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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헌의 경제에 비친 세상 읽기] 건설사 ‘제멋대로 회계’ 이대로 둘 것인가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불투명한 회계로 반복되는 ‘실적 쇼크’ … 정부 건설사 회계감리 착수

▎삼성엔지니어링 본사.
아래는 어느 회사의 영업이익 추이 그래프다. 일단 숫자 없이 한번 보자. 2012~2013년 구간은 영업이익이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하는 시기다. 거의 낭떠러지 수준이다.


2014년 다시 소폭 흑자를 냈다. 하지만 2015년에는 2013년보다 더 큰 규모의 적자를 내며 절벽 수준의 기울기를 보여준다. 그래프의 연도별 각 점 하나하나가 몇억원, 몇십억원 단위가 아니라 몇천억원, 몇조원 단위라면 어떨까. 절벽이 얼마나 가파른지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한때 미국 경제에 재정절벽(Fiscal cliff)이라는 말이 크게 회자하던 때가 있었다. 재정절벽이란 세금 감면 종료와 정부 지출 삭감이 동시에 실시돼 경기가 절벽에서 떨어지듯 급랭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2012년 말 오바마 행정부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은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정책을 시행해 왔다. 그런데 예산통제법에 따라 2013년부터는 세금 감면 종료와 재정 지출 삭감에 나서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재정절벽은 2012년 말 경기부양책 종료와 2013년 초 예산통제법 실행에 따라 경제에 미칠 충격을 지적하는 용어였는데, 당시 재정절벽을 막기 위한 민주·공화 양당의 법안 마련에 전세계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GS건설·삼성엔지니어링 회계절벽의 이면


그럼 최근 들어 한국 산업계, 특히 조선·건설업계에서 회자하고 있는 ‘회계절벽’이라는 용어는 뭘까. 사람들은 회계절벽에 대해 “2015년 대우조선해양이 시장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규모 적자를 내자, 기업 이익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급감하는 경우를 일컬어 언론 매체들이 만든 신조어”라고 얘기한다. 회계절벽이라는 용어가 그 이전부터 있었는지,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후 등장한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회계절벽 현상은 2015년이 아니라 2013년부터 이미 본격화하고 있었다.

2013년 4월, GS건설이 5300억원대 1분기 영업손실을 발표했다. 해외사업의 잠재 손실과 부실을 대거 반영했다는 것. 시장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주가는 이틀 연속 하한가로 추락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건설업계 해외 플랜트 상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GS건설이라면 수백억원대 영업흑자를 낼 것이라 자신했다. 이들은 부랴부랴 목표주가를 조정했는데, 일부는 일거에 목표주가를 반 토막 내기도 했다.

그 무렵, 두 번째 폭탄은 삼성엔지니어링이 터뜨렸다. GS건설의 어닝쇼크를 접한 뒤에도 사람들은 삼성엔지니어링으로 눈을 돌렸다. 해외플랜트라면 삼성엔지니어링도 벌여놓은 일이 만만찮았다. 시장에서는 ‘그래도 삼성엔지니어링인데, 설마’라는 생각을 했다. 그간 삼성엔지니어링이 보여준 실적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깔려있었다. 뚜껑을 열고 보니 GS건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1분기 2189억원의 영업손실. 회사는 “새롭게 진출한 해외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과 일부 프로젝트에서 원가율이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GS건설이나 삼성엔지니어링은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보수적 관점으로 손실충당금을 미리 반영했다고 밝혔다. 선제로 비용 처리했다면, 이후의 실적은 양호했을까. 그렇지 못했다. 특히 “2013년 연간으로는 흑자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시장을 안심시키려 했던 삼성엔지니어링의 그 해 성적표에는 무려 1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이 기록되었다. ‘F’였다.

서두에서 제시한 그림은 삼성엔지니어링의 영업이익 추이 그래프다. 이제 숫자를 집어넣은 그래프를 한번 보자.

2008년 3조원을 갓 넘겼던 매출은 불과 4년만인 2012년 거의 4배에 육박하는 11조4000억원대까지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830억원에서 7370억원으로 4배 넘게 성장했다. 그런데, 1년 뒤인 2013년 이 회사는 무려 1조3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 해 건너 2015년에는 1조3000억원 적자의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예상치 못한 기업 이익의 급락을 두고 우리는 흔히 ‘어닝쇼크’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조선건설 같은 수주산업에 대해서는 왜 ‘회계절벽’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할까.

이것은 수주산업의 회계처리특성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A건설사가 10층짜리 오피스텔 건설계약을 땄다. A사는 공사 기간을 3년(2016년 초~2018년 말)으로 예상한다. A사가 산출해보니 이 공사에는 80억원의 총공사비용(계약원가)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래서 발주처로부터 총공사대금(계약수익)으로 100억원을 받아 20억원의 이익을 남기기로 계약했다. A사가 공사 첫 해(2016년) 20억원의 공사원가를 투입했다면 손익은 어떻게 될까.

당기(2016년)의 손익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공사수익(공사매출)을 구해야 한다. 공사수익이 30억원이라면 2016년의 공사 이익은 10억원(30억원-20억원)이 될 것이다. 당기의 공사수익을 산출하려면 먼저 ‘공사진행률’부터 계산해야 한다. 공사진행률은 ‘당기 공사투입원가/공사총예정원가’로 구하면 된다. 즉, 공사총예정원가가 80억원인데, 당기 실제 투입원가가 20억 원이므로 공사진행률은 25%, 당기의 공사수익은 25억원(100억원×25%)이다. 따라서 공사이익은 5억원(25억원-20억원)이 된다. 다음해인 2017년에는 30억원의 공사원가가 투입됐다고 하자. 그럼 2017년까지의 공사누적진행률은 62.5%가 된다. 2016년 원가투입 20억원과 2017년 원가투입 30억원의 합인 50억원을 공사총예정원가 80억원으로 나눈 수치다. 누적 진행률에 따른 누적 수익 62.5억원(100억원×62.5%)에서 기존에 인식한 수익 25억원(2016년에 인식한 수익)을 뺀 37.5억원이 바로 2017년 당기의 공사수익(매출)이 된다. 그러므로 2017년의 공사이익은 7.5억원(37.5억원-30억원)이 되는 것이다.

복잡한 수주산업 회계 기준

일반제조업처럼 제품을 완성한 뒤 수요자에게 판매하면 수익을 인식하는 것을 ‘완성기준’이라고 한다. 건설공사는 여러 해에 걸친 공사기간동안 진행률을 산출한 뒤 회계기간마다 계약 수익(총공사수익)과 계약원가(총공사원가)를 배분하기 때문에 ‘진행기준’이라고 한다.

건설·조선같은 수주산업의 진행기준 회계처리에서는 특히 한가지 눈여겨 봐야 할 사안이 있다. 물건을 외상으로 팔면, 매출이 발생하고 동시에 매출채권(제품대금 청구권)이 생긴다. 건설공사의 경우에도 공사를 하면 매출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는 곧바로 매출액만큼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매출채권(공사대금청구권)이 발생한다. 건설공사에서는 이를 공사미수금이라고 한다. 그런데 공사를 하고도 발주처에 공사대금을 청구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공사진행률에 대해 공사업체와 발주처간 이견이 생기는 경우다. A사는 2016년의 실제 투입원가를 기준으로 25%의 공사진행률을 적용해 공사수익(매출) 25억원을 손익계산서에 기록했다. 그런데 발주처에서 현장을 점검한 결과 공사진행률을 20%로 밖에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A사가 발주처에 공사대금으로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20억원이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서는 이 20억원은 공사매출채권 즉, 공사미수금 계정으로 기록하고, 나머지 미청구분 5억원은 ‘미청구공사’라는 계정이름으로 자산항목에 따로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미청구공사대금도 A사가 나중에 받아야 할 돈이다. 미청구공사는 건설현장에서는 일반적으로 늘 발생하며, 공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추후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그러나 발주처의 지급능력에 문제가 생기거나 원가산정에 대한 발주처와 건설회사간 이견, 원가의 급격한 상승 등 비정상적 상황이 발생하면 미청구공사는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미청구공사대금은 자산으로 계상되지만, 회수 가능성이 떨어질 경우 자산손상으로 처리해 즉시 비용에 반영해야 한다. 수주산업은 회계처리에 상당한 추정과 판단, 가정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회계처리 자체가 불확실성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보니 갑자기 대규모 손실을 발표하는 회계절벽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회사가 나름 최선의 추정을 하였으나 예상할 수 없던 변수가 작용하면서 회계절벽이 나타날 수도 있다. 반면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손실을 덮어놓고 있다가 발각되는 경우도 있다. A사의 경우를 다시 보자. 위에서 설명한대로 공사 둘째 해인 2017년 30억원의 원가가 투입됐다면 언뜻 보기에 2017년 A사의 이익은 7.5억원으로 집계될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변수가 있다. A사는 2017년 결산을 하면서 공사 마지막 해인 2018년에 투입해야 할 예상원가를 검토해야 한다(건설사는 결산 때마다 남은 공사기간의 예상투입원가를 계속 검토·추정해야 한다). 그랬더니 애초의 예상치(30억원)보다 크게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고 하자. 공사 자재비와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 추세, 건설장비 임차료 상승 등으로 2018년에 60억 원의 원가가 투입돼야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렇다면 A사는 이 오피스텔 공사에 총 110억원의 원가(2016년 20억원+2017년 30억원+2018년 예상치 60억원)를 투입해야 하는 셈이 된다. 발주처로부터 받기로 한 총공사대금은 100억원이니 결국 이 프로젝트에서 10억원의 적자를 보는 셈이 된다.

건설공사 회계기준은 총원가가 총수익을 초과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예상되는 손실을 즉시 비용으로 인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2017년 결산에 미래 예상손실을 반영하라는 얘기다. A사는 2016년에 이미 5억원의 공사이익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 오피스텔 공사는 총 10억원 적자공사가 예상된다. 따라서 2017년의 공사이익은 7.5억원 흑자가 아니라 15억원의 적자로 기록해야 한다. 2016년은 5억원 이익, 2017년은 15억원 적자, 2018년은 손익이 ‘0’이 된다. 2018년 예상손실액을 2017년 결산에 미리 반영하였으므로, 예상한대로 건설 상황이 흘러간다면 2018년 손익은 ‘0’이 되는 것이다.

정부가 적정 기준과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만약 A사가 2018년도 원가상승을 제대로 추정하지 못했다고 하자. 그럼 2017년에는 7.5억원의 흑자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2018년에는 22.5억원의 적자(공사수익 37.5-공사원가 60억원)를 내게 되어, 이른바 어닝쇼크와 회계절벽을 동시에 맞게 되는 것이다. 회사가 최선을 다해 추정하였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 모르겠으나, 의도적으로 공사원가의 상승 추정을 무시하거나 회피했다면 분식회계(회계사기)가 된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손실을 의도적으로 덮어온 혐의 즉, 회계 사기로 재판을 받고 있다. GS건설의 경우도 주주들이 집단소송을 걸어 소송이 진행중이다.

새해 벽두부터 금융당국이 건설업체 회계에 대한 감리에 전격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감리는 회계법인이 작성한 기업 감사보고서에 대해 금융감독원 등이 회계처리 기준과 감사 기준에 적합하게 작성됐는지를 검토·조사하는 활동이다.

금융감독원은 현대건설 외부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에 대한 감리를 지난 4일 시작했다. 현대건설이 발주처에 공사대금을 청구하지 못한 미청구공사와 손실발생 가능성을 적정하게 처리했는지, 공사 원가 추정치 등에 대한 회계처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진회계법인이 이에 대한 회계감사를 감사기준에 맞게 적절하게 잘 처리했는지 등을 집중 감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의 미청구공사금액은 지난해 3분기 말(연결재무제표) 기준 총매출액의 27%에 달하는 3조6088억원이다. 건설업계 최대규모다.

연초부터 당국이 시공능력 톱 기업에 대한 감리에 들어가자 건설업체들은 긴장하고 있다. 금감원이 지난해부터 강조해 온 ‘수주산업의 공시 적정성’ 방침을 건설업체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점검하는 차원이라거나 , 현대건설의 미청구공사 대금이 많다 보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 점검해보는 차원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면서도, 건설업계 전반으로 감리가 확대되지 않을지 신경 쓰는 모습이다.

금융감독은 지난해부터 수주산업 기업의 사업보고서에 대한 공시 기준을 강화했다. 기준 강화 뒤 공개되는 사업보고서는 올해가 처음이기 때문에 금감원의 정밀 점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금감원 안팎에서는 올 5월 건설업체들이 공시할 ‘2016년도 사업보고서’에서 당국의 수주산업 공시강화 기준에 맞춰 업체들이 제대로 공시를 했는지 당국이 점검한 뒤 미흡한 업체에 대해 추가 감리가 진행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10월 수주산업 해당 기업 216개사의 반기 보고서를 검토, 40여 개 기업(18.5%)의 공시가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공시대상 중요계약의 진행률과 미청구 공사금액 등을 공시하지 않거나 직전년도 매출액 5% 미만의 계약 정보를 공시하지 않기도 했다. 이번 현대건설 감리를 신호탄으로 미청구 공사대금 비중이 큰 대형 건설사에 대해 연쇄 감리에 들어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총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미청구 공사대금 비중은 대우건설과 GS건설이 각각 23%, 27%로 높았다. 이 가운데 대우건설은 외부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으로부터 지난해 3분기 보고서에 대해 검토의견 ‘거절’ 통보를 받았다. 또 GS건설은 2013년 실적 공시 과정에서 벌어진 분식회계 논란으로 법정소송에 휘말려있다.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대형건설사 상당수가 증권시장 상장사여서 감리가 주가에 영향을 크게 줄 수 있는데도 연초부터 대형사에 대한 감리를 진행하는 것은 당국이 강한 사전 경고를 보내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해외건설의 특수성을 고려해 미청구 공사대금에 대한 명확한 감리 기준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손실 가능성을 멋대로 판단하게 놔둘 것이 아니라 금융 당국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적정기준과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국제경제와 금융시장을 분석하는 미디어&리서치 ‘글로벌모니터’ 대표를 맡고 있다.

1369호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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