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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헌의 경제에 비친 세상 읽기] 삼성 향한 특검 칼날, 무엇을 벨 것인가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사법처리 쉽지 않아 … 국민연금 수사가 관건

▎사진:중앙포토
2012년 9월, 당시 STX그룹은 계열사 STX메탈(이하 메탈)과 STX중공업(이하 중공업)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었다. 상장사 메탈이 비상장사 중공업을 흡수합병하는 형태였다. 합병 비율은 1대 0.33. 메탈 1주의 합병가치를 1로 볼 때 중공업은 0.33으로 본다는 말이다. 소멸 법인 중공업 주주들이 내놓는 주식 대략 3주당 존속 법인 메탈 신주 1주를 지급해 주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심 놀랐다. 합병 비율에 대한 회사 관계자의 설명 때문이었다. 그는 “STX그룹의 유동성 문제로 메탈 주가가 급락했는데, 고통을 견뎌준 메탈 소액주주들에 대한 고마움과 보상 차원에서 합병 비율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일반주주들을 배려한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합병 비율이 ‘보상’ 차원에서 결정됐다는 설명에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상장회사 간 합병 비율은 두 회사의 주가를 기준으로 결정한다. 특정 시점의 주가가 아니다. 합병 결의 시점(이사회 개최일) 전 일정기간 동안의 주가를 평균해서 기준 주가를 구한다. 예컨대 존속 법인 기준 주가가 1만원, 소멸 법인 기준 주가가 5000원으로 산출됐다면 합병 비율은 1대 0.5가 된다.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할 때의 합병 비율 산출은 이와 다르다. 기본적으로 상장사는 기준 주가를 구하고, 비상장사는 자산 가치와 수익 가치를 가중 평균한다. 비상장사의 경우 유사한 상장기업의 주가(상대가치)까지 구해 주당 합병 가치 산출에 반영하기도 한다. 상장사의 경우 기준 주가가 자산 가치에 못 미친다면 자산 가치를 주당 합병 가치로 정해도 된다. 예컨대 기준 주가가 8000원이고 자산 가치가 1만원이라면, 1만원을 주당 합병 가치로 정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STX메탈의 기준 주가는 5546원, 자산 가치는 1만6168원으로 산출됐다. STX중공업의 주당 합병 가치는 자산 가치와 수익 가치에다 상대 가치까지 종합해 5439원으로 산정됐다. 어떤 상장기업들은 자산 가치가 높아도 시장에서 형성된 주가가 가장 객관적인 기업 가치라는 이유로 기준 주가를 합병 가치로 본다. 그러나 메탈은 자산 가치를 선택했다. 아마 합병 결정 즈음 메탈 주가가 적정 수준에서 과도하게 이탈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는 합병 비율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내놨어야 했다. 증권 관련 법과 규정에 따라 두 회사의 합병 가치를 산정했다고 분명히 말해주는 것이 옳다. 합병 비율 결정은 보상이나 감사의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가 하락을 견뎌준 데 대한 고마움과 보상 차원이라는 표현에는 마치 회사가 임의로 합병 비율을 정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메탈은 일반 소액주주 비중이 50%에 달했다. 반면 중공업은 STX그룹 계열사들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소액주주들을 배려한 결정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공업 주주사는 STX조선해양, ㈜STX, STX엔진 등으로 모두 상장사들이다. 따라서 이들 회사의 주주 입장에서 보면 메탈 소액주주들을 배려한 합병 비율 산정은 곧 자신들에 대한 손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논란의 소지가 있었지만, 큰 문제 제기 없이 합병은 성사됐다. 전반적으로는 일반 소액주주들에게 유리한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합병 비율


▎사진:중앙포토
합병 비율은 이렇게 민감하다. 인위적으로 어느 한쪽 회사에 유리하게 산정된 흔적이 있다면 반대쪽 회사 주주들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 그래서 논란을 넘어 법정소송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2016년 초 CJ헬로비전(이하 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이하 브로드밴드)간 합병 추진에서 비율이 큰 문제가 됐었다. 2월 초 헬로비전을 인수한 SK텔레콤(이하 텔레콤)이 100% 자회사인 브로드밴드와 헬로비전 간 합병을 추진했다. 헬로비전이 브로드밴드를 흡수하는 형태였다. 합병을 하면 헬로비전은 신주를 발행해 소멸 법인 브로드밴드 주주에게 합병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브로드밴드의 주주는 SK텔레콤이 유일하다. 결국 헬로비전에 대한 SK텔레콤의 지배력은 더 높아지는 구조였다.

합병 비율은 1대 0.47로 공시됐다. 그러자 헬로비전 주주들이 들고 일어났다. 브로드밴드 합병 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산정됐다는 주장이었다. 예컨대 수익가치를 산정하면서 브로드밴드의 2019년 영업이익률을 2014년 대비 4배에 이르는 8.33%로 추정하는 등 부풀렸다는 얘기였다. 헬로비전 주주들은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헬로비전 주주뿐 아니라 텔레콤의 헬로비전 인수를 반대하는 여타 통신업체들까지 소송전에 뛰어들면서 로펌 간 합병 비율 소송전이 벌어지는 형국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텔레콤의 헬로비전 인수에 대해 승인을 내주지 않으면서 소송은 없었던 일로 끝났다. 아마 소송이 진행됐더라면 합병 비율의 적정성과 주주 손실의 실체에 대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올 뻔한 사건이었다.

합병 이야기를 이처럼 장황하게 하는 것은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 엮인 삼성 때문이다. 2015년 재계와 자본시장의 이슈 가운데 하나가 삼성 계열사 간(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었다. 엘리엇펀드의 등장으로 합병 무산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국민연금이 결정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찬성표를 던짐에 따라 합병안이 가결됐다. 그런데 2016년 말, 이 합병은 재계와 자본시장의 차원을 넘어 정계까지 포괄한 그야말로 국내 빅 이슈로 떠올랐다.

먼저, 이런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A사가 법인용 승용차 50대 구매를 앞두고 있다. B사 자동차와 C사 자동차가 구매 후 보다. A사 경영지원본부는 두 차량의 연비, 내구성, 가격조건 등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회사 안팎 자동차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차량 자체만 놓고 보면 B사가 더 낫다는 평이 대세다. 그런데,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특별한 요소가 있다. A사와 C사가 납품 및 제휴 관계로 엮여 있다는 사실이다. A사 경영지원본부장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첫째, 다른 요소 고려 없이 차량 성능과 가격 조건에 대한 평가만으로 B사 차량을 구매한다. 둘째, A사와 C사 간 사업거래 관계를 중요하게 평가한다. 그래서 B사 대비 C사의 조건이 못 미치지만 C사 차량 구매가 종합적으로는 A사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해 C사 차량을 구매한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본부장은 차량구매업무에서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세 번째로 이런 경우는 어떨까. 본부장은 B사 차량을 구매하더라도 C사와의 납품 제휴 관계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본부장은 그래서 B사 차량 구매가 회사에 이익이라고 판단한다. 그런데 사장이 C사 차량을 구입하라고 압박한다. 알고 보니 C사 사장이 A사 사장의 고등학교 선배다. 더구나 C사 사장의 집안에 정관계 유력인사들도 꽤 있다. A사 사장으로서는 C사 사장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국민연금을 향한 의혹


▎사진:중앙포토
지난해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찬반 의사 결정을 차량 구매에 빗대보았다. 2015년 7월, 합병에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던 국민연금의 실제 상황은 어땠을까. 최순실 게이트 특검팀이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하 문형표)을 직권남용 혐의로 2016년 12월28일 긴급체포했다. 특검 출범 이후 제1호 구속영장 청구 대상이 됐다.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하 홍완선)에 대해서는 강도높은 조사를 진행중이다. 그에게는 배임 혐의를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국민연금이 당시 문형표의 압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문형표의 윗선은 청와대 안종범 당시 정책조정수석(이하 안종범). 안종범이 문형표에게 찬성을 종용한 것으로 특검은 보고 있다. 안종범 뒤에는 최순실이 있었고, 그래서 삼성이 합병 찬성 대가로 추후 최순실을 지원했다는 것이 특검의 추리인 것 같다. 물론 안종범의 뒤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으니 결국 제3자 뇌물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홍완선에게 배임죄를 지우겠다는 것은 합병 찬성이 국민연금에 손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찬성 쪽으로 몰고간 것으로 특검이 판단한다는 이야기다. 국민연금에 손해라는 것은 합병 비율이 국민연금에 불합리했다는 점, 그리고 합병 삼성물산(제일모직이 옛 삼성물산을 합병한 뒤 사명을 삼성물산으로 바꿈)의 주가가 앞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컸다는 점 등을 말한다.

합병 뒤 삼성물산의 주가가 떨어졌느냐, 올랐느냐 하는 것은 배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다. 합병 찬성 당시 국민연금 내부 분석 결과에 따라 ‘합리적인 판단을 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합병이 손해라는 것을 인식했음에도 압력을 받아 국민연금 내부 회의(투자위원회)에서 찬성 결정을 했다면 배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합병 찬성이 국민연금에 이득이 될 것으로 판단했고, 따라서 어차피 찬성표를 던질 참이었다면 안종범이나 문형표로부터 압력을 받았다 해도 국민연금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홍완선에게 배임죄를 적용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문형표와 안종범은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문형표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복지부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아닌 국민연금 내 투자위원회에서 의사결정을 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문위원회는 삼성물산 합병 직전 SK㈜와 SKC&C 간 합병안에 대해서는 합병 비율을 문제삼아 반대결정을 내렸다. 문형표가 투자위원회에서 삼성 합병 찬성 여부를 결정토록 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고 특검은 추정하고 있다.

문형표의 지시를 받아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안을 내부 투자위원회 결정 사안으로 지정했는지는 현재로선 확실치 않다. 그러나 국민연금으로서는 외부 전문위원회로 안건을 회부하면 합병 비율만을 검토해 반대 결정이 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큰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은 있다. 국내 최대기업의 경영권을 흔들 수도 있는 투기펀드 엘리엇을 도와 삼성에 반대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다.

문형표과 안종범 간의 연결고리를 특검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낸 것은 없다. 안종범은 삼성물산 합병 건과 관련해 문형표에게 찬성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검의 목표가 박 대통령과 최순실, 삼성그룹 간에 이뤄진 제3자 뇌물죄 입증이라고 본다면, 문형표, 홍완선, 안종범 등 3인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예상된다.

국민연금의 주장은 간단하다. 합병 비율이 다소 불합리하긴 했지만 합병 시너지를 고려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민연금이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뿐 아니라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주식 23조원어치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합병 성공시와 실패시 여타 삼성 계열사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감안했다는 것이다. 불리한 합병 비율에 따른 부정적 효과는 합병 이후 시너지와 삼성그룹 계열사 주가 상승으로 상쇄될 것으로 판단했다는 주장이다.

딱 부러지는 증거 나와야

삼성의 입장은 어떨까. 합병 추진 당시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오너 일가는 제일모직(이하 모직) 대주주(42%)였다. 하지만 옛 삼성물산(이하 물산)에 대한 지분은 미약했다(1.4%). 일각에서는 물산과 모직 모두 상장사였기 때문에, 삼성은 오너 일가에게 유리한 합병 최적기 즉 물산과 모직 간 주가차이가 많이 벌어지는 시점을 노렸다고 주장한다.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랬더라도 이 사실 자체가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인위적으로 물산 주가를 떨어뜨리거나 모직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모의와 활동이 있었다는 뚜렷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는 주가조작사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때 기업들은 예비 지주회사에 대한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시점에 주식 교환을 단행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언론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방향으로 기사를 쓴다. 예를 들어 과거 삼양사와 한국타이어 등 많은 기업이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할 때 ‘회사측이 오너 일가에게 유리한 시점을 노리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오너 일가는 인적 분할 이후 보유하고 있는 사업회사 주식을 예비 지주회사에 현물 출자하고 예비 지주회사의 신주로 바꿔간다. 그래서 예비 지주회사 주가가 낮아지거나 사업회사 주가가 오를수록 지주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더 높일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최적의 주가 타이밍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들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인적 분할 이후 오너 일가는 사업회사 주식과 예비 지주회사 주식을 똑같은 비율로 보유하게 된다. 이후 주식 교환을 하기 때문에, 어차피 사업회사 주식에서 이익을 보면 예비 지주회사 주식에서 손해를 보는 일종의 제로섬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 소액주주들은 사업회사 주식을 예비 지주회사 주식으로 잘 바꾸지 않을 것이므로, 사업회사 주가가 오른다면 나쁠 것이 없다.

합병은 이와는 좀 다르다. 특히 삼성처럼 합병하는 두 회사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배력에 차이가 클수록 오너 일가에 유리한 방향으로 합병이 진행될 유인이 크다. 특히 두 회사가 모두 상장사라면 자본시장법의 관련 규정상 객관적 시장 가치(기준 주가)가 합병 가치가 되기 때문에, 일단은 법 테두리 내에서 합병이 진행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주가 조작의 증거가 없는 한은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합병 비율(또는 교환 비율)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소송에서 일반 소액주주들이 최종 승소한 사례는 없다. 문건이나 유력한 증언, 진술 등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딱 부러지는 증거가 나오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합병 비율 산정 과정에서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려 했거나,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해 준 대가로 최순실을 지원했다는 증언이나 물증이 나오지 않는 한 합병과 관련한 사법처리 대상이 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특검이 파헤치고 있는 제3자 뇌물죄의 연결 고리는 과연 드러날 것인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국제경제와 금융시장을 분석하는 미디어&리서치 ‘글로벌모니터’ 대표를 맡고 있다.

1367호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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