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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패션시장 키워드는] 비욘드 패션, 아재슈머 주목하라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AI·VR·빅데이터가 패션 패러다임 바꿔 … 중국발 패션 유통혁명도 눈여겨봐야

▎2017년 패션시장 키워드로 떠오른 ‘아재슈머’는 아저씨를 낮춰 부르는 말인 ‘아재’와 소비자인 ‘컨슈머’의 합성어다.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 인기를 모은 이후 패션 트렌드를 잘 알면서 스스로 꾸미는 데 능숙한 아재슈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국내 패션 시장에서 소비자 트렌드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고, 이를 토대로 미래 전략을 짜는 것은 곧 생존의 지름길이다. 그래서 매년 패션 업계에서 꼽는 키워드는 단순한 말의 잔치가 아니라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올 한해 패션 시장에서는 ‘비욘드 패션(Beyond Fashion)’과 ‘아재슈머(아재+컨슈머)’가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

비욘드 패션은 말 그대로 ‘패션을 넘어’ 세분화가 이뤄진 소비자와 시장을 겨냥한 패션이 인기를 모을 것이란 뜻이다. 송희경 삼성패션연구소 차장은 “패션 시장에서 점점 마이크로화(개인 맞춤화 내지 세분화) 현상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며 “2017년은 인공지능(AI)·빅데이터·가상현실(VR)과 같은 기술이 기폭제로 패션 시장의 패러다임 역시 확 달라지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욘드 패션의 개념은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2%대에 머물 것이란 어두운 전망에서 출발했다. 이는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못지 않게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패션 시장 역시 ‘소비·투자 절벽’에 맞닥뜨릴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강화, 중국의 성장 둔화와 한한령(限韓令) 한파가 패션 시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패션 시장도 소비·투자 절벽 우려

우선 패션 시장에서도 인공지능과 가상현실과 같은 기술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국내 패션 업계는 외국, 특히 중국을 눈여겨보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광군제 당시 하루 매출 신기록(약 21조원)을 세운 것뿐만아니라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시선을 끌었다. 패션 시장의 근본을 뒤흔드는 유통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알리바바는 ‘알리 샤오미’라는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와 가상현실 기술을 도입한 ‘바이플러스(Buy+)’ 서비스를 선보였다. 알리바바의 경쟁자인 징동(京東)은 100% 자동화로 운영되는 무인 창고에서 자체 개발한 로봇이 화물 운반과 분류, 포장을 맡는 이른바 ‘삼무(三無)’ 기술을 선보였다. 무인 창고, 무인기, 무인 배송 드론을 의미한다. 이런 기술 혁신을 통해 고객들은 자기만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한 소비를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소비 변화에 가장 빨리 반응하는 곳은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다. 소비자의 마이크로화 취향을 저격해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인디 브랜드와 동대문 기반의 편집숍이 속속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송희경 차장은 “소비자는 오히려 브랜드가 추구하고 제안하는 문화가 본인 취향에 부합되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따질 것”이라며 “브랜드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내는 차별화 콘텐트, 즉 ‘자기다움’이 브랜드의 가치를 좌우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패션 시장에서 브랜드의 가치와 스타일이 변하는 가운데 개인 맞춤형 정보와 편의 제공 서비스를 뜻하는 ‘퍼스널 컨시어지(Personal Concierge)’가 떠오를 전망이다. 소비자가 패션 정보를 탐색하거나 구매하는데 모바일 활용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연령·상황·취향별로 소비자의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업계 매출을 좌우할 수 있다.

‘아재슈머’는 올 한해 패션 시장을 뜨겁게 달굴 키워드다. 아재슈머는 아저씨를 낮춰 부르는 말인 ‘아재’와 소비자인 ‘컨슈머’의 합성어다. 1990년대 초 사회문화 트렌드를 이끌었던 X세대가 구매력을 갖춘 40~50대가 되면서 패션 업계의 핵심 소비층으로 자리를 잡은 현상을 뜻한다. 아재슈머는 패션 트렌드를 잘 알고, 스스로 꾸미는 것에 능숙하다.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개성에 더욱 가치를 두는 특징을 보인다. 남성복 매장에 들어온 지 30초 만에 “마네킹이 입고 있는 대로 주세요”라고 했던 과거 아재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유행에 민감하고, 다양한 브랜드와 복장을 믹스매치(혼합)할 줄 안다. 과거에는 사고 싶은 상품만 구매하는 목적 구매가 남성 소비자의 소비 패턴이었지만 이제는 백화점과 마트에서 쇼핑을 즐기며 다양한 제품을 구매하는 식으로 변했다. 게다가 기존 남성복 브랜드의 철수로 매장 공석이 생긴 만큼 유리한 조건으로 아재슈머를 공략할 신규 브랜드의 입점이 가능해졌다.

‘가성비’ 패션은 올해도 인기 끌 듯

이화영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미 패션 업계는 아재슈머라는 흐름에 발맞춘 남성복 라인을 강화하고 있다”며 “신세계인 터내셔날이 새롭게 선보인 7개 브랜드 중 2개가 남성복”이라고 분석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내놓은 남성복 브랜드는 자체 남성복 브랜드인 ‘맨온더분’과 신세계톰보이의 ‘코모도’다. 맨온더분은 자체 제작한 남성복과 엄선한 해외 브랜드 상품을 6대 4의 비율로 판매하는 멀티숍 형태로 운영해 남성 소비자 수요를 충족시킬 것으로 보인다. LF도 남성복을 집중 육성하는데 ‘알레그리’와 ‘질스튜어트 뉴욕’ 매장을 확대하고, 젊은 감각을 내세운 ‘미스터헤지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현대백화점그룹에 인수된 이후 남성복을 강화하고 있는 한섬 역시 ‘타임옴므’와 ‘시스템옴므’와 같이 좋은 원단과 한국인 체형에 딱 맞는 패턴을 앞세워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패션 시장 키워드가 올해도 계속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난해 큰 인기를 끈 불황기 아이템인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 패션은 올해 더욱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체감 경기가 더욱 나빠지면서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자가 지난해 못지 않게 올해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특히 길어진 여름과 빨라진 추위로 간절기가 실종하는 등 예측 불가능한 날씨 변화로 여러 시즌 입을 수 있는 활용성 높은 패션이 인기를 모을 수밖에 없다. 남성복 시장은 초저가 신사복을 잇따라 출시하고, 여성복 브랜드는 다양한 TPO(시간·장소·상황)에 착용 가능하면서도 활용도 높은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런 소비 트렌드 변화로 온라인 브랜드와 스트리트 브랜드가 작지만 강한 브랜드로 부각되고 있다”며 “온라인에서 먼저 인지도를 쌓은 뒤 가성비로 젊은 소비자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애슬레저(Athleisure)가 여전히 패션 트렌드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애슬레저는 애슬레틱(운동경기)과 레저(여가)를 합친 패션 업계의 용어다. 스포츠 활동을 할 때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착용 가능한 용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즐겨 찾는 브랜드로 유명해진 언더아머는 조만간 국내에 직접 진출할 예정이다. 애슬레저 시장에서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아성을 넘볼 태세다. 한풀 꺾인 듯한 성장세의 아웃도어 업계도 ‘애슬레저 트렌드’에 맞게 일상 생활과 외부 활동시 모두 착용 가능한 용품 라인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애슬레져 트렌드와 함께 경계가 모호해지는 패션 트렌드가 스타일과 디자인 측면에서 동시에 힘을 모을 전망이다. 성별과 나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보더리스(Borderless) 현상으로 불리는 데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지 않는 젠더리스(Genderless), 엄마와 딸이 같이 입을 수 있는 에이지리스(Ageless) 스타일이 올해도 인기를 모을 것으로 전망된다.

1369호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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