 낸 데 이어 유로존 탈퇴 국민투표를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마리 르펜이 이끄는 극우파 프랑스 국민전선, 네덜란드 자유당, 독일을 위한 대안당(AfG), 오스트리아 자유당은 모두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중이다. 이미 탈퇴를 성공시킨 영국 독립당(UKIP)도 있다. 유로존 탈퇴는 곧 자국 통화가치의 절하(혹은 정상화)를 뜻한다. 직접적인 보호무역 조치는 아니지만, ‘이웃을 가난하게’ 함으로써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기는 마찬가지다. 자국 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보호무역주의적인 정책과 찰떡궁합이다.

미국 환경청이 독일 대표기업 폴크스바겐이 연비 조작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디젤 게이트’를 밝혀낸 것이나, EU가 애플·구글 등 미국계 정보기술(IT) 기업을 상대로 탈세 혐의를 제기하는 것 등도 큰 틀에서 통상 분쟁이 격화되는 신호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미국과 유럽이 상대방을 파트너로 여기기보다 경쟁자로 여기는 경향이 커졌다는 것이다. 주요국 지도자들이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이들로 교체되면서 그동안 세계 경제·무역 질서의 근간이 되었던 시스템은 흔들리고 있다. 예컨대 지난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주요 20개국(G20) 지도자들은 “무역 감소와 보호무역주의 확산이 세계 경제의 하방 위험 요인”이라며 “보호무역주의에 공동 대응하자”고 약속했다. 이런 약속은 구체적인 행위를 규정하지 않는 구호일 뿐이지만, 정치적인 부담감을 준다. 그런데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여차하면 탈퇴해 버리겠다고 하는 트럼프 당선자가 G20에서 이런 구호를 함께 외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세계 무역량이 정체되는 것도 보호무역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역 규제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비정부단체 글로벌무역경보(GTA)의 사이먼 이브넷 사무국장 등은 지난 7월 네덜란드 경제정책분석국(CPB)의 세계무역모니터(WTM) 보고서를 인용해 세계 무역량 증가세가 둔화된 게 아니고 15개월 연속으로 0% 성장, 곧 ‘정체’돼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 연구진은 2015~16년 중 특히 외국인·외국기업을 차별하는 정책, 관세·보조금 등 보호무역주의적인 정책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확산하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국제무역연구원은 지난 10월 보고서에서 “한국은 여전히 전 세계 수입 규제 대상국 중 중국 다음으로 2위”라고 지적했다. 또 “중국을 겨냥한 수입 규제가 늘어나고 있는데, 한국은 중국과 수출 주력 품목 중복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산 철강을 상대로 반덤핑 제소를 하면서 한국산도 덩달아 대상이 되는 식이다.

전략적 현지화 필요

대응 방법은 없을까. 가장 근본적인 대응 방법은 ‘현지화’다. 물건을 파는 곳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것이다.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은 지난 5월 “보호무역주의적인 글로벌 환경에 직면한 기업들은 세계를 스스로 헤쳐가는 수밖에 없다. 현지 생산을 하면서도 글로벌한 위상을 유지할 수 있어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 물건을 팔 때는 유럽에, 남미에 팔 때는 남미에 생산 기지를 두어 현지 일자리를 창출하고 관세 등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용 증가가 예상되지만 전략을 짜기에 따라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과제는 ‘시빗거리’를 줄이는 일이다. 산업용 전기료 등을 저렴하게 유지하는 것이 1차적으로 기업을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 간 통상 분쟁이 격화될 경우 보조금으로 판정받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당연하게 여겨 온 산업정책과 면세 제도 등을 까다로워지는 외부 환경에 맞춰 다시 손질해야 할 때다.

1366호 (2017.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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